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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역할

장하준 지음 | 부키
서장 |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찾아서



경제 부문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역할은 예전부터 논란이 많은 주제였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과 관련된 논쟁이 가장 뜨겁게 진행된 시기는 아무래도 지난 20여 년 동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무렵, 시대의 총아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규제 없는 시장의 미덕을 설파하고, 탈규제와 개방·민영화를 설교했다. 그러나 이처럼 개입의 범위를 계속 확장시켜 왔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개혁 프로그램은 공언했던 것과 같은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성적표는 대단히 초라하다. 세계의 1인당 소득은 '바람직하지 않은 구시대bad old days'로 불리는 1960~1980년 기간에도 3.1% 증가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던 1980~2000년에는 소득 증가가 겨우 2%에 그쳤다. 이런 처참한 성적표는 신자유주의자들에게조차도 참으로 황당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개발도상국에서 시민 소요가 벌어지고 선진국에서 '반反세계화' 시위가 발생하는 등 신자유주의 독트린에 대한 불만이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고 있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맞서 내세울 만한 실질적 대안이 있는가? 그 대안은 어찌 보면 이미 존재해 왔다. 1980년대 이전 상당수 개발도상국이 추진했던 수입 대체 산업화ISI(Import 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정책이 그 중 하나이다. 또 한국, 일본, 대만 등의 '동아시아 모델'이나 중국이 지난 십 수 년간 형성해 온 독특한 자본주의·사회주의 혼합 체제도 대안일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론적 대안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의 결과이다. 그 중에는 상당히 이론적인 것도 있고, 다소 실증적인 주제에 치중한 것도 있다. 또 국내 정책은 물론 국제적 정책에 관련된 다소 넓은 범위의 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을 관통하는 이론적 맥락이 있는데, 필자는 그것을 제도주의적 정치경제학institutionalist political economy에 입각한 접근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어떻게 변명하든지 상관없이 그들의 정책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무참하게 실패했다. 이 같은 신자유주의의 실패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들이 시장과 국가와 그 외의 다른 제도들 간의 상호 관계를 균형 잡히고 세련된 형태로 이론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실패한 이론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담론을 전개해 왔다. 게다가 이들은 실증적 증거들까지 지나치게 편향되고 부분적인 방식으로 해석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결함을 증폭시켰다. 이 책에서 필자는 일련의 주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지적 파산을 드러내는 한편, 실증적 증거들이 균형적으로 반영된 대안적 이론 틀을 구성해 보려고 시도했다. 이 책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신뢰할 만한 대안을 이론적으로 혹은 실천적으로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설사 그들의 대안이 나의 대안과 심각하게 다르더라도 말이다.







1부 국가의 개입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가의 경제 개입을 둘러싼 논쟁사



1989년에 딘P. Deane이 경제 사상사에 대한 자신의 걸작 《국가와 경제 시스템The State and the Economic System》에서 보여 주었듯이, 국가의 역할은 당초 경제학의 발전 과정에서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독립적인 학문 영역이었다. 경제학은 초기에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 또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등으로 불렸다. 당시 서유럽에서는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이에 따라 국민국가의 지배자들은 경제 운영에 대한 '정치적' 조언이 점점 더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정치적' 조언이 '정치산술'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수많은 학자들은 이 학문에서 '정치'(혹은 국가)라고 하는 학문적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요소를 떼어 내기 위해 끈질기게 시도했고, 이는 20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이 학문의 이름이 '경제학economics'으로 명명되면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양차 세계 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국가 혹은 정치는 다소 극적인 방식으로 경제 이론과 정책 결정 과정으로 회귀한다.



양차 대전 사이의 이론적 흐름은 종전 직후 경제 이론과 경제적 실천이 국가 개입주의interventionism로 극적으로 전환되면서 절정을 이루었다.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의 전후 경제 재건의 필요성, 아시아 및 동유럽 일부 국가들의 사회주의 건설 시도,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의 식민주의로부터의 해방에 따라,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2차 대전 직후 고도로 국가 개입주의적인 견해를 기꺼이 채택했으며, 또 채택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로 알려져 있는 2차 대전 이후의 사반세기 동안 국가 개입주의 정책들은 세계적으로 매우 성공적이었고, 그에 따라 국가 개입주의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 역시 경제의 작동에서 매우 중요할 뿐 아니라 심지어 주도적인 경제 주체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처럼 자본주의 황금시대의 경제 이론과 실천에서 국가의 부상은 매우 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황금시대 이후 국가는 급격한 추락을 경험하는데 이 또한 상당히 극적인 과정을 거쳤다.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종말을 고하자 경제 이론과 실천이라는 두 측면에서 국가는 가혹하게 공격을 당했다. 먼저 선진자본주의국가들에서 복지국가주의welfare statism의 권위가 떨어지더니, 1980년대에는 개발도상국들에서 탈규제 프로그램이 확산되면서 국가에 대한 공격이 한층 강화되었다. 국가에 대한 공격은 1989년 이후 구소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적 중앙 계획 시스템이 와해되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이식이 시도되면서 그 절정에 달한다. 물론 수많은 국가 개입 반대주의자, 즉 반개입주의자anti-interventionist들이 당초 생각했던 것만큼 국가의 후퇴가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적 흐름 자체가 국가 개입의 이론과 실천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다양한 반개입주의 이론들은 각자 나름의 역사적, 정치적, 제도적 상황, 그리고 이론적 전통 속에서 발전되었다. 어떤 이론은 신고전학파(예컨대 수입 대체 산업화에 대한 브레턴우즈 식 비판)를 계승하고 있는 반면, 다른 이론은 오스트리아 학파나 제도주의 같은 다소 비정통적인 전통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반개입주의 이론들의 공통점은 경제문제의 '기술적' 측면보다 '정치적'인 측면을 더 강조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신자유주의 이론들은 개입주의의 정치적 기반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윤리, 정의, 권력 등의 쟁점들을 경제학의 영역으로 복귀시켰다. 지금부터는 신자유주의 전통을 계승한 이론들을 일일이 비판하기보다 이 이론들을 관통하는 지적 기반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해 보자.



신자유주의 이론들은 주인-대리인 모델을 원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주인에게는 대리인의 행위 전반을 감시할 수 없다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대리인의 사적인 이익 추구를 방지하기 위한 '유인incentives 체계의 설계'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개별적 사안을 넘어서는 일반적 수준에서 주인-대리인 모델을 적용하면 당혹스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누가 주인이고 누가 대리인이란 말인가. 어느 쪽이 주인이고 어느 쪽이 대리인인지를 확정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방법은 없다. 오히려 누가 주인이고 누가 대리인인지 가리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 그 자체가 현대 정치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주인-대리인 모델은 이 같은 정치-경제 과정의 복잡성을 반영할 수 없다. 이 모델이 주목하는 요소는 오직 '자신의 부를 극대화하려는 이기적 개인'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이론에 기반해서 '경제 영역에서 국가를 몰아내자'는 급진적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이론들이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국가에 대한 깊은 불신이다. 신계약주의자들에게 국가란 본질적으로 확장 경향이 있는 필요악으로 간주된다. 때문에 사회 계약의 주체인 주권적 개인들sovereign individuals이 국가를 지속적으로 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불신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무비판적으로-혹은 의도적으로?-국가 또는 그 구성 요소로서의 관료 집단에 대해 언제나 자신 또는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개인이나 단체들이 언제나 자신 또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신자유주의자들의 단순하기 짝이 없는 자기중심적 전제를 허무는 사실들은 일상적으로 너무나 많다. 이 같은 사실들을 무시하는 모델에 기반한 정책들은 잘해봤자 혹세무민에 불과하거나, 최악의 경우 그 모델 구축자의 '국가 반대'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사이비 과학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적 국가 불신의 또 다른 특징은 개개인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맹신이다. 물론 모든 친親시장적 이론들은 자원 배분의 비효율성이 '잘못된' 제도와 국가 정책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보다 훨씬 더 나아간다. 즉 경제 전반의 생산능력이 향상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이윤 창출 노력이 (예컨대 혁신과 같은) 새로운 지식을 생성시키는 과정에서 필요한데, 국가 개입은 이런 개인들의 노력을 해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의 문제점은 기업가 정신을 본질적으로 개인적 행위의 일종으로 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내부에만 지식이 비축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적어도 현대 경제에서는 제도와 조직들 역시 지식을 축적하는 공간으로 역할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은 점점 더 집단적 행위의 성격을 띠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신자유주의 이론을 비판했다. 우리는 대다수 신자유주의 이론이 (경제 주체와 사회마다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다른) 인간 행위에서의 동기의 복잡성, (누가 주인이고, 누가 대리인인지 불분명한) 현대 정치 형태의 복잡성, 정책 형성 및 수행 과정에서 정당화의 중요성, 복잡한 현대 경제에서 집단적 관리의 필연성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치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극단적으로 단순한 개념은 그들의 주장을 기껏해야 남을 오도하는 것으로, 최악의 경우에는 사기로 만들어 버린다. 첫째, 전시戰時나 우주 개발 계획처럼 압도적으로 중요한 목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중앙 계획 경제가 시장보다는 더 잘 작동한다. 둘째, 중앙 계획 경제만큼 정보 수집 능력이 절실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중앙 계획 경제만큼은 효율적인 또 다른 형태의 국가 개입이 있다. 바로 동아시아 스타일의 산업 정책 경제이다. 하이에크가 말한 것과는 반대로 제3의 길은 있다. 아니, 수많은 제3의 길이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현존하는 국가 개입의 유용성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역사적 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실제로 현재의 국가 개입 중 일부는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명백했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 개입의 새로운 형태를 정초하기 위한 연구의 막이 오른 것도 사실이다. 이제 와서 신자유주의의 부활 이전으로 지식 사회의 시계를 되돌리는 것이 가능하거나 바람직하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세계 경제가 엄청나게 변화했음은 물론, 그 과정에서의 실제 경험과 신자유주의적 비판에 입각해 볼 때 과거 사고방식의 결함들이 일부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이전의 지적인 황금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유효한 통찰로부터 이데올로기적 장막을 벗겨낸 뒤, 더욱 넓고 객관적인 지식 틀로 통합시키는 새로운 종합이 우리의 목표이다.



구조 조정 시대의 국가의 역할



그 어떤 국가도 아무런 흠집이 없을 수는 없다. 따라서 아무리 '강고'한 국가라 해도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무수한 영역에서 경제 활동의 초국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정책을 고안하는 국민국가의 역할은 점점 더 어려운 국면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혹은 다른 경제 주체) 입장에서는 좋든 싫든, 쉽든 어렵든 기업가 및 갈등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상호의존성과 (급진적이든 점진적이든) 기술 및 제도 부문에서의 혁신이 특징인 현대 경제에서 국가는 기업가와 갈등 관리자로서의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 국가가 이런 역할을 포기한 결과는 일관성 있는 조절 구조와 원활히 작동하는 갈등 관리 시스템의 출현이 지체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경우 해당 국가의 경제 변동은 엄청난 낭비와 사회 세력 간의 반목을 수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필자는 '제도주의 정치경제학'으로 불릴 수 있는 방법론을 제안하며, 그에 필요한 이론의 몇 가지 요소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 이론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기초인 '시장의 우선성' 가정을 기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시장을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다른 제도들에 비해 우위성이 없는 또 하나의 제도로 간주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은 다른 제도들만큼 '자연스러운' 동시에 '인위적'인 제도로 자리매김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라야 우리는 시장·국가·그 밖의 다른 제도들 간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더욱 정확하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인식할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이상적인' 시장의 작동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관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신고전학파적 관점은 수많은 그럴듯한 관점 중 하나에 불과하고, 게다가 특별히 탁월한 것도 아니다.



셋째, 우리는 신고전학파 이론이 기본적으로 시장에 대한 이론이라는 것을 (그것도 도식적이어서 대중을 오도할 수 있는 이론이라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에 비해 자본주의는 사회 경제적 시스템으로서 시장들의 집합체 이상이며, 수많은 제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어느 정도 역설적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신고전학파 이론 구조에서 엄청난 문제로 인식되는 시장의 실패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넷째, 우리는 시장이 기본적으로 정치적 구조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장은 시장을 떠받치는 특정한 권리/의무 구조와 관련짓지 않으면 정의할 수 없는데, 이 같은 권리/의무들은 정치적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지, 신고전학파 (혹은 신자유주의) 논객들이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것처럼 어떤 '과학적' 혹은 '자연적'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내용들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제도주의 이론의 다섯 째 요소로 이어지는데, 그 내용은 신자유주의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균형잡혀 있으며, 보다 세련된 정치에 대한 관점인 만큼 앞으로 이런 정치적 관점에 입각한 정치 이론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본주의의 제도적 다양성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불행히도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제도적 다양성이라는 논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추상적인 시장 경제 이론, 보다 정확히 말하면 교환에 기반한 '교환 경제' 이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경우 부분적으로는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세금/보조금과 공적 소유 외에도 국가 개입에는 다른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때문에 국가 개입이 많은 나라들을 실제보다 훨씬 더 국가 개입이 없는 것으로 잘못 묘사한다.



2부 발전과 진보를 위한 경제학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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