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을 전파하라
도널드 필립스 지음 | 한스미디어
서문우리는 이미 초등학생 시절부터 링컨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들어 알고 있다. 그의 삶의 면면을 다룬 책과 논문들은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의 초상은 미국 동전에, 5달러짜리 지폐에, 저축 채권에, 예금증서에 새겨져 있다. 뿐만 아니라 법원, 학교, 공공건물, 주택에도 그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그를 다룬 연극,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잡지 기사, 노래, 시가 있으며, 그의 이름은 모텔, 자동차, 장난감, 은행, 기업, 거리 등 무수한 사물에 붙여져 있다.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그의 비망록과 연설문, 전기(傳記)가 출간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 사람들의 의식 속에 링컨이란 인물이 각인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링컨을 둘러싼 신화와 인간 링컨 사이의 간극은 상당한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링컨의 열광주의자들이 '실제의' 링컨을 연구하면서 신화를 분리시키기 시작한 것이 불과 30여 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을 구하는 데 필요한 리더십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혼란과 급박함, 절망과 위기로 가득 찬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사태를 직시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100퍼센트 활용함으로써 대통령의 권위와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나갔다. 오늘날의 리더들이 에이브러햄 링컨의 리더십 스타일과 철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링컨이 가장 뛰어난 리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라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그는 아이아코카, 레이건, 부시 등 현대의 리더들을 능가한다. 링컨은 통치하는 비결을 실제로 알고 있었다. 그는 현대의 비즈니스 리더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는 탁월한 리더이다. 이제부터 그의 리더십의 교훈과 원칙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1부 사람에 대한 믿음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라링컨 대통령은 4년의 재임 기간 대부분을 병사들을 직접 만나는데 보냈다. 링컨은 일선에 선 병사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대업(大業)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육군성 전보실에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중요한 정보를 손쉽게 접해 신속하고도 시의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는 장군과 각료들을 그들의 집과 집무실과 전장에서 만나 그들에게 각종 지침을 제시했다. 링컨은 해군 조선소와 워싱턴 안팎의 요새들을 직접 둘러보고 신무기의 기능도 자세히 살폈다. 무장한 군대의 능력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군사 관련 시설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그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지하지 않고도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몸으로 체득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링컨은 병원을 방문해 일선 병사들을 위로하는 등 부상병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톰 피터스와 낸시 오스틴(Nancy Austin)은 『초우량기업을 향한 열정(A Passion For Excellence)』이라는 책에서 MBWA(Management By Walking Around; 순회 관리)를 "알기 쉬운 기술"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고객을 직접 만나고, 공급업자를 직접 만나고, 부하 직원들과 직접 만나는 것을 말한다. 이로써 혁신을 조장하고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치를 경청하고, 조장하며, 가르치고, 강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리더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MBWA는 리더십 기술이다. 휘하 사람들을 이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주의를 기울이는 기술의 대가(大家)는 상징과 드라마를 활용하는 데 능숙할 뿐 아니라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신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링컨은 사람들이야말로 정보의 주요한 원천이라는 사실과 그들과 가까이 있어야 훌륭한 리더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장을 찾아가서 직접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은 성공하는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것처럼 링컨의 리더십 스타일을 대표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백악관에서 나올 수 없는 경우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오도록' 했다. 링컨처럼 국민들이 쉽게 다가갔던 대통령은 없었다. 정부 공무원들, 직장인, 일반 시민들은 문자 그대로 링컨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희망을 품고 백악관 앞에 줄을 지어 있었다. 링컨은 거의 모든 사람을 만났고, 심지어 언제든 찾아오도록 격려까지 했다. 링컨은 1863년에 인디애나 주에 사는 한 남자에게 이런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을 못 만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나를 찾아온다면 당신을 만나 뵐 겁니다." 이러한 링컨의 기조는 여론수렴뿐 아니라 다른 효과도 발휘했다. 리더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리더를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신뢰하게 된다.
리더는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찾아야 하고, 요구해야 한다. 지금 살펴보듯이 중요한 정보를 찾으려 부단히 노력한 덕분에 링컨은 시의적절하게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일상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벗어나, 또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나와 구성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리더에게 값지고 효과적인 것은 없다. 집무실 같은 공적인 장소를 벗어나면 긴장을 풀고 여유 있게 생각했던 것들을 스스럼없이 말하게 되는데, 이렇게 나온 의견이 더욱 진실어린 것일 수 있다. 링컨은 바로 이 점을 노렸다. 그는 각료 및 일반 국민들과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자 했고 진실을 알고자 했다. 복잡한 업무 때문에 링컨처럼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리더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지 않은가?
신뢰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붙들어라에이브러햄 링컨은 공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모든 차원에서 강력한 협력관계를 맺음으로써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았다. 그는 휘하의 사람들이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늑장을 부릴 것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쾌활하면서 유능하고 헌신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강력한 윤리 의식과 가치 의식을 공유한 사람은 누구인가를 알고 싶었다. 또한 링컨은 자신이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가 진정 무엇을 원하고 요구하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휘하 사람들이 알아주기 바랐다. 링컨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면 그들은 링컨의 지도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고, 따라서 일이 늦어지거나 별도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링컨은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으며, 신뢰를 쌓았다. 그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 특히 각료와 군사령관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반감을 이겨내야 했다. 링컨 행정부의 국무장관인 수어드도 처음에는 링컨이 국가를 통치하고 지도할 만한 리더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초기의 잡음과 그 모든 이견에도 불구하고 수어드와 링컨은 오래지 않아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 저명한 변호사였던 스탠턴은 자신에 비해 무명에 가까운 링컨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이러한 모욕에도 불구하고 링컨은 그를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다. 그 업무에 스탠턴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탠턴은 장관직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머지않아 링컨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입증했다. 스탠턴은 육군성을 철저하게 개혁해서 효율적인 부처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링컨 역시 실패를 맛본 적이 있다. 일례로 "젊은 나폴레옹"으로 불렸던 매클렐런 장군과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시간이 지나자 매클렐런 장군은 대통령이 자신을 간섭하려 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링컨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몇 개월 동안 방어적인 자세를 견지한 매클렐런 장군은 급기야 아예 전혀 행동하지 않으려 했다. 따라서 링컨은 점점 더 많은 지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링컨의 '간섭'이 심해지자 매클렐런 장군은 거칠게 반응하여 마구잡이로 돌변했다. 결국 링컨은 매클렐런 장군을 총사령관에서 해임했고, 두 사람은 1864년 선거에서 대통령 자리를 놓고 싸우게 되었다. 매클렐런과의 악연으로 링컨은 어느 정도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는 인간적인 고결함만은 지켰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돈독한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어드와 스탠턴처럼 훌륭한 동반자를 얻을 수 있었다.
링컨은 사람들이 특정 행동을 하는 동기는 물론,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비겁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매우 관대하게 보아주었다. 링컨은 사람들의 많은 실수를 포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휘하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물론 그는 돈독한 관계를 맺기 위해 전략적으로 용서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마음씨가 너그럽고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기 때문에 사면을 단행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리더가 동정심이 많고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준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리더를 보다 쉽게 신뢰한다는 것이다. 신뢰만큼 성공적인 인간관계에 필요한 요소는 없다. 리더들은 직원들 및 연계 조직과의 공고한 연대에 힘입어 리더의 입지가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의 불화에서 자신의 약점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습니다."라는 구절을 명심하라.
2부 고난 앞에서의 품위최고의 정책은 정직과 성실이다미국 철학자 윌리엄 호킹(Willian Ernest Hocking)은 "진실을 없애는 신화가 있는가 하면 진실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 신화도 있다."라고 했다. 정직과 성실에 대한 링컨의 명성은 다소 부풀려진 부분이 있지만,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살았던 인물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그의 행적은 더욱 공고해진다. 이 경우 신화는 실제성을 띠게 된다. 링컨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정직했고, 그 자질에 힘입어 위대한 리더가 되었다. 리더십이라는 건축물은 정직과 성실이 없으면 무너지고 만다. 정직과 성실은 모든 조직을 하나로 묶는 초석이다. 톰 피터스는 가장 공격적이고 성공적인 조직은 성실과 신뢰를 강조하는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심할 바 없이 정직은 항상 최고의 정책이었다."라고 적고 있다. 베니스와 나누스는 "관리자들은 일을 올바르게 하고 리더들은 올바른 일을 한다."고 말했다. 제임스 맥그리거 번즈는 "윤리를 떠나면 리더십은 단순한 관리 및 정치 기술로 전락하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다.
링컨은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인들을 움직여왔던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가치, 곧 '자유와 평등의 추구'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 강조했다. 그의 성실은 곧 국가의 성실이었다. 링컨이 북부의 각료와 국민들에게 그토록 효과적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헌신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이들의 기본적인 상식과 성실에 호소했다. 나아가 링컨은 자신이 말한 바를 몸으로 실천했다.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그들을 세심하게 돌보았다. 그는 인내와 신뢰와 존중으로써 사람들이 성공의 계단을 오르도록 도왔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링컨은 번즈가 말하는 '공유하는 리더', 곧 조직의 정체성을 밝히고 가능한 한 원대한 목표와 높은 도덕적 수준에서 조직의 강점을 정의하여, 이를 미래로 구체화하는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는 리더가 되었다.
링컨은 항상 올바른 일을 했고,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그는 정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상대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링컨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이유를 불문하고 지지하라. 다시 말하거니와 그 사람이 옳은 경우에는 그를 지지하되, 잘못된 길을 가면 헤어져라." 링컨은 이유를 불문하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나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상대방을 경멸했고 분노를 터뜨렸다. 그가 말한 많은 일화 및 여러 가지 표현은 거짓말쟁이, 사기꾼, 협잡꾼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웃으면서 등 뒤에 비수를 꽂는 사람을 식물의 몸통을 옭죄어 결국 죽게 만드는 덩굴에 비유하였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덩굴은 어느 정도 인간과 습성이 비슷하다. 덩굴식물은 다른 생명을 죽이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교묘하게 꾸민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정직한 에이브"라는 별명은 다소 과장되어 보이거나 심지어 조작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에게 항상 진실을 말하는 리더들은 때로 나쁜 소식을 전할 경우에도 진실하지 못한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큰 존경과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중상모략을 일삼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항상 성실과 정직을 지킨 링컨은 결국 성공했고 존경을 받았으며,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의 태생과 학력을 문제 삼는 사람들, 심지어 그의 정치성향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그의 성실성은 의심하지 않았다. 링컨은 휘하 사람을 가르치든 축하하든 언제나 한결 같은 공정한 태도와 예의를 보여주었다. 그의 스타일을 따르는 리더들은 궁극적으로 열정적인 헌신을 이끌어내는 신뢰와 존경심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진실은 어떤 그룹에서도 통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든 상호작용에 필요한 공통분모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용기를 가지고 부당한 비난에 맞서라링컨은 미국의 어느 대통령보다도 많은 중상모략과 비방을 당했고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1860년 대선에서 링컨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링컨은 남부에서는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해 대부분의 남부 주들은 투표용지에서 아예 링컨의 이름을 빼버릴 정도였다. 소수파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계기로 남부는 연방에서 탈퇴했고 곧이어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이로 인해 링컨에 대한 비난은 최고조에 달했다. 대다수의 국민은 어리숙해 보이는 서부 출신의 변호사가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기괴하게 생긴 야비한 놈, 한때 장작을 쪼개더니 이제는 합중국을 쪼개고 있는 3류 변호사, 거칠고 상스러운 재담꾼, 독재자, 원숭이, 광대 등, 당시 언론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름으로 링컨을 비웃었다.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무시무시하고 부당한 비난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4년 동안, 링컨은 자신에 대한 모든 잔인한 적개심과 비난을 꿋꿋이 이겨냈다. 그는 비난을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서 남북전쟁에서 승리했고 미국을 지켜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군사 제도를 재편했고, 대통령 권한을 확대했으며, 노예제도를 철폐했고, 미국인의 애국심을 새롭게 고취시켰다. 오늘날의 리더들도 부당한 비난을 극복한 링컨의 방법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링컨은 자신에게 쏟아진 비난을 다양하게 처리했다. 사실 그는 대부분의 비난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난을 이겨냈다. 이 방법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특히 유용할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나오는 비난은 대부분 비열하고,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링컨은 비난에 일일이 대응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설령 노골적인 비난으로 상심하고 낙담할 때조차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은 잘못된 공격으로 인해 국민들이 자신의 원칙을 오해할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공격이 대다수 사람들의 믿음과 상반될 경우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타협하지도 않았다. 1858년, 그는 노예제도에 대한 견해 때문에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경선에 나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