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리더십
김호진 지음 | 청림출판
1부. 정치와 국가경영직업으로서의 정치와 정치인정치는 국가경영이다 : 어느 날 자공(子孔)이 공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공자는 "식량이 풍족하고 군비가 튼튼하면 백성들은 정부를 신뢰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공자에게 정치는 국가경영을 의미했다. 사실 정치를 어떻게 보든 궁극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 정치라는 말이다. 이것이 위민정치론이다. 벤담(Jeremy Bentham)은 국민의 복리증진, 이른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을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부국강병을 중시하고 국민들에게 양질의 재화와 서비스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정치는 곧 국가경영이다.
직업정치인의 유형: 19세기 미국의 신학자 클라크(James Clarke)는 정치인을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정치가(statesman)이고, 다른 하나는 정상배 또는 정치꾼으로 불려지는 정략가(politician)이다. 정략가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정치가는 경륜과 신념이 있고 대의에 따라 행동한다.
ㆍ거래형 : 협상에 능하나 타락하기 쉽다 - 거래형에게 정치는 협상과 타협의 미학이다. 비스마르크가 말한 것처럼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 유형은 주고받는 거래가 타협의 철칙이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하고,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게 거래형의 정치논리이다. 이들에게 정치는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래서 상대를 인정하고 파트너십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버가 말한 '정치에 의해' 생활하는 직업정치인이 주로 이 유형에 해당된다.
ㆍ승부사형 : 순발력은 천부적이나 내용이 없다 - 승부사형은 정치를 게임으로 본다. 승자 영웅론을 신봉하고, 은밀한 거래나 권모술수보다는 정면 대결을 선호한다. 승부사형은 순발력과 전략적 사고가 뛰어나고 대중정서를 읽는 통찰력이 동물적으로 예민하다. 결정적인 시기가 오면 서슴없이 출사표를 던지고, 한번의 승부로 인생역전을 기대한다. 이런 이유에서 승부사형은 정치 게임에는 경쟁력이 있지만 국가 경영에는 성공하기 어렵다. 합리적이어야 할 정책까지 감각적으로 판단해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은 소영웅적이어서 지나치게 대중의 박수갈채를 의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인기영합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ㆍ지사형 : 지조를 중시하는 이상주의자 - 지사형에게 정치는 인격의 표현이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변절과 배반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하지 않는다. 실용보다 개혁을 선호하고, 허장성세는 체질적으로 배척한다. 또한 정치인이 신념을 버리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정신문화는 본질적으로 청교도적이다.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쇼맨십 같은 속물정치를 외면한다.
ㆍ테크노크라트형 : 정책마인드는 강하나 대중성이 약하다 - 이들은 정책을 정치의 본질로 생각한다. 정책 없는 이념은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테크노크라트형은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이념보다는 실용을 중시한다. 그렇다고 반개혁적인 것은 아니다. 이들이 거부하는 것은 무모하고 파괴적인 개혁이다. 행정경험이 있는 직업정치인이나 재계 또는 관계 출신 정치인이 대개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은 시야가 넓고 균형 감각이 있어 정책오류는 적으나 대중성이 약한 것이 한계다.
왜 리더십인가누가 역사를 이끄는가 : 인간은 역사의 노예가 아니다. 지배하는 인간이든 지배받는 인간이든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앞장서서 이끄는 자의 리더십이 역사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권력의지(will to power)로 무장한 초인(superman/overman)을 역사의 주체로 부각시켰다. 한편, 헤겔(Hegel)에게 나폴레옹은 세상을 바꾸는 초인이었다. 그는 1806년 10월 나폴레옹이 예나(Jena)에 입성하자 세계정신(welt-seele)이 말을 타고 왔다고 감격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역사의 노를 젓는 것(rowing)은 다중의 몫이지만 키를 잡는 것(steering)은 지도자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싸움터에서 전투를 하는 것은 사병들이지만 이들은 사령관의 지휘가 없으면 오합지졸이 되게 마련이다. 혁명도 마찬가지이다. 지도자와 소수정예가 앞장설 때 혁명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레닌의 뱅가드(vanguard, 전위)이론이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는 국가경영의 키를 잡은 사람이다. 키를 조종하는 능력과 기술이 바로 리더십이다. 그가 어떻게 키를 조종하느냐에 따라 국가라는 이름의 배는 순항할 수도 좌초할 수도 있다. 국가경영자는 모름지기 키잡이에 능숙해야 한다. 국정방향을 제대로 잡고, 국민들의 역량을 결집해서, 힘차게 역사의 물길을 갈라야 한다. 그래야 국가경쟁력을 살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리더십은 국가경영의 독립변수로 간주되어야 한다.
국가경영자의 조건과 덕목 :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이어받아 철인지배론을 강조했다. 플라톤은 『국가론(폴리티아: politea)』에서 지도자는 균형감각과 판단력이 있고, 이성과 절제로 비열한 행동과 격정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철인이라고 했다.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를 찬미했다. 그가 말하는 카리스마는 대중을 열광시키고 복종시키는, 초자연적(supernature)이고 초인간적(superhuman)인 천부의 재능이다. 카리스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고, 제왕처럼 군림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문제다. 이것만 피하면, 카리스마는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지도자에게 신념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 결과에 대해 어떤 응보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베버는 정치 지도자의 행위는 이 두 윤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소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경영의 주요 변인들준비된 리더십: 미국의 43대 대통령 조지 부시는 준비된 리더십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스스로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대통령이 된 후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민의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다면 이미 늦었다." 국가를 경영한다는 것은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일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국정은 항로 잃은 선박처럼 표류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국정책임자는 항해사가 항로를 알고 있어야 하듯이 비전과 정책을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인사가 왕도다: 인사에 실패하고 국가경영에 성공한 지도자는 어디에도 없다. 베이컨(Francis Bacon)이 "정치 지도자는 업무를 맡길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내는 천부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마 이 점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숨은 인재를 찾는다고 검증 안 된 사람을 기용하면 실험적인 인사가 되기 쉽고, 연고와 파당성에 치우친 인사는 편 가르기 인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인사가 어려운 것이다. 『반경(反俓)』의 저자 조유가 한 다음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을 아는 것이 군왕의 길이고, 일을 아는 것이 신하의 길이다."
정부-의회 관계와 국정효율: 현대 국가는 몽테스키외(Montesquieu)가 『법의 정신(De Lesprit des lois)』(1748)에서 제창한 3권 분립을 권력 구조의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이런 권력구조에서 국가경영자가 정책성과를 내려면 먼저 의회를 장악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회의 존재 이유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처도 경제가 중병을 앓던 1979년에 정권을 잡았다. 1979년 5월 총선에서 그녀는 하원 635석 중 339석을 석권하여(득표율 43.9%) 총리가 됐다. 이처럼 의회를 완벽하게 장악함으로써 이른바 대처리즘을 거침없이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이처럼 대처리즘이 성공을 거두자 빈사위기의 국가경쟁력이 되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영국의 지는 해가 다시 뜬 것이다. 대처의 리더십과 의회가 공조한 결과였다.
정치권력과 언론 : "이성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언론인들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지미 카터 대통령이 한 이 말은 권력과 언론과의 적대성을 잘 대변하고 있다. 정치권력과 언론은 생리적으로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왜 권력과 언론은 사이가 나쁜가. 언론의 존재 이유가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비판과 견제가 없으면 권력의 독선과 오만, 부패와 타락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언론의 비판기능은 존중돼야 하고 민주주의 파수꾼으로 인식돼야 한다. 언론과의 관계가 친화적이면 국가경영은 순풍에 돛단배가 되지만, 적대적이면 풍랑과 싸우는 뱃사공의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정권이 여론의 단두대에 세워지는 이런 한계상황을 극복하려면 정부는 언론과의 소모적인 갈등을 지양하고 공존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국가경영과 리더십 전략리더십 전략이란: 리더십 전략이란 국가경영자가 대항세력을 무력화시키고, 국민들로부터 동의와 지지,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정치공학술을 말한다. 한마디로 국민을 이끌고 나라를 다스리는 술(術)이 바로 리더십 전략이다.
리더십 전략으로서의 마키아벨리즘 : 고대 플라톤의 철인정치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정정치에서 권력의 야수성은 극복의 대상이었지 수용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공화제와 군주제가 각축하던 16세기의 피렌체 정국을 직접 체험하고, 정치권력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정론을 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현대 정치학의 태두로 불려지고 있다. 마키아벨리즘은 속이고 죽이는 것을 능사로 삼는 술(術)의 제왕학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지도자)의 행위는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에 관계없이 정당성을 갖는다고 했다. 예컨대 "무력을 무모하게 남용하면 결코 용서할 수 없지만, 그것을 국가와 시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선용(역설적이지만)한다면 군주는 신과 인간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더십 전략으로서의 포퓰리즘 : 포퓰리즘은 1890년 미국에서 출현한 인민당(populist party)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장밋빛 공약을 남발한 것에서 유래한다. 정치인들은 대중인기를 유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 점을 빗대어 흐르시초프는, "정치인은 강물이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는 공약을 제시한다."고 야유했다. 이처럼 정치인이나 정부가 인기를 얻기 위해 마구잡이로 선심정책을 펴거나 현란한 언변으로 혹세무민 하는 행위를 대중 영합주의 또는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리더십 전략으로서의 관료적 권위주의: 관료적 권위주의(bureaueratic authoritarianism)는 군부정권이 즐겨 쓰는 리더십 전략이다. 군부체제에서는 국가의 모든 억압행위는 안보와 산업화의 이름으로 미화되고, 억압을 전담하는 군과 개발을 전담하는 기술관료 및 재벌이 지배연합의 주축을 이룬다. 이처럼 안보와 산업화를 명분으로 권위주의 통치를 자행하는 지배양식이 관료적 권위주의이다.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는 생래적으로 정당성이 빈곤하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국내외 자본과의 지배연합을 강화하지만, 그것은 대외종속과 노동억압을 수반하기 때문에 민중 부문의 저항을 격화시키는 역작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군부 주축의 지배 블럭과 이에 맞서는 민주화 동맹 사이에 긴장과 대립이 고조되다가, 일정 한계를 넘어설 경우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는 와해된다. 우리가 경험했던 유신체제와 5공체제의 붕괴가 이 점을 실증한다. 이것은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의 타고난 숙명이다.
리더십 전략으로서의 참여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를 주창한 대표적인 사상가는 루소(Jean Jacgues Rousseau)이다. 자유를 최고 가치로 상정한 루소는 참여만이 자유를 담보한다고 주장했다.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견해를 빌리면 소수(대표)와 다수(국민)가 권력을 나누어 갖는 제도가 바로 참여민주주의이다. 다시 말해 대의 민주주의가 자치 이념에 충실하도록 참여의 폭을 가능한 넓힌 것이 참여민주주의이다. 참여민주주의의 주요 기제로는 국민(주민)발의, 국민(주민)투표, 국민(주민)소환, 주민감사, 마을회의, 사회협약, 공청회, 시위, NGO, 인터넷 등이 있다.
2부. 대통령과 리더십이승만, 가부장적 권위형(1948~1960)이승만 어떻게 봐야 하나 : 1945년 귀국 당시 그가 대중에게 심어준 이미지는 파란의 삶을 살아온 독립투사였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였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의 이면에는 부정적인 요소도 잠복하고 있었다. 사실 정치인 이승만은 술수에 능한 사람이었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안이었다. 예컨대 대권을 위해 그는 분단도 불사했고, 개헌 또한 다반사로 단행했다. 반일을 주장하면서도 친일파를 중용하는가 하면 반공의 이름으로 정적을 냉혹하게 탄압하고 양민을 학살(거창사건)하기도 했다.
초대 대통령이 되다 : 해방(1945)에서 독립(1948)에 이르는 미군정 3년은 좌우가 격돌하는 혼란기였다. 격돌의 표적은 국가건설이었다. 남북한 통일정부냐 남한만의 단독정부냐, 누가 최고 권력자가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제정치의 기상변화에 민감했던 이승만은 당시 한반도에 일고 있는 미·소간 냉전기류를 꿰뚫어 간파하고 미국을 후원자로 이용했다. 따라서 그는 반공친미 노선을 철저히 고수했다. 이런 점에서 그가 좌익(인공)의 주석 추대를 거부하고 단독정부수립을 추진한 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환심을 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승만의 전부는 아니었다. 카리스마가 없었다면 그는 결코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항일 독립운동과 임정수반의 경력, 대중을 감동시키는 탁월한 웅변술과 유창한 영어, 뛰어난 국제 감각과 외교력이 카리스마의 원천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귀국 당시(1945. 10.10) 그는 백발의 노구(71세)였다. 어눌한 한국어 표현과 바람에 날리는 흰 머리카락은 망국의 슬픔을 안고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한 노 정치인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력서였다. 그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가슴 저린 외경심을 느꼈을 것이다.
이승만의 국가경영과 지배전략 : 이승만이 주창한 지배 이데올로기는 일민주의(The One-People Principle)였다. 국민의 대동단결과 평등(동등한 권리와 복리)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호소력이 없었다. 개념이 너무 추상적이고 난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천구호로 내세운 것이 반공과 반일이었고, 이것은 예상외로 호소력이 강했다. 이에 힘입어 이승만은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말하는 리더십의 헤게모니를 손쉽게 구축할 수 있었다. 12년간의 장기집권이 이를 말해준다. 당시 반공은 국교나 다름없었다. 이승만은 한민당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일단 당선되자 그들을 홀대했다. 첫 내각을 구성하면서 사실상 한민당을 배제한 것이다. 배신감을 느낀 한민당은 곧바로 비판세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