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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지음 | 지식의날개
제1부 리더십 개념의 역사적 변화



리더십의 미스터리

리더십의 공통된 특질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역사의 경로를 자신의 의지대로 바꾼 위인의 역동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 등, 역사의 변화에 관한 설명의 기저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언제나, 성공한 영웅을 전능자로서 숭배해왔다. 어린이들은 전사들, 무법자들,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다. 서점에 가보면 성공한 기업가, 전쟁 지략가, 정치적 거물들의 번드르르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영웅이 위대한 것은 그가 무엇을 이루었느냐와 그가 어떤 사람이냐, 즉 그의 특질 때문에 위대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위인들이 종종 몰락하듯이 위인 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상의 영웅이 이룬 고매한 업적은 가끔은 도덕적으로 흠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며, 별로 영광스러울 것도 없이 그저 단순한 우연이나 '상황적 요인'의 결과인 경우도 많다.



변화의 잠재력은 인간이 얼마만큼 자신의 사회적 출신과 성장 경험의 한계로부터 벗어나고, 그 운명을 통제하고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창조적으로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다. 언뜻 생각하면 리더십을 권력의 중요한 한 형태로 볼 수 있으나, 그것은 단순히 휘두르는 자가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서가 아니라, 지도자를 따르는 자들의 필요, 욕구, 동기, 가치, 능력의 창조적이며 역동적인 상호작용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리더십을 인간의 욕구와 사회변화라는 가장 어려운 문제의 일단을 밝혀줄 수 있는 학문 중의 학문(master science)으로 인식하게 되어, 리더십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이 탐구는 절박한 여건과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 여건과 상황을 초월하고 또한 변혁하기까지 하며, 그 과정에서 그들이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개조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X 요인을 찾아서

인간사회의 모든 변화는 어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주도권을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군사적 침략과 대학 설립, 전기를 발명하는 것, 새로운 정부를 창출해내는 것,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문제의 핵심은 누가 어떤 여건 하에서 어떤 방법으로 변화의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변화에서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 학파의 학설에 따르면, 새로운 재화와 이를 값싸게 생산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어설픈 땜장이(tinker)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의 삶이란 주로 살아가는 데 풍파가 없도록 작은 변화들에 적응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땜장이는 보다 나은 기계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다시 노동의 성격을 바꾸었으며, 그 생산품을 팔기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이러한 변화가 18~19세기의 급속한 산업화를 떠받쳤다.



다른 학파의 학설에 따르면, 사회의 변화는 이러한 어설픈 땜질이 아니라 사유의 결과였다. 즉 사람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상상했고, 그림을 그려보았다.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일을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해보는 것을 뜻했다. 예컨대 말의 힘을 증기의 힘으로 바꾼다든지 편지 대신 전보를 친다든지 하는 일들이었다. 찰스 다윈은 '적응'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끝없는 투쟁의 결과이자 종 내부에서의 갈등의 산물임을 알아냈다. 그러나 다윈주의는 진화론적인 변화에는 오직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욕구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즉 종(種)들은 적응하려고 의도하지 않으며, 적응은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신의 법칙을 거부하는 이론이었다. 따라서 역사가들은 역사의 흐름 자체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사건들에 '우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렇듯 역사의 법칙들을 밝힐 수 있는 증거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전쟁이나 사회 변화 같은 사건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상투적인 지적 수단으로는 분석해낼 수 없는 일련의 복잡한 원인들로 가득 차 있다. 현존하는 지적 자원들을 차용하여 종합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적 자원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변학문이 필요하다. 그 학문이 리더십이고, 리더십이란 바로 역사적 인과관계에서의 X요인을 말한다.



리더십은 경쟁과 갈등의 국면에서 리더와 추종자 양자가 각각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는 목표나 서로 공유하고 있는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해 특정 동기와 가치들, 여러 가지 경제적, 정치적, 기타 자원들을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상호적인 동원 과정이다. 리더십은 분명 권력과는 뗄 수 없는 것이지만 단순한 권력 소유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으로,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거래적 리더십으로 지도자들은 어느 한 가지를 다른 것과 교환할 목적으로 추종자들에게 접근한다. 예를 들어 투표로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에 대한 보상으로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둘째, 변혁적 리더십은 추종자들의 현존하는 요구 또는 잠재적 추종자들의 필요와 수요를 인식하고 이를 충족시킴으로써 추종자들을 전인격적으로 사로잡는다. 그리고 변혁적 리더십은 궁극적으로 추종자들의 진정한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도덕적 리더십으로 발전한다.



변혁적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변혁'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바꾸다(change)'와 '변혁시키다(transform)'라는 동사의 정의를 구분해야만 한다. '바꾸다'라는 말은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 주고받는 것, 자리를 맞바꾸는 것' 등을 의미한다. 반면 '변혁시키다'라는 말은 개구리가 왕자로 탈바꿈하거나 마차공장이 자동차공장으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형식이나 구조의 대변신을 일으키는 것, 사물의 상태나 본질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변혁적 리더십이란, 주관적인 것을 배제하기보다 이를 다른 다양한 요소들과 통합하고, 이것들이 한 덩어리를 이루어 중대한 사회 변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완전히 새로운 정향성'을 만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변혁적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변화의 과정에 참여시키고, 집단정체성을 고무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기술하기 알맞은 단어가 바로 힘 실어주기(empowerment)라는 단어이다. 변혁적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대신 추종자들을 옹호하고 고무한다. 지도자와 추종자들 간의 관계와 관련하여 자리하는 감정을 보통 카리스마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지도자와 추종자 관계를 왜곡한다. 추종자들은 너무나 충성스럽고 복종적이어서 지도자의 정신적 갈증을 충족시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한편 지도자도 추종자들에게 권한을 주지 못한다. 서로 힘을 실어준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힘을 실어주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카리스마는 기껏해야 혼란스럽고 비민주적인 리더십의 한 형태이다.



변혁적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최상으로 여기고, 또 영속적인 행동원리를 포괄하는 공적 가치들의 테두리를 규정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헌법과 법률,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해석의 이면에서 사상을 형성한다. 일반시민들에게 그것은 일상적 대화의 일부가 되지는 않지만 거대한 변화의 가능성이나 그러한 징조에 직면하게 되면, 이 막강한 기본 가치들이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리더십이 정말 변혁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변혁적 가치들은 변혁적 리더십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2부 리더의 자질



체스게임과 권력투쟁

오랜 옛날부터 체스는 '왕족의 게임'이었으며, 미래의 통치자들을 위한 훈련장이었다. 미래의 통치자들은 이 작은 체스판 위에서 말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방법을 배웠다. 100년 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체스게임에다 '지적인 전투'라고 이름을 붙였듯이 체스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 체스게임은 헤아릴 수 없고 급변하는 요인들, 대립과 협력의 대조적인 힘, 그리고 몹시 사나운 변수들의 바다로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리더십의 이론과 실체를 탐구하는 것은 '인간 체스'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리더십이라는 이 손에 잡기 어려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에 관한 일련의 연구들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그들이 권력을 어떻게 획득했으며, 지배 권력을 둘러싼 경쟁에서 발생할 수 있는 투쟁을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억제하려고 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엘리자베스 1세는 1558년부터 1603년까지 잉글랜드를 통치했다. 그녀의 긴 치세 동안 경쟁관계에 있는 군주들로부터 위협당하고 멸시당하여 때로는 인기가 없었지만, 후세에 그녀는 훌륭한 여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의 제도와 신민들을 새롭게 만든 노련한 지도자로 기억되곤 한다. 엘리자베스는 두 살 때 아버지 헨리 6세가 어머니 앤 왕후를 간통죄로 고발하고 참수하자, 공주의 칭호가 박탈되었고 왕위 계승에서도 제외되었다. 후에 왕위 계승 서열이 복원되긴 했지만 그녀의 이복 남동생과 이복 언니가 왕위 계승에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가 왕이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복 남동생 에드워드 6세는 1553년 열다섯 살의 나이에 결핵으로 죽었다.



에드워드가 죽자 언니 메리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스페인 왕족인 어머니로 인해 가톨릭 신앙에 영향을 받은 그녀는 헨리 8세가 단절시킨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스페인 왕위 계승자인 펠리페 2세와 결혼했으며, 프로테스탄티즘을 이단으로 선언하고 수백 명의 신교도들을 화형에 처했다. 엘리자베스도 프로테스탄트 저항세력의 지도자로 인식되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졌다. 반역죄로 런던탑에 감금된 그녀는 지방으로 추방되었다가 1558년 메리가 죽을 때까지 위험 속에서 살았다. 모진 도제기간과 재위기간 내내 엘리자베스 1세가 직면했던 상황은 거의 모험에 가까웠다. 특히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은 나라를 거의 내전상태에 빠뜨렸다.



엘리자베스는 화해와 조정을 중시하는 온건주의적인 개혁가였지만, 신교도를 옹호하고 가톨릭을 배반자로 간주했다. 더욱이 군주가 여자라는 사실은 늘 그녀의 강인함과 과단성을 의심받게 했다. 가톨릭의 온상이었던 아일랜드에서는 총독이 여왕의 성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성에 따른 나약함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1579년, 청교도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존 스터브스는 여왕이 가톨릭교도인 프랑스인 공작과 결혼하려 한다는 내용을 실은 소책자를 출판했다. 이에 화가 폭발한 여왕은 스터브스의 손을 잘라버렸다. 이렇게 참혹하고 예측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엘리자베스는 어떻게 자신의 왕위를 유지하면서 생존하고 번영했는가.



엘리자베스는 인문주의적 교육을 받은 덕분에 소포클레스와 플루타르코스, 키케로와 리비우스에 대해 배웠고, 통역 없이 외국 사절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어와 이탈리어에 능숙했다. 그녀는 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녀의 궁전을 그 시대 최고의 문화가 꽃필 수 있는 지적 교양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공의 주요한 비결은 그녀가 가진 기민한 판단, 즉 영국과 외국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야심과 경쟁에 관련된 움직임에 대해 직관적인 이해력을 겸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엘리자베스가 40여 년 동안 추밀원(Privy Council)을 다루었던 수완에서 이를 잘 엿볼 수 있다.



통상 12명 정도의 추밀원 의원들은 여왕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대부분 의회와 지역에 그들만의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는 거만하고 전제적인 사람들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추밀원을 완전히 통제하지는 않았으나 필요에 따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할 때에는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또는 소규모 단위로 미리 만났다. 하지만 추밀원 의원들도 여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터득했다. 그들은 유리한 때가 올 때까지 결정들을 유보했다가 마침내 여왕을 설득했다. 또한 종종 여왕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도록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전제적이지만 신중한 군주와 충성스럽지만 의심해보고 결정을 재촉하는 추밀원 사이에 균형이 계발되었다. 이것은 거의 집단적인 리더십에 가까웠다.



엘리자베스는 암살의 음모와 왕위계승권을 주장하는 경쟁자, 적의를 품은 성직자들, 다루기 힘든 귀족들, 그리고 스페인을 비롯한 외국으로부터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따라서 그녀의 최대 목표는 이러한 불안정을 극복하고 국내 질서 유지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 통치자들이 했던 철권통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톨릭 교도들도, 프로테스탄트 광신자들도 만족하지 않았던 종교 법안을 단호하게 추진했다. 즉 그녀 나름의 실용주의를 반영하고, 극단주의자들을 배제한 거대하고 폭넓은 안정화 센터로 바꾸려고 했다. 이것이 달성되자, 더 이상의 개혁을 위한 모든 제안들을 거절했다. 엘리자베스는 명확한 목표를 추구하고 신중하고 거래적인 생존전략을 취한 군주였다.





제3부 역사상의 리더십 사례



미국 : 건국 리더십의 대변혁

모든 리더십은 집단적 현상이지만 그 집단성은 다양한 양태를 띤다. 과거의 군주들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통치를 했다. 이에 대한 대중의 저항과 개혁이 18세기에 일어났는데, 이는 아래로부터 치받쳐 오르는 민초들의 리더십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런데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리더십을 규합시켰던 것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계몽주의 사상이 가진 지적 명료성과 힘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 칸트이다. 영국의 학자들이 묘사한 바에 따르면, 조용하고 키가 작고 새가슴을 가진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서 교수직도 명성도 없이 오랜 기간 연구에 종사했다. 그러나 점차 다른 젊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지성의 메시아로 추앙받게 되었다.



칸트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루소와 볼테르와 같은 유럽의 여러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추종자들을 매혹시켰다. 이로 인해 계몽사상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창조적 리더십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계몽주의 사상을 제공하는 거대한 백과사전들이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또한 신문, 정기간행물, 서적의 출판이 늘어났고, 학구적인 엘리트들을 위한 도서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정기간 책을 빌려주는 도서열람실이 급증했다. 독서층은 난공불락의 특권층에 대한 불만과 국민을 대표하지 않는 정부, 그리고 국민의 요구에 묵묵부답인 통치자들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면서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유럽에서의 변화와 충격은 그 당시 벤자민 프랭클린이나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여행자들을 통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전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들이 미국 국민들을 변혁시키는 새로운 집단적 리더십의 중추를 형성했다.



미국인이라면 모두 1776년 7월 4일을 알고 있다. 독립선언이 지도자들에게 부여된 소명이었다면, 그 독립선언을 만든 것 자체는 집단적 리더십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행위였다. 토머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 세 명이 선언서를 기초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가능하고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20여 명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이름과 함께 존 행콕(John Hancock)의 큼지막한 서명이 들어간 독립선언서는 1776년 7월 8일 필라델피아에서 공개되었고, 다음날 뉴욕에서 조지 워싱턴 장군과 그의 부대원들 앞에서 낭독되었으며 13개주 구석구석까지 보내졌다. 그러나 독립이후, 대중들 사이에서 종교, 계층, 지역 등과 같은 구태의연한 이질적 요소들이 전면에 부상했다. 그리고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자 통일되고 동질적인 시민이라는 공화주의자들의 이상이 흔들리게 되었다.

1780년대 중반에는 농장노동에 대한 임금이 급격하게 떨어진 반면 고율의 세금이 유지되었다.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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