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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발명한 사람, 헨리 포드

헨리 포드 지음 | 21세기북스
들어가며 -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과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삶의 즐거움을 상당 부분 잃고 있다. 그런 생각 속에서 너무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기에 삶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동력과 기계, 돈과 상품은 인간에게 삶의 자유를 느끼도록 하는 경우에만 가치가 있다. 그들은 삶의 수단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내 이름이 붙은 기계(자동차)를 단지 기계로만 보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기계에 내 이름을 붙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나의 사업이념, 즉 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의 구체적인 증거물이라 생각한다. 포드 자동차 회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러한 내 이상이 옳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깨우쳐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비웃는 사람들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다. 새로운 아이디어마다 쫓아다니며 이 말 저 말 되는 대로 주워섬기는 것보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증명해보라고 요구하는 것이 더 낫다. 이러한 회의적인 태도가 신중함을 의미한다면, 나는 이것이 문명의 밸런스 휠(평형바퀴)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 중 상당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좋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 신중하게 조사해보지 않고 받아들인 경솔함에서 비롯되었다. 오래된 아이디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지만, 오래된 아이디어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 증거의 무게는 가치가 있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귀중한 것이지만, 아이디어는 그저 아이디어일 뿐이다. 누구라도 아이디어 하나쯤은 생각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발전시켜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법이 본래 능력 이상의 일을 해줄지 모른다는 기대는 품어봐야 시간낭비다. 가난을 없애거나 특권을 폐지하는 법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난은 더 널리 퍼져나가고 특권은 더 자라나는 모습을 보게 될 뿐이다. 다른 나라보다는 그래도 덜한 편이겠지만, 우리는 워싱턴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다. 법이 능력 밖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꾸겠다고 약속한 입법가들에게도. 우리가 정부를 도울 수는 있지만 정부가 우리를 도울 수는 없다. 국가의 안녕은 어디까지나 우리들 개인에게 달려 있다. 이는 당연한 일이고, 또 그래야 가장 안전하다. 정부는 부질없이 뭔가를 약속하기는 해도 이를 실제로 행하지는 못한다. 유럽에서 하는 것처럼, 정부는 점잖게 앉아 통화조작을 할 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노동이며 그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주장보다 더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소리도, 그보다 더 몹쓸 소리도 없다. 말할 것도 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민주주의적 관념은 진보를 막으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똑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수적으로 적다. 그렇기에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 다수가 더 큰 몫을 가져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스스로를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공동체를 지휘하여 보통 사람들이 덜 노력하고도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 능력의 하향평준화를 일컫는 민주주의는 낭비일 뿐이다. 자연을 보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포드 차 수백 대, 수천 대를 운전해본 사람들은 완전히 똑같은 차는 한 대도 없었다고 말한다. 새 차를 1시간 정도 운전하고 그것을 다른 새 차들 속에 섞어놓으면 겉으로 봐서는 찾아낼 수 없지만 운전을 해보면 골라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사람은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만큼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에 딱 좋은 시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비스를 경시하던 시절이 이제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아무도 비용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주문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는 기업에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독점은 기업에 해약을 끼친다. 폭리를 취하는 행위는 기업을 망친다. 힘껏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기업에 마이너스다. 기업은 닭처럼 무언가를 얻기 위해 땅바닥을 박박 긁어야 할 때가 제일 건강한 법이다. 돈은 서비스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물론 돈은 반드시 벌어야 하지만 안락한 삶을 가져오는 수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서비스를 수행하는 기회로 이어져야 한다. 나는 안락한 삶을 그 무엇보다 혐오한다. 우리 중 누구에게도 편안히 살 권리 따위는 없다. 문명사회에서는 게으른 자들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 우리가 세운 회사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내가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도 단 하나, 그 이유 때문이다.





말 없는 마차에 대한 꿈



나에게 발명가의 길로 들어서서 더 나은 운송수단을 찾을 동기를 제공해준 것은 어린 시절 농장에서의 생활이었다. 나는 1863년 7월 30일 미시간 주 디어본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우리 농장에는 허리가 휠 만큼 많은 일거리가 쌓여 있었다. 그 시절에는 다른 농장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조금이라도 일을 더 능률적으로 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곤 했다. 어머니는 내가 타고난 기계공이었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렇게 궁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계에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일 게다. 나의 어린 시절 가장 큰 사건은, 12살 때 읍내에 나갔다가 자동차를 보게 된 것이었다. 디트로이트에서 약 1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 자동차를 봤던 12살 소년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내 주된 관심사는 줄곧 길을 달릴 기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읍내에 갈 때도 항상 너트며 고리쇠 등의 기계 부품을 호주머니 한가득 넣고 다녔다.



내가 견습생으로 일할 당시, 영국 잡지 <과학의 세계>에서 당시 영국에서 개발한 '조용한 가스기관'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가스기관이라는 아이디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 정말로 진지하게 노력을 쏟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내연기관이 보통 생각하는 이상의 용도로 쓰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아무도 없었다.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전부 이 기관이 증기기관과는 상대가 안 된다는 점만 자신 있게 보여주었고 성공 가능성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똑똑한 사람들이란 늘 그런 식이다. 늘 한계밖에는 모른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잘 나가는 전문가는 절대 쓰지 않는다. 부정한 수단으로 경쟁자를 꺾고 싶다면 그에게 전문가들을 보내주면 된다. 확신하건대, 그는 전문가들의 훌륭한 충고를 듣느라 일은 거의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가스기관에 흥미를 갖고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몇 년 후 이제는 어엿한 기계공이 되어 농장의 내 작업장에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때 디트로이트 전자 회사의 기술자 겸 기계공으로 월급 45달러를 주겠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농장일보다 그쪽 수입이 더 좋았고 어째됐든 농장 생활은 청산할 생각이었으므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전등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했다. 그러다 보니 실험할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주간근무로 옮긴 다음부터는 매일 밤과 매주 토요일에 새 모터 작업에 매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 고된 줄을 몰랐다. 좋아서 하는 일은 조금도 힘들지 않은 법이다. 나는 항상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다.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가 나보다 더 확신에 넘쳐 있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아내는 항상 그런 자세였다.



1892년 드디어 내 인생 최초의 자동차를 완성했다. 차를 출발시키려면 클러치를 중립 상태에 놓고 손으로 모터의 시동을 걸어야 했다. 속력은, 운전석 앞에 있는 클러치 레버를 당겨 벨트를 이동시킴으로써 시속 16킬로미터와 32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었다. 차를 세우려면 클러치를 놓고 풋 브레이크를 밟기만 하면 되었다. 후진 기능은 없었다. 벨트로 조절하는 것 외에는 속력을 바꿀 방법도 없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특징들은 거의 다 미리 계획해두었던 것들이다. 나는 늘 그런 방식으로 일을 했다. 계획을 세우고, 제작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부사항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결정해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면서 임시변통으로 문제를 막느라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그러면 최종 결과물은 일관성을 잃고 균형이 제대로 맞지 않게 된다. 많은 발명가들이 계획과 실험을 구분하지 못해서 실패한다.





사업은 서비스다



내가 만든 이 '가솔린차'는 디트로이트에서 최초의 자동차이자 오랫동안 유일한 자동차였다. 그런데 차는 꽤나 시끄러워서 말을 겁먹게 하는 통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교통정체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시내에 차를 좀 세울라치면 주변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잠깐이라도 차를 놓아두면 어김없이 호기심을 주체 못한 누군가가 운전해보려고 나섰다. 결국 나는 쇠사슬을 들고 다니면서 가로등에 차를 묶어 두어야만 했다. 경찰과도 말썽을 빚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 당시 내 기억으로는 속도제한 규제 따위는 없었는데 말이다. 하여간 나는 시장으로부터 특별 허가를 얻어야 했다. 덕분에 한동안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운전면허를 지닌 운전사가 되는 특권을 누렸다. 나는 이 차를 1895년에서 1896년까지 1,600킬로미터 정도 몰다가 디트로이트의 찰스 에인슬리에게 200달러를 받고 팔았다. 그것이 나의 첫 판매였다.



사업을 할 때 가장 놀라운 점은 다들 돈 문제에만 관심을 쏟고 서비스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돈이 일보다 먼저가 아니라 사업의 결과물이 되어야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에 역행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제품이 그럭저럭 봐 줄만 하고 그걸로 돈을 벌어들일 수만 있으면 제조 방법을 개선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중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가 아니라 오로지 그것으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느냐가 제품을 만드는 목적이 된다. 소비자의 만족 여부도 관심사에서 밀려난다. 소비자에게 팔기만 하면 된다. 불만스러워하는 소비자를 신뢰를 배신당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성가신 불평꾼으로 본다. 혹은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었어야 할 제품을 고칠 돈을 대주는 돈주머니 정도로 여긴다. 자동차 산업을 예를 들어보면, 일단 차를 팔고 나면 그 다음에 차에 무슨 일이 생기든 관심을 갖지 않았다. 초기의 자동차 산업은 제조업자의 입장에서 볼 때 과학적인 기반은 고사하고 소위 상도덕도 갖추지 못했다. 물론 다른 산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일보다 돈 문제를 우선시하거나, 은행가나 자본가들이 설치는 회사에는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더 나아가 소비자를 위해 운영되는 회사에서 시작할 방법이 없다면 아예 시작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주변에서 본 것과 내 자신의 경험을 종합해보건대, 단순한 돈벌이로서의 사업은 고려할 가치가 없을뿐더러 뭔가를 성취하려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는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직까지 나는 그런 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증거를 보지 못했다. 진짜 사업의 유일한 근본은 서비스다. 제품을 팔았다고 제조업자와 고객과의 관계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때 비로소 고객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 자동차 판매는 도입부에 불과하다. 자동차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 그때야말로 제조업자가 나설 때다. 불만을 품은 고객보다 더 나쁜 광고는 없다.





포드 자동차의 시작



전에 자전거가 그러했듯이 당시에는 최고의 차는 무릇 경주용 자동차라는 생각이 널리 펴져 있었다. 나는 경주용 차를 대단치 않게 여겼지만 제조업체들은 자동차 경주에서의 승리를 통해 대중들에게 자동차의 장점을 인식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굳이 자동차 경주를 하기보다는 테스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남들이 다 경주에 매달리고 있었으므로 나 역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03년 톰 쿠퍼와 함께 속력만을 목표로 두 대의 차를 제작했다. 두 대는 아주 흡사했다. 한 차에는 '999', 또 한 차에는 '화살'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빠른 자동차라야 유명세를 탈 수 있다면 속력 면에서는 온 세상에서 따를 자가 없는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했다. 경기가 끝날 즈음에는 2등과 1킬로미터 가까이 차이가 났다. 999호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 차는 내가 빠른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광고해주었다. 경기가 있은 지 일주일 후, 나는 '포드 자동차'를 설립했다. 내가 부회장이자 설계자, 기능장, 공장장, 총지배인이었다.



사업은 마술에 걸린 듯 잘 되어갔다. 포드 자동차는 내구성이 강하다는 명성을 얻었다. 튼튼하고 단순하면서 잘 만들어졌다는 평이었다. 사업이 커지면서 우리의 작은 목공소로는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1906년 꽤 많은 운전자본을 사용하여 피켓 가와 보비엔 가 모퉁이에 3층 짜리 공장을 지었다. 처음으로 진짜 제조 설비를 갖게 된 것이었다. 우리 차는 5년 동안의 시험기를 거친 후 유럽에서도 팔리기 시작했다. 당시 자동차 사업이 다 그랬듯이 우리의 사업은 무섭게 번창했다. 우리는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첫해 이후로 언제나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리는 현금 판매를 했고, 돈을 꾸지 않았으며, 구매자에게 직접 팔았다. 악성채무도 없었고 무엇이든 우리가 가진 돈 안에서 해결했다. 나는 항상 내가 가진 것 안에서 잘 꾸려나갔다. 일과 서비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돈을 쓸 일이 생기는 속도보다 가용자금이 더 빨리 불어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무리를 할 필요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한때 포드 자동차는 우리를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연합전선에 끌어넣으려는 회사들과의 대규모 소송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그들은 자동차 시장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시장을 독점해야만 한다는 잘못된 원칙에 따라 행동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셀던 특허 소송'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 소송은 포드 자동차 회사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광고가 되었다. 우리가 희생자로 비쳐 대중의 동정을 샀던 모양이다. 아마도 이 소송은 미국 사업가 집단이 힘을 합쳐 저지른 일 중 가장 근시안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건대, 한 업체를 죽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힘을 모은 가장 대표적인 예였다. 우리가 결국 승리한 것은 미국의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들에게도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연합은 업계에서 더 이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게 됐다. 우리는 위기를 극복했고, 1908년경에는 또 하나의 신차 계획을 발표하고 제작에 들어갈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성공의 비밀



나는 몇 년 동안 매일같이 보급형 차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보급형 차가 갖춰야 할 다른 필요 요건들은 이미 작업을 끝내놓아 대부분이 실용화 단계에 있었다. 디자인도 균형을 이루어야 했다. 부품이 고장나기라도 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어떤 부품이 다른 것들보다 더 약하면 기계가 망가진다. 그러므로 보급형 차를 설계할 때 모든 부분이 저마다 쓰임새는 달라도 강도는 되도록 동일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뿐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다루기 쉬워야 했다. 이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가솔린 모터는 본래 다루기 힘든 기계라서 까딱하면 엉망진창이 되기 딱 좋다. 나는 이러한 구호를 내걸었다. "내 차들 중 하나라도 고장이 난다면 나는 욕을 먹어도 싸다." 소년시절, 자동차를 거리에서 처음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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