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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 성직자

로버트 카텔 외 지음 | 한스컨텐츠
Chapter 1 장례식



회사 창립 10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1994년의 어느 날 가을 저녁, 브루클린 중심가에 있는 브루클린 유니언 본사 2층 강당에서는 이 회사의 장례식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카텔은 자기 자신이 브루클린 유니언 100년 역사 가운데 가장 위험한 시기에 CEO가 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들어 정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 산업의 규제철폐로 인해, 이제 에너지 업계에도 무한경쟁 체제가 도입될 터였고 지속적인 성장과 높은 수익성을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이 장례식은 가톨릭 수사 출신인 케니 무어의 아이디어였다. 무어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면 옛것을 보내는 상징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무어가 장례식 얘기를 꺼냈을 때 모든 임원들은 이상한 생각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단 한사람, 카텔은 무어의 제안이야말로 시기적절하고 브루클린 유니언에 꼭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카텔이 연단으로 올라서자 강당 안의 조명은 어두워졌고 분위기도 숙연해졌다. 카텔의 등 뒤에는 케니가 이번 장례식을 위해 준비한 묘석을 들고 서 있었다. 묘석에는 "브루클린 유니언 가스-편안히 잠들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연단은 꽃과 촛불로 장식되어 있었다. 회장의 말이 끝나고 이어서 케니가 연단으로 올라섰다. 강당 안에는 미리 준비된 그레고리오 성가가 적당한 크기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케니는 준비한 납골단지와 메모지를 들어보였다. "저는 지금 이 메모지에 우리 회사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우리가 버려야 하는 것들을 적으려고 합니다.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케니를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직업의 안정성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것 말입니다." 케니는 이렇게 답하고는 직업의 안정성이라고 메모지에 적은 다음 납골단지에 메모지를 넣었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수익, 종신고용, 지속적인 성장 같은 것들 말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앞으로 회사에는 '백인남성'들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도 말했다. 케니는 이 모든 대답을 메모지에 적어 납골단지에 넣었다. "이제 우리 앞에서 사라진 것들을 위해 묵상합시다." 사람들의 표정은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고, 어떤 이들은 얼굴에 웃음마저 띠고 있었다. 케니는 미리 준비한 성수를 납골단지에 뿌리면서 그렇게 축복 속에 과거를 떠나보내고 연단 한쪽에 만들어 놓은 콜럼버스의 산타 마리아호 모형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배 모형은 미지의 목적지로 나아가는 회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케니는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비교적 젊은 나이의 엔지니어 한 명을 불러내어, 그에게 미리 준비한 바람이 다 빠진 구명조끼를 입혔다.



"해도도 아직 그려져 있지 않은 바다에서 우리는 버텨나가야 합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고 파도도 거친 바다에서 계속 지탱해야 합니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장환경으로 인한 과도기를 극복해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번에는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의 적극적인 대답이 이어졌다. "팀 워크요." "최신 기술을 빠르게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케니는 사람들의 대답을 메모지에 적어 구명조끼에 붙였다. "고객들의 요구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명조끼는 사람들의 대답을 적은 메모지로 뒤덮였다. 이젠 이번 행사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새로운 출발'로 넘어갈 차례였다. 케니는 사람들의 시각을 미래로 이끌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한쪽 벽에 커다란 종이를 걸어놓은 다음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는 브루클린 유니언의 미래의 모습을 마음대로 표현해보도록 주문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참여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앞 다퉈 몰려나와 그림을 그렸다.

"새로이 태어난 아이와 마찬가지로 미래의 우리 모습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바라는 우리 회사의 미래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비전이 모두 실현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무엇을 목표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해괴한 생각이었지만 장례식 이후 회사 내에는 새로운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논의가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장례식 이후 18개월 동안 브루클린은 모든 임직원이 하나가 되어 변화를 추진했고, '백 투더 퓨처(Back to the Future)'라고 불렸던 이 기간 동안 수많은 회의와 워크숍이 행해졌다. 워크숍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들은 직원들의 반감이나 두려움을 줄여주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Chapter 2 그전까지의 브루클린 유니언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런 기업 가운데 특정한 지역의 시장 내에서 해당 지역 사람들과의 강한 유대감을 통해 성장해온 기업은 또 얼마나 될까? 브루클린 유니언의 기반은 그야말로 퀸즈, 브루클린, 스태튼아일랜드 지역의 땅속에 단단하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스공급 파이프라인이었다. 해마다 새로이 채용하는 직원의 일정 비율을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선발했다. 브루클린 유니언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이웃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브루클린 유니언의 임직원들 대부분은 친인척 가운데 누군가를 같은 회사동료로 두고 있었다.



지역사회와 밀착되어 있고 직원들 대부분이 지역민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른 에너지 기업들과는 달리 브루클린 유니언의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미터기 확인이나 고장수리를 위해 문을 두드리면, 집에서 만든 레모네이드 케이크를 대접하는 등 고객들은 마치 이웃이 놀러 온 것처럼 환대를 했다. 원래 브루클린은 독립적인 도시였다. 그리고 그 브루클린 시장을 두고 영업을 하던 브루클린 유니언 역시 아주 조그만 기업이었다. 그런데 1898년 브루클린이 뉴욕시에 편입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브루클린이 뉴욕시에 편입되면서 많은 인구가 유입되었고, 여기에 미국으로의 이민열풍이 더해져 브루클린 유니언은 빠르게 성장해나갔다. 그리고 그 성장은 192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하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세계 경제대공황은 브루클린에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게다가 브루클린이 편입되어 있던 뉴욕은 대공황 시절에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지역이기도 했다. 그런데 브루클린 유니언은 오히려 대공황 상황 하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림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더 굳건히 했다. 1935년 해마다 연매출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브루클린 유니언의 당시 CEO였던 클리포드 페이지는 고객들의 고충을 덜어주겠다면서 가스 사용요금을 크게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페이지의 이와 같은 결단은 '책임 있는 이윤의 추구'라는 브루클린 유니언의 전통이 만들어진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고객들을 위해 상품가격을 낮춘다는 사고방식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일이었고, 결과 또한 매우 만족스러웠다. 해마다 큰 폭으로 떨어지던 연매출이 요금인하 발표 이후부터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추세가 1940년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요금을 낮추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익은 거의 내지 못했지만, 이를 통해 얻은 고객들로부터의 높은 선호도는 브루클린 유니언이 100년을 넘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페이지는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브루클린 유니언 최고경영진의 전통을 만들어 낸 사람이기도 하다. 기업의 사장이나 회장이라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던 당시에 페이지는 직접 고객들의 불만사항을 처리하러 다녔다. 또한 전ㆍ현직 임직원들의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에는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해주고 위로해주었다.



창립 100주년을 앞둔 1990년대 초에 이르러 브루클린 유니언은 미국 북동부 지역 최대의 가스공급기업이 되었고, 고객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고 있던 오랜 전통도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었다. 로버트 카텔은 1958년 6월, 당시만 해도 아직 조그만 지역 가스공급업체였던 브루클린 유니언에 입사했다. 입사직후 미터기 수리부 직원으로 브루클린 유니언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던 카텔은 그 후로 엔지니어링, 물류, 파이프라인 제어, 고객 서비스, 영업 등 회사 내의 대부분의 부서에서 근무를 했다. 그가 현장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1961년에는 노동조합 소속 직원들이 임금 인상과 더 나은 복리후생 조건을 요구하며 6주 동안 파업을 한 적이 있었다.



파업으로 인해 브루클린은 커다란 손실을 입었고 카텔은 경영진과 노동조합의 관계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 신뢰관계 위에 형성되어 있는지를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동조합과의 협력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1년 로버트 카텔은 브루클린 유니언의 신임 CEO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이는 브루클린 유니언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다. 당시의 브루클린 유니언과 에너지 업계, 그리고 전체 경제는 변혁의 시대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브루클린 유니언으로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하기 위해 기업의 이름은 물론이고 그 조직구조와 조직문화까지 전부 다 바꿔야만 했다.



1982년 수도회에 입회한 지 15년이 되던 해에 수도원을 나온 케니 무어는 홀어머니가 살고 계시던 방 하나짜리 아파트로 들어갔다. 수도원을 나오면서 그가 바랐던 것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자립해서 먹고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것은 매우 비좁은 삶의 공간과 수도회를 나온 그에게 실망하고 계신 어머니 그리고 수도원 시절보다 훨씬 더 빈곤한 생활이었다. 그는 열심히 일자리를 찾아다녔고, 우연한 계기로 브루클린 유니언 가스의 로버트 카텔이라는 촉망받는 임원을 만나게 되어 인사팀에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회사에서의 업무를 처리하면서 그는 수사로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일반적으로 직원들과 경영진이 서로 대립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경영진에 진실성이 없다고 생각할 때, 직원들이 경영진의 능력을 믿지 못할 때, 직원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다른 누군가를 배려할 수 없을 때 등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진실성과 믿음과 배려의 문제, 이는 바로 케니가 수도원에 있을 때도 소망과 믿음과 사랑에 관해 늘 묵상했던 주제였다. 그는 기업 경영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가운데 상당 부분은 돈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정신, 영혼에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카텔은 직원 개개인의 목표달성과 회사 전체의 이익추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경영자상을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기업의 정신적인 면도 볼 줄 아는 세심함을 갖추고 있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사명이 주어져 있었다. 규제철폐로 인해 경쟁상황은 극심해져 갔고, 최고경영자들은 직원들을 더욱더 몰아대고 있었다. 카텔 회장이 수사로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 케니를 인사팀에 채용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할 일의 내용은 점점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케니는 회사 내에서의 승진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옳고 그름에 대해 자신이 내린 판단에 의해 일을 해 나갔고 수사시절에 배우고 터득한 방식을 임무에 적용하려 했다. 이는 분명 회사 내에서의 성공을 바라거나 최고경영자들의 눈에 들려는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카텔 회장은 이와 같은 그의 업무방식에 관심을 가졌고 그리고 이내 그를 승진시키고 전망좋은 넓은 사무실을 내주었으며, 다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일을 추진하되 그 결과를 카텔 회장에게만 보고하도록 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이익과 성공를 가장 중시하는 미국의 기업 세계에서 케니를 돋보이게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업무방식이었다. 회사내에서의 그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수도원에서의 삶의 방식과 비슷했다. 들어주고 치유해주고 믿음을 주고 관계를 개선하고 용서를 구하고 공동체를 만드는 등의 삶의 방식 등이 그러했다.



Chapter 3 책임 있는 이윤의 추구



기업의 문화란 어느 한 사람의 힘에 의해 단기간에 변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무어가 입사하기 이전부터 키스팬의 기업문화는 일년, 또 일년, 한 번에 조금씩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어 왔다. 카텔이 케니 무어의 능력을 가까이에서 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카텔의 직함은 부사장 겸 업무총괄 책임자로, 그는 목표관리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중이었다. 프로그램이 일단 가동되기 시작하자 카텔은 비싼 컨설팅비를 지불하지 않기를 바랐고, 이에 인사팀에 있던 무어를 발탁하여 목표관리 프로그램의 추진을 맡겼다. 다른 경력 없이 그저 인사팀에 잠시 일한 것이 전부인 무어에 대하여 모두가 회의적이었지만, 카텔은 왠지 이 사람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완벽히 수행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갔다.



오래도록 교회라는 조직에 몸담아왔던 무어는 대인관계가 좋았고, 묵상을 통해 침착하게 주변상황을 돌아보는 훈련이 되어 있었다. 또한 회사 조직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원칙에 충실하려 했고, 사생활도 깨끗해서 업무외적인 일로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았다. 무어는 단위조직의 책임자들과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낮은 직급의 사람들, 과장이나 대리, 말단직원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고 다녔다. 그래서 그들이 최고경영진에서 발표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잘 알 수 있었다. 무어는 최고경영진의 진정한 뜻이 중간 직급 이하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어는 카텔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훌륭한 조언과 정보를 주게 되었다.



차기 CEO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는 사람에게 말을 할 때도 무어는 당당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상황을 카텔에게 전달하면서 그의 해결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함께 내놓곤 했다. 키스팬의 임직원들은 무어를 왕의 책사이자 충복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자신들의 생각을 최고경영자에게 전달해주는 대변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은 무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그 역할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무어는 다른 이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었고, 성직자 특유의 차분함과 푸근함을 지니고 있어 대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무어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그를 상담역이나 컨설턴트, 현자로 보게 되었다.



기업들, 특히 에너지 업계의 기업들이 지나친 탐욕과 부정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요즘, 키스팬이 보여주는 따뜻함과 솔직함, 그리고 좋은 평판은 키스팬에는 최고의 자산이 되어주었다. 이와 같은 태도는 '책임 있는 이윤의 추구'라는 키스팬의 기본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1996년 키스팬이 추진하기로 한 '온 트랙 프로그램(On Track Program, 고객 재정 정상화 프로그램)'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프로그램은 가스요금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 몰린 고객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가스요금을 내지 못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강제적인 요금징수 방법을 이용하는 대신, 그러한 고객들이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그래서 가스요금을 제때에 낼 수 있도록 돕기로 했던 것이다.



네 명의 사회복지사가 지휘하는 온 트랙 프로그램은 단순히 경제적 능력을 상실한 고객으로 하여금 가스요금 낼 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스요금 연체고객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등 강압적으로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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