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쉬옌 지음 | 황매
1장 오른팔이 될 사람을 후대하라인재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어라어떤 리더는 자기 밑에 능력 있는 사람이 너무 적다고 푸념하고, 자신은 솔선수범 하지 않으면서 부하가 많은 것을 해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는 인재를 찾고 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잘난 사람도 단점이 있고, 못난 사람도 장점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리더는 부하들이 갖고 있는 장점을 끌어내고 그 장점을 발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삼국시대의 조조는 특별히 인재를 중시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든 한 가지 장기만 있으면 절대로 그 사람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재능에 따라 벼슬을 맡겼다. 항상 인자한 자는 인자함을, 총명한 자는 총명함을 쓰게 하고, 무신은 용기를, 문신은 지혜를 다하게 했다.
건안 20년(215) 손권이 군대를 이끌고 조조의 영토인 합비를 공격했다. 합비를 지키던 대장은 장료, 이전, 악진 세 사람이었다. 장료는 문신과 무신을 다 맡아본 적이 있어 담력과 식견이 있는데다가 대의에 밝고 대국적인 견지를 가지고 있어 능히 지휘자가 될 인물이었다. 한편 악진은 그릇은 작지만 용감하여 먼저 병졸들 앞에 서는 맹장이었다. 그리고 이전은 학문을 좋아하고 성격이 온화하여 공을 다투지는 않지만 독자적으로 제몫을 하기에는 모자랐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조금도 양보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적군을 앞에 두고 공격해야 할지, 방어해야 할지, 누가 지휘를 할 것인지에 대해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조조는 세 사람의 성미와 천성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이러한 갈등에 대비해 미리 계책을 마련해 놓았다. 조조는 편지를 써서 '악진은 성을 지키고 장료와 이전이 출전하라'하고 명했다. 다혈질인 악진을 성에 남게 해 지휘자들끼리 다툴 가능성을 방지하고, 개인의 이익을 탐하지 않는 장료와 공을 다투지 않는 이전을 짝지어 협조체계를 이루게 한 것이었다. 과연 세 사람은 각자 책임을 맡아 협조함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다. 사람을 파악하고 활용할 줄 알았던 조조는 이렇게 인재를 능숙하게 부리며 남의 의견도 잘 받아들여 큰 패업을 이룰 수 있었다.
신용을 잃은 원술리더가 언행이 불성실하고 신용을 소홀히 여기면, 절대 남의 믿음과 도움을 받지 못하며 큰일을 이룰 수 없다. 동한 말엽, 천하가 혼란에 휩싸이고 중원의 패권 다툼이 치열할 때였다. 명문가의 자제였던 원술은 조상의 은덕으로 한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세력 확장의 기회를 노리던 중, 부하 손책에게 '구강(九江)을 함락시키면 그곳 태수 직을 주겠노라' 하였다. 그런데 손책이 막상 구강을 취하자, 진기라는 인물을 태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얼마 후, 손책을 불러 "본래 자네에게 주려던 구강 태수 자리를 진기에게 넘긴 것은 내 실수였네. 꼭 보상을 해주지."라고 말하며 이번에는 여강을 치면 그곳 태수 직을 주겠다고 하였다.
손책은 내심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다시 전장에 나갔다. 그리고 용감히 싸워 여강을 함락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도 원술은 약속을 어기고 유훈이라는 자를 여강 태수에 임명했다. 두 번이나 허언을 들은 손책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을 숨기고 주변지역을 정벌하겠다며 병력을 요구했다. 원술은 자신의 명령을 항상 잘 따르는 손책을 믿고 병력을 내주었다. 병력을 얻은 손책은 주변 지역을 정벌함으로써 세력을 키웠고, 마침내 원술이 지배하는 강동까지 점령했다. 원술의 부하들은 모두 도망쳤고, 원술은 피를 토하고 죽었다. 큰일을 하고자 하는 리더라면 마치 '자기 눈을 보호하듯 신용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원술이 신의를 중히 여겼다면, 부하들에게 버림받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의 야망도 실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청렴의 기풍을 세운 강희제강희제는 관리들에게 청렴하고 공정한 일처리를 늘 강조하였으며, 이에 맞는 정책과 조치를 만들었다. 그래서 청백리를 발견하면 즉시 상을 내리고 계속 관직에 등용하여 깊이 신뢰했다. 맨 처음 강희제의 신임을 얻은 청백리는 우성룡이다. 우성룡은 강희 6년(1667) 사천 합주의 지부(부의 장관)로 부임했다. 그때는 막 전란이 끝난 뒤여서 인구가 많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금과 노역의 부담이 무거웠다. 그래서 그는 부임하자마자 병폐를 개혁하고 백성들을 모아 논밭을 일구게 했다. 또한 소나 말, 각종 종자를 대여하여 백성들을 가난에서 구제하였다. 공적을 인정받은 우성룡은 강희 13년에 복건안찰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우성룡의 청렴함은 고관들의 미움을 샀다. 그들은 각종 상소를 올려 우성룡을 헐뜯었다. 그러나 강희제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더욱 그를 신임했다.
강희제의 격려와 지지 아래 우성룡은 더욱 자신을 규율하고 부하들을 다스렸으며 청렴하게 공무를 집행했다. 가정에서도 그의 생활은 지극히 간소했다. 매일 거친 밥과 야채만으로 식사하고 손님을 대접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은 그를 '우야채'라고 불렀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제사를 지낼 형편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강희제는 특사를 보내 제사를 지내주고, 친히 제문을 써서 우성룡의 청렴한 기백을 관리들의 모범으로 삼게 하였다. 이처럼 강희제는 청백리를 지지하고 격려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후한 포상을 내려 윤리적인 이득의 기쁨을 느끼게 하였다. 그 덕분에 청나라는 청렴한 관리들이 끊임없이 배출되었고, 그들은 부패를 종식시키고 백성들에게 이로운 사업을 일으켜 정국을 안정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2장 자기 밑에 인재를 끌어들여라 보잘 것 없는 인물도 무시하지 마라춘추시대 제나라에 영척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제나라 환공이 산책을 나온 틈을 타, 소의 뿔을 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 곡조가 심히 비통했다. 이 노래를 들은 환공은 의아하게 여겨 재상인 관중에게 사연을 알아보라고 일렀다. 관중이 영척에게 노래의 뜻을 묻자, 영척은 별다른 설명 없이 "도도하구나 흰 물결이여!"라는 시 한구절만 읊고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관중은 영문을 몰라 며칠 동안 조정에도 나가지 않고 고심하였다. 그러자 '정'이라는 그의 첩이 들어와 걱정스런 얼굴로 연유를 물었다. 관중은 "그대는 몰라도 되는 일이오." 라고 일축했다. 정은 평소 관중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믿고 대담하게 나섰다. "첩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노인을 늙었다 여기지 말고, 천민을 천하다 여기지 말고, 어린 자를 어리다 여기지 말고, 약한 자를 약하다 여기지 말라 하였습니다."
관중은 그녀를 무시하였다는 생각에 민망한 웃음을 짓고, 영척이 읊은 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얘기를 듣고 난 정은 관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영척은 나리께 이미 자기 생각을 전했습니다. 그가 읊은 시는 <백수(白水)>라는 시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이렇습니다. '도도한 맑은 물에 사는 피라미, 임금이 와서 부르니, 어찌 머물 것인가. 나라가 아직 어지러우니, 가야만 하겠네.' 영척이란 분은 이 시로 정치에 참여하고픈 뜻을 밝힌 것입니다." 그녀의 설명에 크게 깨달은 관중은 즉시 환공에게 영척을 추천했다. 그 후 영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환공이 패업을 달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위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동서고금의 위대한 사람들은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남을 무시하지 않았다. 널리 가르침을 구하는 데 능했고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기꺼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했다. 유능한 리더는 남들이 자신을 위해 의견을 내놓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그 의견들 중 어떤 것이 자신에게 더 이로운지 가려내는 재주도 있다. 일을 할 때 난관에 부딪치거나 잘못된 길로 가고 싶지 않다면,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경청하고 그들의 장점을 취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또한 이를 통해 부하는 리더로부터의 신뢰를 확인하고 더욱 성심껏 일하게 될 것이니, 결국 리더는 한 번에 두 가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믿음을 갖고 너그러이 남을 대하라유비는 이상적인 도덕관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했으며, 충성스러운 부하들을 믿음과 성의로 포용했다. 조운이 장판파의 일전에서 조조에게 크게 패했을 때에도 그는 깊은 성정을 나타냈다. 중상을 입은 미방이 비틀거리며 달려와 '조운이 배반하고 조조에게 투항했다'는 말을 전했다. 유비는 조운의 성품으로 미루어볼 때, 그 충성과 지조를 의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운을 의심하지 말라고 대뜸 호통을 쳤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운이 유비의 장남 아두를 안고 돌아왔다. 조운은 유비에게 아두를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유비는 아두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이 아이로 인해 내가 위대한 장수를 잃을 뻔했구나!" 하였다. 조운이 급히 아두를 안아 올리며 감격하여 말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해도 이 은혜는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이후 조운은 평생을 바쳐 유비에게 보답했고, 유비가 죽은 뒤에도 유선(아두)을 보좌하며 촉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
유비는 장비가 서주를 여포에게 빼앗겼을 때도, 득실에 대한 초연함과 포용력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장비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전장에 나갔고, 결국 서주뿐만 아니라 유비의 두 부인까지 여포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단지 십여 명의 군사만을 데리고 유비에게 나타났다. 그때 유비는 몇 번 한숨을 내쉬고 이렇게 말했다. "그걸로 족하다. 어찌 얻는 것이 다 기쁨이겠으며 잃는 것이 다 근심이겠느냐." 이에 장비가 부끄러워 칼을 뽑아 자결하려 하자, 유비는 다급히 칼을 빼앗고 이렇게 말했다.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 의복이 떨어지면 고치면 그만이지만, 수족이 잘리면 어떻게 다시 고치겠느냐. 또한 그 땅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 동생은 어찌 한 번의 실수로 가벼이 죽으려고 하느냐!" 말을 마친 유비는 장비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그러자 장비뿐 아니라 다른 부하들도 감동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유비가 부하들에게 베푼 마음은 병사들의 충성뿐만 아니라 그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데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바로 이것이 고대 문화의 유구한 이상과 그 합리성을 대표하는 것이다.
<인물지>의 인재 활용술삼국시대의 인재학 전문가 '유소'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다음과 기술했다.
엄격하고 정직한 사람은 법률을 정하고 정의를 지키는 일에 맞다. 이런 사람은 자칫 과격해지거나 다른 사람의 약점을 공격할 염려가 있으므로 구체적인 실무나 조직을 단결하는 일에는 맞지 않다. 온화하고 안정적인 사람은 포용력은 있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이런 사람에게는 규칙대로 진행되는 일상 업무를 맡기고, 시급한 문제는 맡기지 말아야 한다. 활기차고 용맹스러운 사람은 담력과 식견이 뛰어나긴 하지만, 일을 할 때 세심한 고려 없이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려운 장애물이 있는 일에는 잘 맞지만 인내와 책임이 필요한 일에는 맞지 않다. 말과 분석에 능한 사람은 문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은 잘하지만 허풍을 떨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자유로운 일을 주는 게 좋으며, 법률이나 조약을 제정하는 일을 맡기면 안 된다.
선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이 많아 도움을 남발할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신용할 수 없는 이들까지 사귈 염려가 있다. 이런 사람은 남을 위로하는 일에는 적합하지만 사회풍조를 정비하는 일에는 맞지 않다. 청렴결백한 사람은 행실이 바르고 나쁜 일에 끼지 않으므로 절개를 지키는 일에는 맞지만,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맞지 않다. 재능이 많은 사람은 높은 곳만 바라보기 때문에 개척하는 일에는 맞지만 마무리하는 일에는 맞지 않다. 냉정하고 세심한 사람은 꼼꼼하게 일하기는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일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지모와 계략이 뛰어난 사람은 노련하고 용의주도하지만 입장이 불분명해서 기회주의자가 되기 쉽다. 이런 사람은 계책을 도출하는 일에는 맞지만 불법 행동을 교정하는 일에는 맞지 않다.
인재는 만들어진다. 도전이 많을수록 유능한 인재가 탄생한다. 유능한 리더들은 부하들에게 일부러 부담을 주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다. 칭찬만 들은 사람은 반드시 자만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근심 속에 삶이 있고, 안락 속에 죽음이 있다'라는 교훈도 있듯이, 부하들에게 적절히 압력을 가하고 중책을 맡겨야 한다. 부하들이 적극적으로 일에 임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어야 사업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3장 인재관리의 황금법칙 엄할 때 엄하고 처벌의 본보기를 보여라예로부터 사람들은 권위에 잘 복종한다. 성공한 리더가 되고자 하면 권위를 세워 부하들이 경외감을 품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몇 번씩 타일러도 부하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엄격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사마양저는 춘추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군사가였다. 그는 병법과 작전 지휘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인재관리에서도 이름이 높았다. 제나라 경공이 제위에 있을 때 진나라의 침략에 대패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 틈을 이용해 연나라가 제나라의 황하 상류 지역을 점령했다. 이에 놀란 경공은 사마양저를 원수로 출정시키고 그를 도와 군대를 감독할 특사로, 자신이 총애하던 장가를 임명했다.
그런데 장가는 경공의 신임을 믿고 함부로 행동하는 교만 방자한 자였다. 그런 그가 사마양저 따위를 안중에 둘리 없었다. 얼마 후 사마양저가 연병장에 군대를 소집했는데 장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취기에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군대의 감독관이란 자가 술을 마시느라 소집시간을 어기다니, 이는 병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런 상태에서 전쟁을 치르게 되면 국토 회복은커녕 나라의 안위까지 위태로울 일이었다. 사마양저는 곧 병사들 앞에서 군법관에게 물었다. "군대 소집에 늦은 장병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하오?" 그러자 군법관은 "참수형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놀란 장가는 사람을 시켜 경공에게 자기 목숨을 구해달라는 말을 전하도록 했다.
사마양저는 법을 알고도 일부러 어기는 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지휘자로서의 권위를 세우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공의 사자가 도착하기 전에 장가를 참수토록 했다. 잠시 후 경공의 사자가 사면명령서를 들고 말을 질주해 군영으로 들어왔다. 사마양저는 또 군법관에게 물었다. "군영에서 정해진 시간 외에 말을 질주하면 어떤 벌을 받아야 하오?" 군법관이 대답했다. "역시 참수형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자는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황제의 사자를 죽이는 건 반역죄에 해당하므로 대신 말만 죽였다. 병사들은 사마양저의 기개에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흘 후, 사마양저는 대군을 이끌고 진나라로 출병했다. 사기가 고양된 병사들은 목숨을 걸고 공격을 감행하여 빼앗긴 영토를 모두 되찾았다.
사마양저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자, 경공은 친히 조정의 문무백관을 데리고 나가 그의 군대를 맞았다. 경공은 사마양저가 옳은 처사를 행했기 때문에 그를 탓할 수 없었고, 결국 그러한 처사로 군대를 응집하여 영토를 되찾았으니 그에게 가르침을 얻은 셈이었다. 따라서 경공은 친히 신하들을 데리고 성 밖까지 나가 사마양저를 맞음으로써, 모든 관료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삼았다. 이와 같이 본보기는 조직 전체의 틀을 잡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본보기의 대상은 아랫사람뿐만 아니라 리더 자신과 측근까지 포함된다.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단력이 필요하며, 특히 리더 자신과 측근부터 엄격히 다스려야 그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남의 칼을 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