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마스터
한홍 지음 | 비전과리더십
시간의 주인시간의 소유자우리가 어린시절에 익숙했던 시계는 아날로그 시계다. 아날로그 시계는 12시간을 돌고 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하루는 12시간의 두 번 반복이다. 시간은 언젠가 끝이 있고 그 끝은 또 하나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초침, 분침, 시침의 아날로그 시계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런데 디지털 시계는 어떤가. 그냥 덩그러니 현재의 시간만 디스플레이 할 뿐이다. 이 현재의 시간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는 지에 대한 아무 설명이 없다. 그냥 현재가 몇 시 몇 분이라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마치 아무 생각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과 같다.
성경 첫머리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우주의 시초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하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태초(In the beginning)'는 우주 시간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그 순간부터 낮과 밤이 생겼다. 즉, 이 순간으로 말미암아 시간이 탄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시간의 시작을 만드셨다는 것은, 그가 시간의 주인이심을 의미한다.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얘기에는 두 가지 큰 의미가 있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이 시간의 소유자(owner)라는 말이다. 만들어 낸 사람이 주인이 되듯이 시간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가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창조주로부터 선물로 받은 시간을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지를 하나님 안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유비쿼터스 하나님하나님이 시간의 주인이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그가 시간의 주관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역사에 끌려가는 무기력한 존재도 아니고 역사를 방관하는 냉혹한 존재도 아닌, 팔을 걷어붙이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히스토리 메이커(history maker)이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DNA속에 그에 맞는 배역을 심어 놓으셨다. 우리 나름대로 그 역할에 맞는 각본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커다란 길에 어울려야 한다. 요즘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에 접속할 수 있다는 의미의 말인데, 유비쿼터스는 원래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뜻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 곁에 존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시간과 교집합을 이룰 때부터의 시간, 그것이 바로 진짜 인생이다.
영원에 대한 갈망인간에게는 생체 시계와는 또 다른 영적인 시간의 리듬이 있다. 인간의 깊은 마음속에 있는 영원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그것이다. 영원에 대한 이 개념은 하나님이 갖고 있는 시간의 개념과 같은 것이다. 인간이 죄를 짓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세상에서 살며 영원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죄를 지음으로 인해 인간은 천국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유한한 시간 속의 삶에 갇히게 되었다.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의 조상들을 통해 전해 내려온 에덴에서의 삶의 기억들이 남아 있다. 인류의 아키타입(archetype, 원형)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영원히'라는 말을 유난히도 좋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영원히 사랑한다 하고, 우정을 나눌 때도 영원히 변치 말자 한다. 행복한 순간에는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인간의 삶이 유한함을 알면서도 원래 있었던 영원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삶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생의 모래시계돌이킬 수 없는 시간텔레비전의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NG가 나도 다시 찍을 수 있지만, 인생 드라마는 NG가 나도 거기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계속 가야 한다. '시간은 돈이다, 시간을 아껴라'고들 하지만 시간은 결코 아낄 수 없다. 시간은 반드시 써야 한다. 다만 문제는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순간순간 결정하는 데 있다. 당신이 마흔에 가깝다면 우리나라 평균 수명으로 볼 때 인생의 전반전이 끝나고 하프타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전의 스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반전의 스코어다. 전반전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열정으로 뛰었지만 후반전에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제대로 잡고 지혜롭게 뛰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인생을 제대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인생의 년수가 아닌 날을 셀 수 있는 지혜인간의 인생은 무엇인가? 수없이 많은 철학자들이 씨름했던 이 질문, 거기에 대해 성경은 아주 간결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인생은 유한한 것이다. 특히 시편 90편 12절은 이러한 메시지의 핵심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計數)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10절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인생이 보통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인데 그것이 다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찼고 날아가듯이 빨리 간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인생은 모래시계와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 같지만 실은 점점 죽음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아이가 커 가는 것 같지만 실은 요람에서 무덤으로 이동하고 있다. 우리는 인생에 끝이 있음을 앎으로써 겸손해 질 수 있다.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인생의 해를 세는 것이 아닌 날을 셀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했다. 그만큼 시간은 소중하다. 오늘 하루가 전부인 것처럼, 오늘이 우리 삶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 매일을 투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한정된 시간을 가장 풍성하게 사용하는 길일까? 그것은 영원을 준비하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유한하게 만드신 것은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영원을 위해 준비하고 투자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영원을 위한 준비이자 투자이다.
영원한 안식처를 향한 바람시편 90편 5-6절을 보자.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자라던 풀도 저녁엔 벤 바되어 마르나이다." 인생의 허무함은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공허하게 하며 외롭게 한다. "누군가 나를 무조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근한 음악을 들으며 따뜻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인간에게는 이런 영원한 안식처를 향한 바람, 어딘가에 있을 꿈같은 고향을 향한 환상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이다. 시편 90편 1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여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빼앗긴 '영원'인생의 진짜 심각한 문제는 그것의 길이나 허무함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더러움, 바로 죄에 있다. 우리의 인생이 죄 투성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인생이 왜 7∼80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지에 대해 부분적이나마 해답을 준다. 인생에 끝이 없다면 우리가 얼마나 오만하게 흥청망청 함부로 인생을 낭비하고 살까? 죄를 지으며 영원히 산다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인생은 죄로 오염되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인생들에 끝을 주신 것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끄럽고 아프더라도 당신의 죄를 드러내야 한다. 자신이 아픈 것을 인정하지 않는 환자, 그래서 의사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려 들지 않는 환자를 어떻게 치료하겠는가? 하나님의 칼은 죽이려는 칼이 아니라 살리려는 의사의 칼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지은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먼저 당신이 솔직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길 원하신다.
우리의 인생에 필요한 것들우리의 인생에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모세는 이 한정된 짧은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시편 90편 13절을 보자.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는 것, 사랑할 수 없는 자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용서를 깊이 체험한 사람들은, 서로를 대할 때도 인내하고 용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의 이 차가운 시대는 따뜻한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 역시 필요하다. 모세는 시편 90편 15절에서 고통의 날을 당한 만큼 기쁨의 날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은 이 땅에서 당신의 인생을 그렇게 기쁨으로 가득차 살도록 디자인하셨다. 그 기쁨을 막는 것은 당신의 외부적 환경보다는 당신의 내면세계, 즉 영혼의 상태이다. 당신이 지금 어두운 밤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고통의 폭풍 속을 지나고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 분의 용서를 체험하라. 그러면 말 할 수 없는 기쁨이 밀려들어온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 그래서 죄 문제를 깨끗이 해결한 사람의 영혼 속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이 솟아오른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비전이 필요하다. 인간은 빵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했다. 인생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고 했다. 당신 인생의 전반전은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느냐에 신경을 썼지만 이제 후반전은 어디로 가고 있느냐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인생은 목표, 비전을 바로 세워야 한다. 비전과 목표가 분명하면 방법은 반드시 나오게 되어 있다.
시간의 유연성과 탄력성빠름과 느림의 미학21세기 기업경영에서 스피드 경영은 기업의 사운을 죄우한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지체없이 행동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하기를 명령하신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일 때에는 지체 없이 하는 것이 하나님의 리더다. 그러나 신속하게 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동시에 한없이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스피드만이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된장이나 간장은 음식을 발효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양의 와인도 포도를 담가서 오래 묵힐수록 최고의 질이 된다.
예수님의 삶을 보면 빠름과 느림이 조화를 이루는 시간의 양면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짧은 시간에 유대 곳곳을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숨 가쁘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신 예수님,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우물가의 한 보잘것없는 이방 여인의 영혼을 위해 하루 종일을 보내실 수 있는 분이기도 했다. 곧 다시 돌아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2천년이 넘은 지금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만 봐도 그분의 인내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매뉴얼을 만드는 인간과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인간은 천지 차이다. 매뉴얼은 최소한의 기본을 알기 위해서, 최악의 상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인간은 스스로 계획을 세우거나 순서를 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상황에 맞고 융통성 있게 일을 처리할 수도 없다. 우리가 꿈꾸는 리더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분명한 지침과 가치관, 능력을 가지고 매뉴얼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시간을 탄력 있게 운영하는 절제된 자유인인 것이다.
맞춤형 시간시간의 탄력성이 던져 주는 또 하나의 의미는 시간은 맞춤형이라는 사실이다. 1점 차의 승리를 눈앞에 두고 일분일초 피가 마르는 농구 감독과,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천하 만물을 깊이 바라보는 시인(詩人)의 시간 관리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여인과 데이트를 하면서 우리는 마감시한을 코앞에 둔 사람처럼 시간을 보내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제각각 다른 성격과 체질을 주셨고 우리는 또 거기에 맞는 직업과 인생코스를 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것 없이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코드대로 성실하게 한순간 한순간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내 안에 시간의 리듬이 있다태초에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6일 동안 일하고 하루 쉬는, 시간의 바이오 리듬을 우리 안에 심어 놓으셨다. 프랑스 혁명 직후 대부분 무신론자였던 혁명의 지도자들은 생산력과 효율성을 이유로 일주일을 7일이 아닌 10일로 만들었다. 그러나 몇 달도 못 돼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전 국민들이 탈진으로 폭동 일보직전까지 가게 되자 부랴부랴 다시 이전의 7일 시스템으로 돌아간 적이 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잠을 자는 것도 밤 12시에 자서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것이 밤을 새고 새벽 5시쯤 잠이 들어 오전 11시에 일어나는 것보다 훨씬 몸에 좋다고 한다.
해가 지는 시간은 하나님이 자연의 불을 끄는 시간이고 해가 뜨는 시간은 하나님이 다시 불을 켜시는 시간이다. 최고로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싶으면 이 하나님의 시간 리듬에 맞춰서 하나님이 불을 끄실 때 자고 하나님이 불을 켜실 때 일어나 보라. 밤샘을 해서 공부한 지식이 오래 간직되지 않고, 밤을 새워 일하는 직장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한다. 하나님이 주신 우리 몸의 리듬은 햇빛이 찬란히 쏟아져 내리는 낮에 최고로 박동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의 습관과 삶을 조정해서 하나님의 자연적 리듬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최적의 타이밍6천 미터가 넘는 거대한 산을 등반할 때, 전문 산악인의 말을 들으면 밤 12시나 1시쯤 되어 출발한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그 시간이면 인간의 몸 상태는 최악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리듬을 거스르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고산 등반에는 최적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밤에는 눈이 단단히 얼어 있어서 눈사태가 날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몸 상태는 최악인 밤에 출발하는 것이 정상을 정복하는 최적의 시간이라는 거다. 당신의 현재 상황도 그럴 수 있다. 내부 사정이 어렵고 힘들지만 지금이 확장해야 할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최악의 타이밍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당신이 겸손해 하며 예수님께 매달려 열심히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지혜로워져 있는 때인지도 모른다.
축지법과 타임머신을 가능케 하는 시대오늘날엔 초고속 인터넷과 위성 TV방송의 도움으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먼 곳에 있는 지역에까지 컬러 영상으로 알찬 기독교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다. 또한 현대 문명의 이기로 인해 시간을 타임머신처럼 쓸 수도 있게 되었다. 사실 카세트테이프나 CD로 사람의 목소리나 영상을 녹음해서 두고두고 듣는 기술도 하나의 타임머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을 압축하거나 늘여 쓰기 때문에 수백년 전 크리스천들보다 많은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가 그 시절의 영성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의 탄력성을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시간을 넓게 펴서 사용할 수밖에 없던 시대의 사람들을 통해서는 기독교 신앙의 기본 콘텐츠를 확실히 만드셨고, 시간을 압축하여 빠르게 사는 우리를 통해서는 그 콘텐츠를 활용하고 퍼뜨리는 사역에 사용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