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덕한 카리스마의 매혹
진 립먼-블루먼 지음 | 부글북스
1부 큰 그림을 그리다독성 강한 리더: 그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다우리는 치명적인 리더들에 대하여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그들을 참고 견디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너무나 놀랍게도 아주 오랜 시간 그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참아낸다. 사실 '참아낸다'는 단어는 너무 약한 표현이어서 치명적인 리더들과 그들의 지지자 사이에 형성되는 복잡한 관계를 온전하게 묘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런 리더들은 처음에는 매력을 발산하다가도 조금 세월이 지나면 지지자들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학대하며, 음흉한 수단으로 상처를 입히다가 끝내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열악한 상태로 빠뜨려버린다. 그런데도 많은 지지자들은 그에게 계속 매달린다. 독성 강한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리더를 참아내는 일 이상의 짓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리더들보다 치명적인 리더들에게 더 아첨하고 더 부추기며, 실제로 더 좋아한다. 그런 놀라운 선택은 리더들이 자신의 자질을 떠벌리며 자랑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정계 및 경제계를 불문하고 지지자들의 인품을 갉아먹고 추종자들을 교묘하게 조종하며, 공포감을 조성하고, 파괴하고, 점점 작아지게 만들며, 급기야는 제거하기까지 하는 치명적인 리더의 출현에는 지리적인 국경선이 따로 없다. 눈길을 주는 곳 어디서나 독성이 강한 지도부의 증거가 풍부하게 눈에 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정말 놀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지지자와 전기 작가들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는, 인정하고 싶은 정도보다 훨씬 더 자주, 다양한 수준의 독성을 드러내는 리더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찬양하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때때로 우리는 그런 리더들이 조직이나 제도를 혼란 속에 빠뜨리고, 불운한 지지자들을 절망의 구덩이로 처박아 넣은 뒤에야 그들의 독성을 알아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 더더욱 나쁜 것은, 우리가 치명적인 리더들의 무능을 그때그때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도 그들을 막기 위한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부 고발자들이 자신의 이름과 경력에 닥칠지도 모르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 전면에 나설 때조차도,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그로 인해 가면을 벗게 된 사악한 지도자들의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일반 대중과 언론 매체들은 종종 내부 고발자들을 진정으로 환호하며 반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고발자들은 자기 조직 안에서는 갖가지 형태의 반발에 시달려야 한다.
사전을 보면 'toxic'은 '하나의 독소로 행동하는, 혹은 독의 효과를 지닌'으로 정의 되어 있다. 정말이지 독이 되는 리더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매우 심각한 해를 입히는 경향을 지녔다. 지지자들이 리더의 해로운 영향으로 고통 받는 때는 리더들이 자신의 안녕과 권력을 지지자들의 요구 사항보다 우위에 둘 때다. 리더들이 시치미를 뚝 떼면서 다양한 형태의 불명예스런 행동에 빠질 때도, 지지자들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은 엄청난 피해를 견뎌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치명적인 리더들이 우리를 잘못 대접하다가 그들 마음대로 우리 곁을 떠나도 언제나 우리가 참고 가만 내버려두는 이유에 천착하며 한번 명확히 밝혀볼 때가 아닐까? 최근 들어 기업의 치명적인 경영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폭로되면서 우리의 인내심도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
여기서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나의 취지는 희생자를 탓하자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의 산업계와 정부, 학교, 공동체, 사회 그리고 우리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리더들을 받아들이도록 유혹하는 그 힘들이 얽혀 만들어낸 덫을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덫에 걸린 지지자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그러면 우리는 더 훌륭한 리더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 자신에게 내재한 리더로서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부 우리는 왜 리더를 그토록 원할까?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리더를 찾게 하는 심리적 욕구우선 리더를 찾게 하는 유력한 심리적 요인 여섯 가지부터 살펴보자.
1) 권위적인 인물이 부모의 역할을 충실히 대신해주리라고 믿고 싶은 욕구
우리 모두는 너나없이 유년기라는 가마 안에 넣어져 구워진다. 우리의 부모, 선생, 그리고 아주 폭넓은 범위의 다른 보호자에 의해 형상이 만들어지고 조각되며, 비틀어지고, 색깔이 넣어지고, 구워지는 것이다. 삶의 초기에 보살핌을 주는 사람들에게 의존했던 경험은 권위를 갈망함과 동시에 혐오하는 모순을 우리 내면에 뿌리 깊이 심는다. 그 영향은 매우 커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 모순을 상사나 배우자, 목사, 치료사, 대통령과 왕 같은 다른 막강한 인물로 옮기는 것 같다.
2) 안전과 확실성에 대한 욕구. 이 욕구의 자극을 받아 안전과 확실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유까지 기꺼이 포기한다.
하나의 독립된 어른으로서 가족이라는 고치를 빠져나와 마침내 자유로워졌는데도 우리의 행복감은 금방 사라지고 말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이 새로운 자유를 '참을 수 없는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방향 감각을 잃고, 무의미한 바다에 빠지기도 한다. 자유가 우리를 낙담시킬 때면, 우리는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며, 자신에게 잘 해주고 있다고 느껴지는 지도자 누구에게나 끌리는 경향을 보인다.
3) 선택되었거나 특별하다고 느끼고 싶은 욕구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환상은 영향력이 크고 위안을 주는 한편으로 리더들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위험한 교조(敎條) 중 하나이기도 하다. 많은 독성 강한 리더들도 선택된 사람들이 저들끼리 똘똘 뭉치게 만들고, 그들을 다른 존재로부터 멀리 떼어놓기 위해 이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믿음을 동원해왔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보내는 조롱도 선택된 사람들의 자기 믿음 혹은 제품에 대한 믿음을 꺾지는 못한다. 실제로 보면 아웃사이더들의 경멸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때가 더러 있다. 그들을 서로서로 더 단단하게 단결하도록 묶어줄 뿐 아니라 그들의 리더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든다.
4) 공동체의 구성원이고 싶은 욕구
비록 특별한 존재인 양 느끼기를 좋아하지만, 우리는 또한 어딘가에 소속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따지고 보면 선택된 존재로 느끼는 것 자체가 엘리트 그룹의 회원 자격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 대목에서는 두 개의 다른 심리적 힘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심리적 힘은 유독성 리더를 참고 견뎌내고 심지어 찾아 나서겠다는 마음의 자세와도 걸려 있다. 여기서 또 분명히 밝혀두자. 육체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이 불안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제로 사회적 죽음 앞에서 느끼는 걱정이 육체적 죽음에 대한 공포 못지않게 크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사회적 소속감이야말로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기꺼이 많은 것을 희생하려 들 수 있는 막강한 동인이 된다. 사회적 소속감을 얻지 못할 경우 많은 개인들은 인생 자체에서 의미란 의미는 모두 다 빠져나간 느낌을 받을 것이다.
5) 추방, 고립, 그리고 사회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
조직에 불만을 품는 사람은 자기뿐이며 다른 어떤 영혼도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침묵의 반대자들은 대체로 동료로부터의 추방을 두려워한다. 그들이 불만과 분통을 꾹꾹 누르면서 나쁜 리더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물결에 섞여 들어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6) 나쁜 지도자에게 도전할 수 없다는 개인적 무력함에 대한 두려움
독성 강한 리더들에게 쉽게 넘어가도록 만드는 또 다른 심리적 동인 하나는, 그처럼 막강한 인물과 마주할 때면 개인은 너무나 무능하다는 판단이다. 다른 사람도 그 리더를 뒤엎어버리고 싶다는 희망을 공유하고 있고, 적당한 격려나 안전장치만 주어진다면 언제라도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지자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의 의견에 다른 사람도 동의한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어도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독성 강한 리더들은 '반역자'와 '말썽꾼', 그리고 팀플레이어가 되지 못하는 개인들을 고립시키고 그들에게 이목이 집중되도록 함으로써 집단의 역학관계를 악용하는 것 같다. 그들은 그 '나쁜 녀석들'을 다른 사람이 지원하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차단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협박을 동원할 수도 있다. 또한 반역자로 돌아설 위험의 소지가 많은 구성원들에게는 다양한 보상으로 회유하는 전략이 종종 쓰인다. 독성 강한 리더들은 종종 교묘한 전력을 동원하여 반대자들을 고립시킨다. 그들은 반대자 집단의 각 구성원에게 다른 구성원들은 리더의 입장에 완전히 동의하고 있다는 점을 주입시킴으로써 반대자 모두에게서 묵종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치명적인 리더들은 잠재적인 도전자들에 대한 노골적인 교훈으로 힘을 극적으로 과시할 때도 종종 있다. 어떤 때는, 반대자들을 그 자리에서 해고하기도 한다. 이렇듯 협박의 수단은 무수히 많다.
요약하면, 부모나 다른 보호자들과의 경험에서 비롯된 개인의 심리적 욕구 때문에 우리가 독성 강한 리더들에게 쉽게 홀리게 된다는 말이다. 바람직하지 못한 부모가 되었든 아니면 다른 보호자가 되었든 관계없이, 초창기 부정적인 역할 모델과의 경험이 우리에게 학대를 참거나 우리 자신이 학대하는 존재가 되라고, 그리고 기만과 조종, 파괴를 참고 견디거나 그것들을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고 싶은 욕구 또한 우리가 치명적인 리더에게 도전장을 던지기 전에 조심스럽게 재삼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 리더의 화만이 아니라 그 집단의 비난과 추방을 야기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부 고발자들이 걷게 되는 믿지 못할 운명만으로도, 너무나 영웅적이거나 지나치게 소견머리 없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는 치명적인 리더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일이 결코 얕볼 게 아니라는 뜻의 경고가 되기에 충분하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은 어떻게 되나: 신을 창조할 위험이 있다위기에 빠진 사람들은 누구나 리더들에게 자신을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법이다. 하지만 모범적인 리더들이 마치 신처럼 행동하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다가 보통 사람들의 의탁 성향이 결합되면, 적어도 네 가지 심각한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 중 몇 가지는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고, 다른 것들은 리더들에게 해로운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개인적인 책임까지 양보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들에게 추가로 부담을 지운다. 그 인간들 역시 실망시킬 때가 종종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독성 강한 리더들에게 자신을 속박시켜버릴 위험이 있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모범적인 리더로 남았을 사람까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하여 치명적인 리더로 전락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우리는 권위주의에게 잠시 자신을 방문해달라는 초청장을 보낸다. 그런데 그 손님이 뒷방 침실에 편하게 자리를 잡으면 쫓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위기의 초기 단계에서는, 당시 권좌에 올라 있던 지도자의 지지도가 극적으로 상승하는 것이 대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만약에 그 지도자가 위기를 신속히 풀지 못할 경우, 사람들은 금방 그를 대체할 인물을 찾기 시작한다. 위기는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그 지표면을 뒤흔들어버린다. 그런 순간에 맞닥뜨리면 기존의 리더는 번창 아니면 실패 둘 중 하나를 경험하게 된다. 비틀거리던 리더라면 다시 생생하게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신출내기 리더들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누린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 상황은 리더로는 어울리지 않을 듯했던 모든 부류의 사람에게 리더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리더까지도 영웅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비전만 훌륭하게 제시하면 상당히 매력적인 존재로 부각될 수 있다.
역경이 밀어닥칠 때에는 능력보다 매력이 더 큰,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앞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경고했다. 그들은 특별히 호소력을 지니는 급진적인 구제책을 내놓는데, 그 대책이 지지자들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실패로 몰아넣었던 그것과는 180도 다른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 분석이 옳다. 정의상으로 보아도 위기란 것은 그때까지 실행되어 오던 대처 메커니즘이나 자원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면 진기한 해결책을 지닌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들이 뜨거운 환영을 받는다. 따라서 리더가 특별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고 큰 소리로 선언할 경우, 그 사람의 말은 지지자들을 아주 솜씨 있게 설득하며 그들에게서 믿을 수 있다는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러면 상황은 더욱 무르익어 이제는 그 리더가 "지지자들이 자신을 투영하고 의탁해도 좋은 매개물"이 된다.
물론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해서 반드시 독성이 실리는 것은 아니다. 위기는 종종 거친 조치들을 요구한다. 전쟁 같은 심각한 위기 상황이 벌어질 경우에는 리더가 등화관제와 배급제 같은 조치를 취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또 적절할 것이다. 그렇지만 위기는 일부 리더, 심지어 민주 사회의 리더들조차도 강력한 리더십의 경계를 넘어서서 바람직하지 않은 권위주의로 넘어가게 하는 독특한 환경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리더들은 전통적인 시민의 가치에 제한을 부과할 수 있고, 다른 민주적 규범들을 침범할 수도 있다. 위기로 인해 생겨난 틈새로 독성 강한 리더들의 보증서라 할 수 있는 권위주의가 스며 들어온다. 너무나 무섭고 낯선 바다에 표류하고 있느니 우리 대부분은 권위에 넘치는 선장이면 누구에게나 자유를 기꺼이 내놓으려 들 것이다.
민주주의에 있어서 그렇게도 중요한 표현의 자유마저도 위기 상황에서는 매우 신속하게 위기의 종으로 전락하고 만다. 많은 지도자들이 뒤늦게 깨닫듯이, 서둘러 의견의 일치를 내려 드는 집단사고는 위기의 환경에서 발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불안이 팽배한 시대에 지도자의 결정에 노골적으로 반대의 뜻을 표하는 사람은 종종 일치단결을 추구하고 감시하는 단체의 분노를 살 수 있다. 이처럼 위기로 인해 개인적인 자유까지 축소하려 드는 자세 혹은 열광은 일부 리더들에게 내재해 있던 유독한 기질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정말로 중요한 결정을 오직 강력한 리더에게만 맡겨버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 이유는 그 리더야말로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리라는 환상을 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일시적으로는 우리의 불안을 달래줄지 몰라도 한편으로 보면 독성 강한 물질을 가지고 위험한 장난을 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분명히 말하지만 위기의 시기에도 리더들에게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권한을 허용할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안전을 효과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을 깊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3부 독성 강한 리더와 그를 따르는 지지자는 왜 나오는 걸까?합리화와 통제 신화: 독성 강한 리더에게 권좌를 계속 허용한다치명적인 리더 밑에서 삶을 경험해본 사람은 그 리더가 상사이든, 배우자이든, 통치자이든 간에 거기서 탈출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안다. 우리가 질 나쁜 리더를 참아내면서 자신에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