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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천하

둥예쥔 지음 | 시아출판사
제1부 흑백입정 관대함과 엄격함, 이 둘의 조화가 정치다



관맹상제(『좌전』에 나온 말로 너그러움과 엄격함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뜻)는 건륭제가 강희ㆍ옹정 시기에 걸친 시정의 성과와 건륭제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을 총괄하여 얻어낸, 그만의 뚜렷한 특색이 있는 '흑백의 도'라 할 수 있다. 관맹상제는 건륭제가 책략을 세우는 데 비교적 많은 선택의 여지를 두게 만들었다. 때로는 백을 주로 하여 관대한 정치를 펼쳤는데, 이때는 간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맡겨둠으로써 사회의 갈등을 해소했다. 또 때로는 흑을 주로 삼아 엄하게 다스려, 강력하고 신속한 처벌로써 그릇된 일들이 생기는 것을 제때에 막을 수 있었다.



제1장 관맹술 1 - 행동하기 전에 입지를 확보하라

어떤 일을 하든 그 전에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일이다. 이는 성공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조건이다. 건륭제는 천자에 오른 날부터 모든 방법을 생각해내 절대 황권을 공고히 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자신의 권력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지략을 갖추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뛰어난 지략이다

건륭의 성은 애신각라, 이름은 홍력으로 1711년에 태어났다. 그는 강희제의 손자면서 옹정제의 아들이다. 홍력은 소년시절, 조부였던 강희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당시 강희제가 홍력을 총애한 사실은 영향이 매우 컸다. 옹정제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도 홍력에게는 각별한 태도로 더욱 후대할 수밖에 없었다. 옹정제가 즉위한 후 많은 신하들은 홍력이 지닌 어린 시절의 특별한 경력 때문에 당연히 그가 후대를 이을 계승자라고 여겼다. 홍력은 순조롭게 13세 때 옹정제에 의해 황태자로 밀립되었고 그 후로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켰는데, 이는 청조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홍력이 일을 처리할 때 늘 신중했던 것과 매우 관계가 깊다.



홍력은 일찍부터 매우 뛰어난 능력을 드러내어 옹정제에게 인정을 받았다. 옹정제가 한 말을 들어보면 이러한 사실이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황사자(皇四子)는 그동안 선제의 총애를 받아 왔다. 나이가 벌써 스물이 넘은데다 학식이 날로 늘어가니 짐은 심히 기쁘도다." 홍력은 진작부터 부친의 심사를 꿰고 있었으나 한 번도 교만해지거나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물론 옹정제가 엄격하게 가르친 탓도 있겠지만, 홍력은 속셈이 없는 듯 보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깊이 궁리하여, 어떤 일은 반드시 해야 하고 어떤 일은 해서는 안 되는지를 따져보면서 스스로 자신을 통제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건륭제가 총애를 얻고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조부와 부친이 그를 아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자신이 가지고 있던 뛰어난 지략과 빛나는 재능, 그리고 높은 학식이 진정으로 그를 황위에 앉힌 밑천이었다.



<건륭제에게 배우는 관맹술>

-.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매사에 심사숙고하라. 거기에는 모두 깊은 뜻이 담겨 있다.

-. 어떤 일은 반드시 해야 하고 어떤 일은 하면 안 되는지 반드시 따져보고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라. -. 상대방의 생각을 꿰뚫고 있다고 해도 교만하거나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



제2장 관맹술 2 - 다른 사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라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그늘 아래에서만 머무르지 않으며 반드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든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이 따르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행동으로 보일 뿐, 말은 아끼는 것이다. 심지어 계승이라는 이름으로 개혁이라는 실을 얻을 수도 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천둥소리보다 더 놀라게 하라

옹정 13년 8월, 옹정 황제가 세상을 뜨면서 24세의 건륭황제가 즉위했다. 건륭황제의 보위 계승은 모든 제왕들이 부러워할 만한 선조의 유업이었다. 건륭제는 아직 황자의 신분이었을 때부터 특히 역사를 좋아했다. 그래서 각 조, 각 대의 흥망성쇠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나라를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건륭제는 즉위하자마자 단호하게 제도를 바꾸어 누적된 사회의 모순을 제거하면서 백성들의 인심을 추슬렀다. 그러나 우선 옹정제의 정치적 업적을 해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있었고,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불안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는 시정 방침을 변화시키는 주도권을 이미 죽은 옹정제에게 넘겼다. 건륭제는 그와 강희, 옹정 삼대의 전체적인 시정 방침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으며, 단지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방법을 택하고 정치적 폐단에 대응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관대하거나 혹은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건륭제에게 배우는 관맹술>

-.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은 행동으로 보일 뿐 말을 아낀다.

-. 모든 일은 처한 상황과 역량을 살펴본 후 서서히 행해야지, 눈앞의 이익만을 탐해서는 안 된다.

제3장 관맹술 3 - 작은 것도 살펴야 대업을 이룰 수 있다

건륭제는 대내적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모든 일을 몸소 처리해 조정의 기강을 정비했으며, 그에 따라 국력도 날로 강해졌다. 대외적으로는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파악하면서 강경한 태도를 취해 손바닥만한 땅도 양보하지 않음으로써 대국의 군주로서의 존엄을 지켰다.



신하들이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게 하라

건륭제는 평생토록 정치를 하면서 자신의 권력이 다른 이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세심한 신경을 썼는데, 즉위한 이후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어 한 번도 그 권한을 다른 이에게 넘겨준 적이 없었다. 또한 건륭제는 즉위한 지 3일 만에 곧바로 밀주절 제도를 회복시키고, "밀주할 사건이 있으면 직접 찾아와 상소하라"는 규정을 내렸다. 건륭제는 밀절의 내용을 살피는 데 무척 진지해서 극비에 속하는 상주문은 언제나 직접 그 봉인을 뜯었다. 절대 극비 사항이 있으면 그 내용을 마음속으로 기억해두고 그 문서를 태워 없앴다.



건륭제는 군기처 대신을 선발하는 데 있어서 황친은 완전히 배제하였다. 그리고 만주인에게 청 정권에서 중요한 지위를 보장해주기 위해 수석 군기대신은 반드시 만주인으로 세우도록 규정했다. 또 군기대신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의 측근 중에서 선발하되, 모든 군기대신은 그 자격이나 경력,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발탁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재 등용에 관한 핵심은 당연히 건륭제 자신의 수중에 있었다. 건륭제는 일찍이, "짐이 등극한 이래로 인사권을 다른 이에게 넘긴 적이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건륭 만년에 극도로 총애를 받아 방종했던 화신이라도 황제의 인사권을 좌우한 경우는 없었다.



<건륭제에게 배우는 관맹술>

-. 건륭제는 즉위한 이후 인재를 등용하는 데 있어 한 번도 그 권한을 다른 이에게 넘겨준 적이 없다. 신하들이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라.

-. 건륭제는 역사적인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잘 받아들이는 황제였다. 만약 과거의 영광에 갇혀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반드시 세계 속에서 도태되는 위험이 닥치게 된다.



제2부 흑백치리 강함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되, 반드시 매번 새로워야 한다



제왕이 절대 권력을 손에 쥐고 이를 정상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술책을 써서 각급 관리에 대해 직접적이고도 효과적인 통제를 실행해야 한다. 중국 고대 제왕들이 사용해온 치리술(治吏術)은 매우 다양했으나 그 본질은 모두 상과 벌의 두 가지 도구로 귀결되었다. 건륭제는 상벌을 엄격히 구분하고 흑백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여 부드러움과 강함을 함께 베풀었다.



제1장 상벌술 1 - 받는 사람이 진심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상벌을 엄격하고 분명하게 다루는 것은 관리를 다스림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본 원리로, 마땅히 상을 줄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벌을 내려야 할 사람에게는 벌을 내려야 한다. 편견을 가지고 마음대로 해서도 안 되지만 신하들이 자신의 눈을 속이도록 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잘 달리는 말도 채찍질은 해야 한다

건륭제는 신하들을 자주 칭찬하면서도 늘 지방 관리들에게 성심껏 일하되 헛된 명성을 쫓지 말 것을 요구했다. 착실하게 일하거나 정치적 업적이 뛰어난 관리들에게는 보다 큰 상을 내려 그들이 더욱 전심전력하여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 동시에 건륭제는 신하들에 대한 단속 또한 마찬가지로 엄격했다. 항상 그들 머리에 칼 한 자루를 매달아놓아 늘 두려워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한편, 동시에 자신이 진력하고 있다는 것을 황제에게 보임으로써 은전을 입어 높은 벼슬에 오르고 처자식에게까지도 광영이 미칠 수 있음을 알도록 만들었다.



치국에 있어 건륭제는 비교적 인치(人治)를 중시했다. 그는 일찍이 "치인은 있으나 치법은 없다. 법에 맡기는 것은 사람에게 맡기는 것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건륭제는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뛰어난 계책을 가지고 있었다. 비교적 지위가 높은 관리들을 비판할 경우에는, 한 사람씩 가장 핵심이 되는 약점을 찌르는 동시에 구체적인 사실을 조목조목 열거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진땀을 흘리며 벌벌 떨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항상 사소한 일에도 신중을 기하며 큰 재난이 닥치지는 않을지 늘 두려워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건륭제에게 배우는 상벌술>

-. "좋은 말은 채찍을 들 필요가 없다."는 속담은 단 한 번도 채찍을 들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치국을 함에 있어 부패를 처벌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다른 죄를 짓는 사람은 너그러이 용서할 수 있으나 탐관의 죄는 절대로 관대히 다스려서는 안 된다.



제2장 상벌술 2 - 상벌은 그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상벌은 그 목적에 초점을 맞추어야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가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큰 성공을 이루려는 사람은 누구나 그 초점을 맞추는 데 반드시 흑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안이 편해야 밖을 다스릴 수 있다

견륭제가 황위를 계승했지만 전대 왕조에 적용되었던 낡은 법령들이 옹정제가 죽었다고 해서 바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물려받은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제가 바로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옹정제가 평생 동안 다른 사람들로부터 가장 이해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질책을 받은 부분은 바로 종실과 형제에 대한 처리였다. 건륭제는 부친의 재능, 기백 그리고 수완을 진심으로 존경하면서도 부친의 시기심이나 잔혹함에 대해 불만도 품고 있었다.



건륭제는 즉위 후 "엄격함을 피하고 관대함을 따른다." 하면서 전대 왕조가 남긴 드러나지 않은 정치적 폐해를 바로잡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 청 왕조가 이어오는 동안 황제와 황실 구성원, 황제와 만한 대신, 황제와 팔기 장군, 황제와 지방 관리, 그리고 황제와 문인 사이에는 여러 가지 갈등이 쌓여 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황제와 황실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 가장 부각되었기 때문에 만약 이 문제가 해결된다면 다른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될 것이었다. 그래서 즉위한 지 한 달도 안 되서 건륭제는 종친들을 힐책하면서 "치국의 도는 종친 간의 화목에 있으므로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는 것을 급선무로 한다."고 말했다.



<건륭제에게 배우는 상벌술>

-. 인재를 등용할 때 한 가지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장점에 맞추어 인재를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공하는 인재 선발의 도라고 할 수 있다.

-. 부패 관리들을 처벌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고발한 양심적인 신하들에 대한 보상도 잊지 않았다. 이것은 또 상벌을 분명히 했던 그의 군왕으로서의 수완을 드러내준다.



제3장 상벌술 3 - 상과 벌은 여지를 남겨두라

너무 강하면 반드시 꺾이고, 너무 밝으면 반드시 어두워진다. 상벌에는 반드시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정도에서 벗어난 상벌은 부작용을 낳을 뿐이다.



인재의 천거를 장려하되 이를 남용하지 말라

누구보다 훌륭한 인재를 갈구했던 건륭제는 신하들을 임용할 때면 추천된 인재들 중에서 세심하게 고르고 또 골랐으므로 한쪽 말만 듣고 파렴치한 인재를 쓰는 일이 없었다. 건륭제는 인재를 우대하면서도 그들을 쓰는데 있어서는 매우 엄격했다. 그는 인재를 등용할 때 '덕'을 '재'보다 앞에 두었고, 관리들이 품행이 바르지 못한 이들을 함부로 추천하는 것을 막았다. 건륭제가 등용한 관리의 대부분은 명문가 귀족 출신이었다. 만한관리 가운데 가장 현달한 가문은 악이태 일족의 서림각리였다.



건륭 5년 악용안을 임용하고자 할 때 그 부친인 악이태가 재삼 사양하자 건륭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짐이 인재를 등용할 때는 상세히 알아보고 지극히 공평하게 하므로 그 안에는 조금의 사의도 없다. … 짐이 악용안과 대학사 장정옥의 아들 장약애, 주식의 아들 주필계를 보아하니 이들 모두가 능히 가훈을 따르고 국은을 입을 만하다." 건륭제는 마치 배고프고 목마른 심정으로 인재를 바랐고, 인재를 찾았다. 남다른 안목으로 인재를 알아보았으며, 바로 그가 인재를 제대로 선발했기 때문에 비로소 후세에 자랑할 문치무공을 세울 수 있었다.



<건륭제에게 배우는 상벌술>

-. 인재를 볼 때 한 번에 그의 출중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재능을 갖추지 못한 것 또한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역사는 겉으로 드러난 얽히고설킨 현상보다 그 이면에 깊이 내재해 있는 지배의 힘과 그 흐름에 주의하도록 사람들을 일깨워준다.



제3부 흑백무민 당근과 채찍을 함께 사용하여, 은혜와 위엄을 모두 느끼도록 해야 한다



군주가 세상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곧 민생을 두텁게 하고 백성의 노력을 덜어주어야 하며 병사들에게 혜택을 주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배에 올라 물을 제어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군주의 위엄을 알게 하고, 심지어 관리와 백성들에 대한 혹정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제1장 은위술 1 - 배가 물을 떠나서는 그 공을 이룰 수 없다

건륭제가 말했다. "짐은 백성을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 밤낮으로 오로지 사해의 백성들이 모두 풍족해지고 태평의 복을 함께 누리는 것만을 생각한다." 이 말은 그가 백성이야말로 국가의 근본이라는 도리를 깊이 깨닫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문인들을 가까이 하라

건륭제는 상당히 높은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 만주족 왕공귀족들을 훈계하는 유지를 내린 적이 있다. "한인 문학을 이야기하자면, 짐이 공부하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이 곧 유학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며, 문학이 유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인들은 모두 알고 있다." 건륭제는 다재다능하여 시와 문장, 그리고 서예와 그림에 모두 능했다. 건륭 44년에 회고시를 지었는데, 그중 다섯 문학시종대신에 대한 시 다섯 수가 있었다. 그들은 양시정, 전진국, 장조, 왕유돈, 심덕잠이었다. 그들 모두 건륭제의 문학시종으로 건륭제가 중용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죽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건륭제는 여전히 그들을 기억하고 시를 지어 그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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