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국
둥예쥔 지음 | 시아출판사
제1부 옹정의 심리전늑대의 세계는 '적자생존'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지배된다. 따라서 힘없는 늑대는 자신에게 잡아먹히는 약한 사슴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패배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늑대는 살아남기 위해 경쟁상대와 쉬지 않고 머리싸움을 해야만 한다. 옹정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계기를 살펴보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부친인 강희 황제의 '가을 사냥' 행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즉, 그는 늑대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교활하고 잔인한 늑대의 근성을 깨달았고, 그것으로 타인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 즉 교활한 심리전의 지략을 연마한 것이었다.
제1장 심리전 1 - 냉정한 방관으로 어부지리를 얻는다옹정은 잔혹한 제위 쟁탈전에서 드러나는 모든 경쟁자의 늑대와도 같은 속성이 인성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 교묘하게 한 발 물러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냉정하게 방관했다. 그 결과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어부지리를 얻어 수많은 형제들이 침을 흘리며 호시탐탐 노리던 황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가을 사냥'에서 늑대의 속성을 배우다: 강희 17년 10월 30일(1678년 12월 13일) 인시, 중국 역사상 위대한 황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후일 옹정 황제가 된 왕자가 황궁에서 태어났다. 옹정이 태어났을 때 그의 형들 중 세 명(첫째 아들인 윤제, 태자인 윤내, 셋째 윤지)만 요절하지 않고 살아남은 상태였으므로 옹정은 강희제의 넷째 아들인 셈이었다. 강희제는 옹정의 이름으로 '윤진'을 낙점했다.
옹정 황제는 어렸을 때부터 황제인 아버지와 스승의 엄격한 교육으로 사서오경, 만주어, 한어 등에 관한 지식이 뛰어났으며 무예도 능해 강희제의 사랑을 받았는데 『청성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윤진 왕자가 마침 대련을 쓰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신하들 중에 그의 글씨에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윤진 왕자는 글을 많이 썼을 뿐 아니라 강희제의 서체를 모방하는 데 특히 뛰어나 격려와 칭찬을 받았다."
옹정은 청소년기에 지식을 연마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고, 학구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기에 그 박학다식함이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의 지식은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황제가 된 후에는 현실에 응용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포부가 컸던 옹정은 가을 사냥을 통해 늑대의 생태를 가까이에서 관찰하며 늑대들이 매우 질서 있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집단 내에서 자기의 위상을 파악하고 지켜야 할 사항들을 잘 지킨다는 것이다. 늑대들의 무리는 사냥한 다른 야수들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이어서, 단지 위계질서가 정해졌을 때에만 비로소 '화목한' 관계를 유지한다.
제2장 심리전 2 -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야 성공한다일반적으로 아버지가 걸출한 인물이면 아들 노릇을 하기가 몹시 힘들어진다. 아들이 능력을 드러내면 부친의 의심을 사게 되고, 재능을 보이지 못하면 부친은 아들을 무시하고 안중에도 두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존의 권력을 지닌 황제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 그러므로 양자 간의 관계는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한다. 늑대의 속성을 꿰고 있던 옹정은 이런 미묘한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의 조언 없이 숨김과 드러냄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으로 위장하라 : 늑대는 계략에 능할 뿐 아니라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전략을 바꾼다. 늑대들은 어떤 때는 매우 복잡한 전술로 먹이를 획득한다. 사실상 늑대만이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왕자들이 천자의 자리를 다투려면 늑대가 먹이를 구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전략을 발휘해야 한다. 윤내 태자의 지위가 흔들릴 때 맏아들인 윤제 왕자는 사악한 수단을 썼고, 여덟째 왕자 윤이는 세력을 결집하는 전략을 동원했다. 옹정은 최후의 승리를 위해 우선 스스로를 보호함으로써 주변의 협공을 무너뜨렸다. 이렇듯 복잡한 상황에서 교활한 늑대의 속성이 몸에 밴 옹정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으로 교묘하게 연출함으로써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서 가볍게 벗어날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옹정은 인생이란 일장춘몽이고 모든 것이 공허하니 불경이나 외겠다는 듯 초연했지만, 그의 속마음도 그렇게 무욕으로 세상의 싸움에 달관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옹정은 스승에게 들은 다음의 명언을 잊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싸우는 것은 싸우지 않는 것만 못하고, 싸우지 않는 것이 싸우는 것이다."
제3장 심리전 3 - 세상을 얻으려면 끈질기게 기다려라늑대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옹정은 늑대가 사냥하는 방법을 권력 싸움에 적용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통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인물들을 철저히 관찰한 뒤에 모조리 제거했다.
권위 확립을 위해서는 복수도 불사하라 : 옹정에게 여덟째 왕자 윤이는 뱃속의 혹과도 같았다. 옹정은 정치를 쇄신하려는 포부가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윤이를 제거하는 것이 불가피했지만, 동생을 죽였다는 악명을 피하기 위해 머리를 썼다. 비록 윤이가 도마 위에 오른 생선같이 됐지만 칼질을 하기 전에 정당한 이유를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붕당론』의 저술이었다. 옹정은 정적을 향해 칼을 겨누기 시작했다. 같은 해 7월, 옹정은 직접 쓴 『어제붕당론』을 왕, 패륵, 문무 대신들에게 차분히 숙독하라는 명을 내렸다.
옹정의 『어제붕당론』의 주제는 대략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옹정이 간곡하게 호소했음에도 강희제 연간에 성행했던 붕당의 악습이 여전하므로 철저히 근절되어야 한다. 둘째, 군신의 구분은 하늘과 땅의 관계와 같다. 그러므로 신하에게는 군주가 하늘과 같으므로 군주의 권력에 도전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붕당은 군신의 대의와 신하가 군주를 섬겨야 하는 도리를 어기는 것이므로 그 죄악이 막심하다. 셋째, 구양수가 군자는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는 당을 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이론적으로 붕당을 없애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넷째, 윤이, 윤제 등이 당파를 만든 것을 질타하면서 옹정 자신이 당파를 만들지 않았음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과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옹정제의 『어제붕당론』은 경전을 인용해가며 황제의 절대 권력의 필요성과 합리성, 붕당의 해악과 불법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제4장 심리전의 기교 - 물러날 때를 아는 여유를 가져라늑대들은 아마도 인간보다 더 명확하게,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변화'임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어떠한 변화에도 대처하는 늑대의 능력은 스스로를 지구상에서 인간과 가장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공존하는 포유동물로 만들었다. 늑대가 자기의 위치를 반드시 지키는 것처럼, 옹정은 왕자들의 생사를 건 싸움에서 순식간에 낙마하는 낭패를 겪지 않기 위해 우선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굳힌 후 기회를 틈타 상승했다.
야심을 숨기고 승리의 순간에 웃어라 : 포부가 큰 사람은 뜻을 펼치기 전에 자신의 의도를 상대가 간파하면 엄청난 장애에 부딪치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의 능력과 의도를 감추면서 판도를 관찰하다가 기회가 왔을 때 움직여야 한다. 즉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우선 상대와의 심리전에서 이겨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야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옹정제에게 배우는 심리전>-. 계략을 적절히 쓰는 것뿐만 아니라, 음모가 발각된 후에도 상대의 공격 제압하기, 패배를 승리로 전환하기, 위기 극복이야말로 늑대와 같이 교활한 심리전에 정통한 고수의 능력이다.
-. 옹정은, 권력 다툼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에 승려들과 긴밀히 왕래하면서 사찰을 짓고 자신을 최대한 '세상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으로 연출하여 본심을 숨겼다.
-. 늑대들은 낌새를 눈치 챈 사냥감을 무리에서 벗어나게 한 뒤에 공격을 가한다. 옹정은 이것을 권력 싸움에 적용하여 자신의 통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인물들을 철저히 관찰한 뒤 모조리 제거했다.
-. 이간책으로 상대를 제거하려면 우선 상대 내부의 허점이나 틈을 점차 확대시켜 분열을 유도하고, 그것을 붕괴로 몰고 가야 한다.
제2부 권력 강화의 비결"권력을 얻기도 어렵지만, 그것을 굳히기는 훨씬 더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모질고 독하게 굴어야만 한다. 황제가 되면 마음을 독하게, 행동은 거침없어야 한다. 절대로 부드러운 표정과 인자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옹정은 냉철한 판단만을 믿었을 뿐 추측은 믿지 않았다. 결과만을 믿었고, 과정은 믿지 않았다. 그의 눈에 비친 현실세계는 확실히 그러했다. 권력을 장악한 자만이 고귀하고, 진리와 지혜가 그의 편이며, 논리적으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물러설 수 없는 결전을 벌여야 하고,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 발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결과가 어떨지 묻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그 일의 당위성과 가치만을 의식하면 된다. 옹정은 뒷전에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후대 사람들이 시비를 논한다면 짐이 모든 책임을 질 것이다. 신하들은 모두 무관하다."
제1장 권력 강화의 비결 1 - 인내는 필수, 감정적 대처는 금물!옹정은 젊은 시절 성격이 급해 강희제로부터 '감정의 기복이 심한' 단점을 가졌다는 지적을 당한 바 있다. 몇 년 후 옹정은 강희제에게 "신이 과거에는 그런 결점이 있었으나 몇 년 동안 노력하여 고쳤습니다. 저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라는 표현을 기록에서 지워 주십시오."하고 청했다. 옹정의 성격이 변한 것을 확인한 강희제는 청을 들어 주었다. 그러면서 옹정제에게 감정의 변화가 심한 성격을 고치기 위해 무슨 일을 당하면 "조급함을 누르고 인내하라"라는 훈계와 함께 절대로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 가르침은 옹정의 일생을 통해 그에게 유익한 교훈이 되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상대의 '환심'을 사라: 고대의 성현들은 신비로움, 길조 등을 믿지 않았고,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우화를 썼다. 그러나 옹정은 길조를 좋아했는데, 미신이 사람을 현혹시킨다는 사실을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가 길조를 열심히 찾은 이유는 조정 대신들이 상서로운 분위기에 젖음으로써 자신이 하늘이 낸, 신하와 백성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슬기로운 군주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옹정은 실상 길조의 허와 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길조로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그럼으로써 신하들을 마비시키려 했던 것이다. 즉위 초기 혼란스럽던 분위기에서 길조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세뇌하려 한 통치술은 실로 절묘했다.
옹정은 즉위 초기뿐 아니라 그후에도 역대 황제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길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옹정 시대에는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길조가 등장했다. 옹정 5년(1727), 하남성 순무 전문경이 하남성에서 한 줄기에 이삭 열다섯 개가 열리는 곡식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올리자 옹정은 매우 기뻐하며 "전문경의 충성스러움에 하늘도 감화하여 그런 일이 일어났다"라고 치하했다. 황제가 천하라는 사상을 가진 봉건 왕조에서는 자연히 황제가 좋아하는 일에 비위를 맞추는 신하가 있기 마련이다. 길조를 몹시 좋아하는 옹정의 기호를 목도한 관료들은 앞을 다투어 길조에 관한 상소를 올렸다.
늑대의 속성에 정통한 옹정에게 있어 유일한 목적은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라면 수단의 정당성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가 길조를 보고하는 관리들을 격려하고 상을 내린 것은 어처구니없고 우스운 방법이라 하겠지만, 당시 사회적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었다. 즉 관리들로 하여금 옹정이 제위를 계승한 것은 하늘의 뜻이라 믿게 하고, 그로써 '하늘의 아들'에게 충성을 하도록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제2장 권력 강화의 비결 2 - 마음을 정하여 기회를 잡아라옹정은 전진하려 할 때 실수를 안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아가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고 믿었다. 그는 살아남기만 하면 절대로 완벽한 실패자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실패와 좌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여 약자는 도태되는 경쟁에서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숨기고, 전략과 전술을 교묘하게 활용하면 자신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리라 믿었다. 왜냐하면 막강한 적수를 만났을 때는 상대의 자연사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활을 쏘아 넘어뜨리는 것이 훨씬 더 통쾌하고 장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의 안정을 위해서는 물밑 작업도 필수 : 옹정은 강희제 말년에 태자 자리를 놓고 많은 형제들과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여 등극했기 때문에 자신의 후계자를 선택하는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어떻게 하면 별 문제없이 황제의 자리를 유지할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래서 옹정은 고심 끝에 후계자를 비밀에 부치는, 역사상 유례없는 독창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다. 태자 책봉은 태자로 정해진 본인조차 알 수 없고, 신하들도 모르는 가운데 황제 한 사람의 뜻대로 결정되었다. 더욱이 태자의 이름을 적어 감춘 편액(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되었다. 옹정은 자신의 뜻을 피력한 뒤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다. 융과다를 비롯한 모든 대신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동의를 표했다.
옹정의 독특한 태자 책봉은 나라의 기반을 굳혀 민심을 안정시키는 정치적 효과와 함께, 역사적으로 드물지 않게 일어났던 태자 자리를 둘러싼 왕자들 간의 골육상쟁을 예방할 수 있는 소득을 얻었다. 비밀 책봉은 태자를 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태자를 밝히지 않는 것이다. 황제의 후계자는 반드시 정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큰 일이 생겼을 때 제위의 정통성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옹정의 판단에 따르면 태자가 정해졌음에도 절대 비밀에 부치는 방법은 강희제 말년에 태자 문제로 인한 실책들이 재연되지 않게 방지하고, 미래의 황제인 비밀의 태자를 완벽하게 지켜낼 수 있는 것이었다.
옹정은 넷째 왕자 홍력을 태자로 정한 후 다른 왕자들은 관여하지 않은 일들을 그에게 경험하게 함으로써 훗날 정사를 돌보는 데 필요한 기초를 닦도록 배려했다. 일반적으로 황태자로 책봉되면 친왕에 봉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홍력을 태자로 정한 후에 옹정은 그를 화석보친왕에 봉했다. 그 이유는 친왕이 됨으로써 홍력(훗날 건륭제)이 좀더 정사에 참여해 식견을 넓힐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제3장 권력 강화의 비결 3 - 오만함으로 천하를 다스려라사람의 성격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오만하고 씩씩한 모습과는 달리 실상 심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유약하고 무력해 보여도 실제로는 매우 강한 외유내강형의 인물들도 많다. 진정으로 강한 사나이는 오만함을 마음속에 감추고 있어도 어쩔 수 없이 그 '기'가 드러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오만함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옹정이야말로 천부적으로 오만한 유아독존형의 인물로,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다스린 초인이었다.
권력에 대한 견제는 용납할 수 없다: 황권의 유일성과 배타성을 확보하기 위해 황제들은 즉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