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오다 노부나가 경영 10법칙
기타미 마사오 지음 | 이지북
〈서문〉난세를 이겨낼 열쇠는 인재다"현재의 일본은 전국(戰國時代: 15세기 중엽, 일본의 다이묘들이 군웅할거했던 동란기, 하극상의 시대로도 유명하다)과, 막말(幕末: 1853~1867. 근대화를 향한 격변기로 일본의 개국, 군사독재시대가 끝나는 등 굵직한 사건들이 줄을 이었다)이 동시에 도래한 듯하다." 일본사회는 안정된 시대가 막을 내리고 동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규모는 일본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것이다. 하지만 한탄하고 있어봤자 소용없다. '대 경쟁 시대'에 접어들었다면, 우선 필요한 것은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새로운 시대 인식이란 다음과 같다. '세계는 동란의 시대로 들어섰다.' 그리고 '전국시대는 쓰러뜨리든지 쓰러지든지, 먹든지 먹히든지 둘 중에 하나다.'
전국시대의 대표자는 말할 것도 없이 오다 노부나가이다. 약소국가인 오와리(尾張: 현재의 아이치 현)의 작은 세력이었지만 전국의 패자가 되어 천하통일 바로 직전까지 간 인물로, 그 합리적인 정신은 무한경쟁시대인 현대와 통하는 구석이 있다. 일본은 지금, 시대의 변혁기를 맞아 노부나가와 같은 혁명가를 원하고 있다. 노부나가의 삶의 방식은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보아도 크게 참고가 된다. 그의 생애는 전쟁으로 여념이 없었으며, 그 삶의 모습은 상식인의 방식이 아니었다. 노부나가의 비범함은 어떠한 위기에도 주눅이 들거나 약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제나 대범하고 과감하게 싸웠다. 노부나가가 시도한 건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한다', '적의 몇 배의 병력을 갖춰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마련하고서 싸운다', '공을 세운 만큼 듬뿍 상을 내린다' 등으로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전법은 일본 역사상 달리 유례가 없다. 노부나가는 여느 전국다이묘(戰國大名: 16세기 일본 전국시대에 넓은 영지를 다스리던 무사로, 토지와 농민을 일원적으로 지배하는 분국分局을 두고, 가신단을 조직하고, 농민을 직접 지배 하에 두는 등 분국의 지배·세력 확대를 위한 군사력 강화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경제력 확보에 힘썼다)와는 다르다. 전국시대에는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전부다.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경영은 '전투 집단 수립'이 테마가 될 것이다.
현대의 경영인들에게 바치고 싶은 다섯 가지
뜻을 품자노부나가 : 동란의 시대에는 어두운 이야기가 많지. 허나 남 위에 서는 자는 스스로 흔들림 없는 신념을 세우고 자신의 사명을 향해 주저 없이 나아가야만 하네. 중요한 건 뜻을 세우는 일이야. 자신이 무엇을 위해 애쓰고 있는가, 그 일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것을 가늠해야만 하네. 전국시대는 각 무장들이 영토 확장을 노리고 패권을 다투었지. 허나 적을 이기고 영토를 확장했다 치더라도 그것이 그저 사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거라면 별 의의가 없어. 나는 천하통일을 노렸으니 그건 전란을 다스리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어.
수강생 : 저도 10년 전 큰 뜻을 품고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사원은 현재 50명입니다. 요즘에는 실적이 순조로워 1억 엔의 경영이익을 보았습니다. '작지만 출중한 중소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노부나가 : 그대의 말은 통 알 수가 없군. 사업이 순조롭다고 했는데, 그런 소규모 회사인 채로 만족한다면 그대의 목표는 너무나 낮군. 좀 더 커다란 목표를 가졌으면 하네만. 마냥 중소기업 상태로 있는 것을 자랑하는 건 우습지 않은가.
포기하지 마라.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라노부나가 : 동란의 시대에는 옛 세력이 쇠퇴하고 그것을 대신하는 자가 등장하지. 이 하극상의 시대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에겐 바람직하지 못한 세상이겠지. 하지만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도전하는 자에게는 기회가 넘쳐나는 재미있는 세상이다. 성공할 수 없는 인간은 도중에 포기해버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야. 성공하기까지 도전을 계속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네.
〈에피소드〉교토행을 위해 7년간 거듭한 집념의 미노 공략 : 노부나가 하면 흔히 성질이 급하다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나 잘 살펴보면 오히려 무척 참을성이 강하고 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노 공략에 7년, 이시야마의 혼간사本願寺 공략에는 11년이나 정열을 쏟아 부었다. 다케다 가쓰요리를 무찔렀을 때도 상대가 내부 붕괴로 자멸하기를 7년이나 기다린 후에야 공격했다. 노부나가는 백전백승이었다는 인상이 강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때때로 크게 패할 경우도 있었으나 패전을 반성해, 태세를 정비하고 몇 번이라도 물고 늘어졌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한 번 정한 목표는 집요하게 계속 쫓는 것이 노부나가라는 사람이었다. 노부나가는 에이로쿠 3년(1560년) 5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물리쳤고 그 직후인 6월에는 미노의 사이토 요시타쓰를 공격한다. 실제로 미노를 공격하기란 만만치 않았다. 미노에는 강들이 몇 줄기나 되는 지류를 만들어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지형에서는 지리에 밝은 사이토 측이 유리한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사이토 측이 동원 가능한 병력은 오다 측의 몇 배나 되었다. 그럼에도 노부나가가 미노에 집착했던 이유는 교토로 진출하기 위해서였다. 미노 공략은 노부나가에게 큰 교훈이 되었다. 예상외로 애를 먹었던 노부나가는 곧바로 동쪽의 미카와 공략과 동시 진행 중이던 작전의 불리함을 깨닫고,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기로 한다. 유명한 기요스 동맹이다. 동방의 안전을 굳힘으로서 노부나가는 미노 정복만을 목표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병력을 한 곳에 집중시켜야만 강고한 적을 부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중소기업은 특기 분야로 승부하자 : 노부나가에게는 '타협'이란 말이 없다. 자신이 이것이라 믿은 일은 단호하게 뚫고 나갔다. 노부나가만큼 목표가 분명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노부나가의 전투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 오케하자마이다. 적은 수로 대군을 물리쳤다는 의미로도 그야말로 통쾌한 일전인데, 이 전투는 현대에 사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중소기업이라도 전법에 따라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증명해주었다. 경영자가 승리자의 대열에 끼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경영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면 애초에 자신은 무얼 하고 싶었는지 자문해보길 바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인 것이다. 스스로가 정열을 바칠 수 있는 일을 하면 라이벌에게 질리가 없다. 또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기기 위한 다섯 가지
뛰어난 인재[多士濟濟]를 모아 적의 세 배 이상의 병력을 갖춘다노부나가 : 우선 중요한 것은 인재이네. 인재층의 두터움이 조직의 힘을 결정짓는 걸세. '전쟁'이라고 듣고 전투를 떠올릴지도 모르지. 전쟁터에서 싸우는 용맹무쌍한 무장을 떠올리며 '인재'라고 여길지도 모르고, 물론, 그 역시 중요한 인재이지만 칼을 휘두르는 인간만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어. 전쟁에서 이기려면 분야별로 유능한 인재를 모으는 일이 필요하네. 전쟁이라 함은 여러 직종의 인간이 모여야만 가능한 총합전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전쟁이라는 것은 다수가 소수를 제압하는 것이 상식이지. 허니 적의 세 배의 병력을 모으고 나서 전투에 임해야 할 것이야.
수강생 : 노부나가 공의 싸움 하면 오케하자마 전투가 연상됩니다. 요시모토가 이끄는 열 배 이상의 군세를 이기지 않으셨습니까. 그걸 생각해보면 소수로 다수를 제압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노부나가 : 나는 정보 수집에 힘을 기울이고, 호우 속에서 요시모토의 목을 쳤네. 결과적으로 작전은 성공했지만, 만약 다시 한 번 해보라고 한다면 성공할 자신은 없어. 나는 오케하자마 이후 도박 같은 승부를 한 적이 없었네.
수강생 : 현대의 경영에서는 '소수정예'가 환영받고 있는데요.
노부나가 : 굳이 말을 붙이자면 '다수정예'라고 해야겠지. 싸움은 기본적으로 병사의 수로 결정되는 법. 해서 나는 언제나 인재를 모집하고 유능한 무사와 선비를 맞이했던 게야.
〈에피소드〉가신을 연달아 다이묘로 임명 : 덴쇼 원년(1573년), 무로마치 막부는 무너졌다. 한편 노부나가는 점차 천하의 지배자가 되어갔다. 이즈음 노부나가는 가신들에게 나라를 분배하기 시작했다. 이들 각 장수는 이력 또한 가지각색이다. 구 막부의 신참자, 신진의 소영주 층도 있었으며, 구 영지에서는 옛 가신도 배분을 받았다. 공적과 실력 중심이라는 합리주의가 여기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패전에서 배워 다음 기회에 살린다노부나가 :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옳은 소리다. 우리 오와리 병사가 약졸이라는 건 유명했다. 오와리는 이웃한 미카와나 미노에 비해 너무나도 약했어. 그런 약졸들을 이끌고 싸워야 하니까 작전이 중요해지는 게야. 나는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동시에 패전도 적지 않았네. 졌을 때는 '가신이 무능했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해선 안 되네. 패전에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법이니, 그 원인을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전략을 뿌리에서부터 다시 분석해봐야만 하는 게야. 싸움에 있어 중요한 건 정보 수집과 면밀한 준비, 대국적인 전략일세.
〈에피소드〉의외로 많았던 노부나가의 패전 : 노부나가의 전투력을 짚어 올라가다 보면 의외로 패전이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대처가 능란해 치명적인 손실을 입은 적은 없었다. 혼간사 공략 때의 일이다. 노부나가를 고민하게 만든 것은 뜻밖에도 조총이었다. 사이카 사람들의 조총부대는 이단, 삼단의 사격을 행함으로써 오다군을 마지막까지 괴롭혔다. 노부나가는 네고로의 승병(조총으로 무장한 강대한 세력을 자랑했던 무리)들을 대거 고용해 부하들을 훈련시켰고, 최강의 소총부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나가시노 전투에서 완벽한 승리를 이룩해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리 수군과의 첫 전투도 패배였다. 원래부터 오다군은 해전이 주특기가 아니었을 뿐더러 모리 수군의 실력조차 모른 채 행해진 전투였었다. 모리 수군은 교묘한 배 운용술과 호로쿠(자기로 된 단지 안에 화약을 채운 것으로 현재의 소이탄과 비슷하다. 원래는 참깨나 찻잎을 볶는 질그릇을 의미)라 불리는 화기도 있어 오다 수군은 전혀 당해내지 못했다. 그때 노부나가가 생각해낸 비책은 철판으로 둘러싼 철갑선이었다. 배에 철판을 둘러두면 적의 화기를 봉쇄할 수 있다. 이 철갑선 덕으로 2회전에서는 완승을 거두었고, 그 결과 혼간사는 보급로가 끊겨 항복하게 되었다.
근대 병기를 구사하라노부나가 :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부단히 연구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지. 과거의 인습에 사로잡혀 있어선 아니 되네. 나는 젊었을 때 창을 연구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네. 기존의 창보다 긴 스물한 자(약 6.3m, 한 자는 약 30.3cm)짜리 장병창(자루가 몹시 긴 창) 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어.
〈에피소드〉미치산을 신음하게 만든 장병창 : 노부나가는 덴분 22년(1553년) 미노의 사이토 미치산과 오와리 나카지마군 후쿠다의 쇼토쿠사에서 첫 회견을 가졌다. 노부나가가 스무 살 때의 일이다. 노부나가는 보명 700명 전원에게 갑옷을 두르게 하고, 스물한 자의 장병창과 조총을 500정식 장비하게 했다. 그 당시 다네가지마에 조총이 전래된 지 10년쯤 된 무렵으로 조총은 값비싼 귀중품이었다. 그런 물건을 500정이나 갖추고 있었으니 미치산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바지랑대만큼 긴 장병창 역시 미치산의 시선을 붙들었다. 미치산은 "병기의 특출함과 수량이 전쟁을 지배한다는 걸 저 얼간이는 알고 있구나" 하며 감탄했다. 노부나가와의 회견 후에는 "참으로 유감스럽지만, 우리 산성(미치산을 뜻함)의 아이들은 저 천치의 대문 앞에 말을 매어두게 될 것이야(노부나가의 가신이 될 것이라는 뜻)"라고 측근에게 푸념했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무기라면 우선 조총이 떠오르겠지만, 이 장병창도 노부나가다운 합리적인 무기였다. 당시의 창은 열두 자에서 열다섯 자가 표준이었다. 그러니 스물한 자라는 길이는 독보적이었다. 노부나가는 이 장병창을 군비軍備의 중심에 두었다. 이제껏 창은 개인전에서 적을 꿰뚫거나 혹은 다가가 말을 노리기 위한 것이었지만, 노부나가는 이른바 '뒤덮는 창槍衾'이란 전법을 만들어냈다. 창 부대를 일렬로 늘어세우고 최전선의 적들에게 돌격시키는 것이다. 창 길이의 차이로 상대는 돌격을 허용하고 만다. 훈련이 부족하기 마련인 보병들에게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집단전법이었다. 대량의 병사를 모아 조총과 병용하면 활이나 태도太刀보다도 효과적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러한 창 사용법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고, 이 또한 노부나가의 독창성의 발현이기도 했다.
〈현대 경영으로 치환해보면〉일본경제패전의 원인은 인재를 살리지 않는 기업풍토에 있다 : 역사를 돌이켜보면 일본은 60~70년 주기로 '성장기→안정기→쇠퇴기→혼란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이지유신 후에 태평양 전쟁이라는 대혼란기가 있었고, 거기에 뒤이어 지금은 경제패전이라 불리는 혼란기 상황이다. 일본은 미국의 페리가 이끄는 흑선에 의해 쇄국의 잠에서 깨어났다. 흑선을 계기로 메이지유신이 일어난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외압만이 원인은 아니다. 막부 말기에는 막부나 번(藩; 다이묘가 다스리던 영역)이나 재정 파탄으로 파산 상태였다. 그렇기에 번주들이 대정봉환(大政奉還; 막부가 쥐고 있던 국정을 천황에게 다시 되돌림)에 동의한 것이다. 재정 파탄에 이르게 된 까닭은 오랜 기간에 걸친 신분제도 때문에 인재 등용이 이루어지지 못했던 탓이다. 메이지유신은 하급 사족(士族; 무사계급)과 농민이 주체가 되어 일으킨 일종의 쿠데타였고, 이 메이지유신 덕에 일본은 기력을 되찾았다. 태평양전쟁은 참으로 한심한 싸움이었다. 패배의 가장 큰 이유는 군 상층부의 무능함이었다. 아무 전략도 없이 어이없는 전투만을 거듭하다 급기야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 후가 지금의 경제패전이다. 이 패전의 원인은 과거의 역사와 매우 흡사하다. 일본은 사회의 안정화가 진행된 탓에 옛 '신분제' 성향이 강해졌다. 정치가의 자식은 정치가가 되고 사장 자식은 사장이 된다. 자산가는 자식들을 비싼 사립학교에 넣어 어린 시절부터 교육에 힘을 쏟는다. 기업은 신입사원채용 시 학력에 연연해한다. 기업 내의 승진은 연공서열 추세가 강하다. 일본기업이 외국 세력에게 이기는 비결은 인재 등용을 추진하는 일이다. 연령이나 입사 이력, 학력, 성별 등에 일절 사로잡히지 말고 인재를 모집하자. 그리고 적재적소에 이들을 배치하고 그 사람만의 재능을 발휘하게 만들자. 그 능력을 살린다면 부활의 길은 열린다.
인재를 채용하는 다섯 가지
'천하포무'라는 높은 가치를 올려라노부나가 : 우선 필요한 건 "자신은 천하를 쥘 인간이다"라고 선언하는 일이네. 인재 모집은 크고 높은 목표를 내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네. 내 경우엔 "전국의 세상을 평정하고 평화를 실현하여 무사가 통치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든다"란 것이었네. 그런 의미를 담아 '천하포무'라고 말한 것이지. 수강생 : 현대의 경영에서 참고한다고 하면 경영 이념을 소중히 하라는 뜻이 되는 건가요?
노부나가 : 옳거니. 자신이 싸움에서 이겨 최고가 되었다 치더라도 그저 사욕에서 비롯된 거라면 아무 의의도 없다. 역시 세상에 도움이 되겠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네. 전국시대의 싸움은 싸움이 끝남과 동시에 약탈이 시작됐어. 나는 그와 같은 행패를 일절 허용하지 않았네. 내가 도쿄에 들어섰을 때 수도 사람들은 약탈을 겁내 도망친 자가 많았으나, 오다군은 규율을 준수하고 있다는 걸 알자 바로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