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 간디
요르크 치들라우 지음 | 21세기북스
경영자 간디
요르크 치들라우 지음
21세기북스 / 2004년 6월 / 219쪽 / 12,000원
간디와 경영자가 만났을 때
마하트마 간디는 전형적인 경영자로서의 미덕을 지닌 인간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간디는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배울 게 있는 탁월한 인격의 소유자다. 왜냐하면 간디처럼 서양적인 사고와 동양적인 사고를 모두 균형있게 갖춘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간디야말로 서로 가까워지기 힘든 문화들을 잘 화해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바로 간디가 성공할 수 있었던 토대이다.
간디와 경영자를 연관시켜 보려면 우선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얼핏 보면 두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자율, 경력, 최신 정보, 휴대폰과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 노트북의 이미지인 경영자와 달리 간디는 고귀한 성품 때문에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즉 그는 겉으로 보면 현대의 삶과는 전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는, 세상을 등진 성자에 어울린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간디를 ‘거의 발가벗은 수도승’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한다. 오히려 처칠이 더 이상 오늘날의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다. 처칠이 지닌 무자비함, 고집, 냉소주의, 건방짐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인정받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오늘날에는 설사 성공한다 해도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나 간디의 미덕은 전혀 다르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간디의 미덕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다. 오늘날의 경영자들에게 모범으로 삼고 있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존 F. 케네디와 함께 인도의 금욕적인 대머리 남자 이름을 대곤 한다. 미국에서 간디는 권력욕과 부패와의 단절을 강조하는 지도자를 위한 세미나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유명한 경영 컨설턴트이자 전문가인 케샤반 나이르는 “오늘날 우리는 간디를 알아야 한다. 간디가 보여준 인간적인 책임감, 진실성, 사랑, 존중, 용기는 직장에서든 사회에서든 어디에서나 인기를 얻고 있다.”라고 말했다.
간디는 한 단계 발전된 수준 높은 경영을 이끌어내기 위해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간디는 우리가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믿고 있던 많은 생각들에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성공에는 반드시 거짓말이 필요하다거나 남을 속여야 한다거나, 어떤 형태로든 힘을 과시해야만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관념들이 그 예이다. 그러나 간디는 그와 반대로 진실성, 비폭력, 봉사에 가치를 둔다. 이런 미덕들은 처음에는 현실과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간디의 장점은 시간을 초월한다. 간디의 정직함과 단호함은 예전에도 지금도, 또한 50년 뒤에도 모범이 될 것이다.
1장 간디의 자기 경영
진리
간디는 어려서부터 진실하고 정직한 아이였다. 그것은 나중에 간디가 사티아그라하, 즉 진리 투쟁가가 되는 씨앗이 된다. 간디가 열 살쯤 되었을 때 감독관이 학교를 방문했다. 감독관은 간디와 다른 학생들에게 칠판에 영어 단어 다섯 개의 철자를 써보라고 했다. 어린 간디가 ‘kettle'을 ’kettel'이라고 잘못 쓰자 교사가 간디에게 옆 사람이 쓴 것을 보라고 속삭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아이라도 분명 유혹을 느꼈을 것이다. 감독관이 분명하게 허락한 상태에서 마음껏 커닝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어린 간디는 거부한다. 간디는 결코 다른 사람의 공로를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후에 간디가 강조했듯이 폭력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 혹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때는 거짓말할 수 있다.” 등 도덕적 예외가 특정한 상황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근거를 내세우지만, 간디는 이런 논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진리를 지키는 사람만 진리를 사랑한다.” 간디는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거짓말을 하거나 도덕 원칙을 깰 만한 정당한 이유라고 자처하는 것은 ‘난센스’로 밝혀진다고 말한다. 간디가 어떤 상황에서도 사티아그라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진실은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둘째, 진실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셋째,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넷째, 진실하면 자신의 행위에 당당하게 책임질 수 있다. 다섯째, 진실한 사람은 잘 속지 않는다. 여섯째, 진실하면 자유로워진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삶의 목표로 삼을 만한 가치있는 진리란 도대체 무엇인가?” 진리는 “장미가 향기를 뿜어내듯이” 조용히 그 영향을 퍼뜨리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강조했던 간디는 이러한 진리란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는 진리를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체험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아힘사(ahimsa)를 말한다. 아힘사란 상해와 살인, 난폭함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힘사(himsa)와 부정의 의미인 아(a)의 합성어다.
비폭력
간디는 늘 비겁함을 나무랐다. 그것은 그가 비폭력이 비겁하게 싸움을 피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인도의 한 시골 마을에 도둑떼가 침입하자, 그곳의 자유 투쟁가들이 아내와 아이, 집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이에 간디는 그들을 크게 나무랐다. 간디가 그들에게 왜 자기 가족을 지키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들은 비폭력 원칙을 깨지 않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간디는 그 대답에 작으나마 분노를 터뜨렸다. 그리고 비폭력이란 결코 강도에게 가족을 희생시키는 데 쓰는 변명이 아니라고 말했다. “비폭력은 비겁함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용기를 보여주는 미덕이다.”
가브리엘라 사바티니는 아르헨티나의 테니스 선수인데, 당시 슈테피 그라프의 파괴적인 포핸드 스트로크에 응수하기 위해 문볼(moonball) 기법이라는 것을 개발했다. 상대방의 공격으로 공이 네트보다 수 미터 높게 하늘을 난 뒤에 바닥과 충돌하면, 다시 바닥에서 수 미터 높게 튀어 오르게 치는 기법이다.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속도가 줄면서 공이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슈테피 그라프는 테니스계에서 반테니스적이라고 비난받은 이 전략에 애를 먹었고, 사바티니는 같은 방법으로 몇몇 게임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사바티니의 문볼 기법은 어떤 의미에서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원칙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상대를 비겁하게 피하지 않고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다시 공을 건네주기 때문이다. 물론 사바티니와 간디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사바티니는 승리를 위해 그 기법을 쓴 반면 간디에게는 승리나 실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것 그리고 결국에는 상대한테 싸움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설득시키는 게 중요했다.
엄격함
간디는 인격의 발달을 위해서 깊은 참회가 필요하며 자기 잘못을 남에게 숨기지 않는 사람만이 참회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간디는 곧바로 후회하고 좌절하는 것 역시 경고했다. “실수 한 번 했다고 불행해지진 않는다. 우리가 불행해지는 것은 자기 약점을 포기했거나, 약점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거나, 노력이 부족해서 실수를 저질렀을 때이다.”
정말 유감스러운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소홀히 해서 저지르게 되는 실수이다. 왜냐하면 그런 태만은 자기 기만을 낳고, 이 자기 기만은 가차없이 자기를 비판하는 것과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된 행동을 진심으로 후회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에 대해 늘 깨어 있어 비판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는 물론 남에게도 이롭다고 간디는 말했다.
전기 작가 피아렐랄의 묘사를 보면 간디가 자기 비판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간디는 매일 침묵으로 행동을 재판했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자기 행동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간디의 엄격한 시험을 벗어나지 못했다. 간디는 자신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어떤 길에서 자신의 인격적인 완전무결을 발견하느냐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며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든 상관하지 않고 계속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사티아그라하와 아힘사의 정신, 진리와 비폭력 정신으로 그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동요하지 않고 자기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기 위해서는 솔직하고 단호하며,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이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간디는 태어날 때부터 사티아그라하였던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노력해서 그런 칭호를 얻은 것이다. 간디는 금욕과 솔직함, 맹세를 이 세 가지를 통해 사티아그라하가 되는 데 본질적인 도움을 받았다. ‘금욕’으로 에너지를 아꼈으며, ‘솔직함’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열쇠를 받았다. 그리고 ‘맹세’를 통해 힘과 결연함을 표시했고, 위기를 이겨냈다.
경청과 침묵
정치인들은 가냘프고 말이 적은 마하트마 간디가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하는 것을 볼 때마다 놀랐다. 목소리도 작고 연설 내용이 특별하지도 않고 수사학 규칙에도 적절하지 않은데 말이다.
간디는 본래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간디는 이 단점을 큰 장점으로 만들 줄 알았다. 바로 자신만의 고유한 ‘수사학’,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욕적인 수사학”이다. 간디는 진리를 위해 사는 사람은 많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것 가운데 거짓말은 끝이 없지만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간디는 수사적인 금욕을 권했다. “나는 삶의 순간마다 침묵이 최고의 언어라는 것을 경험했다. 꼭 무슨 말을 해야 할 때라도 최대한 적게 말해야 한다. 한 마디로 충분할 때는 두 마디로 말하지 말라.”
간디는 궤변이나 생트집을 엄격하게 거부했는데 이것도 그의 수사학 금욕에 속했다. 또한 간디는 진리가 마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코 진리를 무기로 삼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신념인 비폭력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그 점에서 간디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자 할 때만 솔직한 말을 하는 정치가나 경영자와는 구별된다.
간디의 언어는 그의 철학 그대로 솔직하고 단도직입적이며 발전적이다. 그러나 그의 언어는 늘 따뜻하다. 간디는 비도덕적인 표현은 쓰지 않는다. 간디는 “상처 입히는 말은 폭력만큼 해롭다.”라고 생각했다. 간디 입에서 경영자들이 흔히 쓰는 가시 돋친 표현이나 수사학적 속임수, 냉소적인 공격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헛수고일 것이다. 한편 간디는 이 모든 말을 생생한 언어로 전달했다. 맹세를 ‘결의의 등대’로 표현한 것을 생각해보라. 이는 간디가 주로 수식어를 사용하거나 과장된 표현을 쓰지 않고 짧은 문장으로도 상대방을 결코 지루하게 만들지 않았던 이유였다.
용기
간디는 두려움이 얼마나 사람을 마비시키는지를 여러 번 체험했다. 카스트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 투쟁할 때 간디는 반격을 당했다. 그것도 비사회적인 카스트 제도로 이익을 보는 상류층보다는 불가촉천민한테서였다. 그들은 자유를 얻게 된 후 혹시 생길지 모를 결과를 두려워했다. 간디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자신의 두려움과 싸우라고 간청했다. “스스로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은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간디는 천성적으로 결코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 그곳에서 간디는 용기와 단호함을 갖춘 자유 투쟁의 수호신이 될 수 있었다. 인도로 돌아왔을 때 간디는 재산 몰수, 질병, 징역, 고문, 비열한 암살 등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물론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도박꾼은 아니었다. 간디는 그런 ‘영웅’을 깊이 의심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과 달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이라고 해서 꼭 다른 두려움도 극복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몇몇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삶에서는 아주 사소하고 불편한 일에도 도망을 친다.”라고 간디는 경고했다.
간디의 용기는 사물이든, 사람이든, 자기 목숨이든,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 데서 나온다. 이에 대한 간디만의 비결은 삶에서 집착을 최소로 줄인 데 있다. 그렇다고 허무주의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간디가 말하는 것은 집착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의 삶이다. 간디는 자아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진리의 대양 한가운데서 헤엄치기 위해서는 먼저 무(無)로 돌아가야 한다.“ 자아는 조금만 더 자세히 관찰하면 그것이 허위라는 게 드러난다. 자아는 우리의 감각과 사고의 변화에서 느껴지는, 하나가 다른 것의 원인이 되고 그것은 또 다른 것의 원인이 되는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불분명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간디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계속 깨어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쳐야 한다고 요구한다. 남보다 앞서 높은 자리에 올라 지도자로서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면 특히 이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위치에서 자아에 실제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권력과 특권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경영자들이 회사와 직원에게 봉사하는 대신에 개인적인 상황을 개선하는 데 지위를 이용하는 상황을 종종 볼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특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것이 경영자의 주요 목표가 되기도 한다.
2장 간디의 인간 경영
신뢰
간디는 늘 남을 너무 믿는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을 때도 정부를 너무 쉽게 믿는다는 비난을 받았고, 인도에서도 늘 영국을 너무 쉽게 믿는다고 비난을 받았다. 힌두교도들은 간디가 회교도들을 너무 믿는다고 비판했고, 회교도들은 간디가 힌두교도이기 때문에 그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간디는 그런 비판에 상관하지 않았다. 간디는 믿음이 사티아그라하와 진리를 위한 비폭력 투쟁의 본질적인 토대라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사티아그라하는 적을 의심하느니 차라리 백 번이고 속는다.”라고 간디는 말했다. 그 말이 고집 세고 순진하게 들릴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간디의 깊은 믿음은 결국 협상 때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생산적인 전략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음의 ‘믿음에 대한 7가지 특성’은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데 꼭 알아두어야 할 점들이다.
첫째, 믿음은 자신의 지평을 넓혀준다. 서로 믿는 사람들끼리는 서로에 대해 뭔가를 배울 수 있다. 둘째, 불신이 많은 사람은 쉽게 속는다. 불신은 결국 그의 지평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셋째, 남을 믿을 줄 알아야 자신도 믿을 수 있다. 남을 믿는 것은 자신을 믿는 가장 확실한 표시이다. 넷째, 믿음은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남을 믿지 못하면 그도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걸 사람들은 안다. 다섯째, 믿음은 용기를 보여준다. 절대적인 믿음은 강한 사람, 즉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 여섯째, 믿음은 삶을 단순하게 만든다.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곱째, 믿음은 시간을 절약해준다. 믿음이 가득하면, 문제 해결에만 에너지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불신이 만연해있다. 우리 모두 이 불신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다시 믿음이 가득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간디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모든 인간은 진리를 자기 내면에서 발전시켜 그를 통해 자신의 본래 믿음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간디가 신중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간디가 말하는 믿음이란 비판적인 이성이 아닌 부정적인 감정을 버리는 것이다.
이해심
간디는 지도자 중에서도 타인에게 동감할 줄 알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사람에 속했다. 간디는 말로 표현하지 않은 그들의 숨겨진 욕구까지 읽어낼 수 있었고 그 동경의 화살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고 있었다. 설문조사나 시장조사도 없이 말이다.
간디는 철저하게 관찰에만 의지했다.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불가촉천민을 위한 투쟁을 벌이기 위해 인도 전역을 여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디가 인간을 이해할 줄 알게 된 것은 개인적인 접촉 때문만이 아니라 뛰어난 동감 능력 때문이었다. 간디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간디가 항상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할 줄 알았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들은 간디의 이러한 능력이 배워 익힌 것이거나 피상적인 제스처가 아닌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