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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된 청소부

제임스 데스페인 지음 | 거름
CEO가 된 청소부

제임스 데스페인 외 공저

거름 / 2004년 3월 / 384쪽 / 13,000원



개의 죽음

나는 대공황이 끝날 무렵, 일리노이 중부의 그린뷰(GreenView)라 불리는 광산마을에서 태어났고, 변호사 시절 이 지역을 순회하며 일했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가치관을 배우며 자랐다. 유전자가 내 눈의 색깔과 턱 모양을 결정지은 것처럼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일하셨던 광산회사는 나의 인생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일하는 모습은 내게 오랫동안 깊은 인상을 남겼고 나중에 내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광구에서는 창의성이 전혀 허락되지 않았다. 끈기, 헌신 그리고 체력만이 광부가 성공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들이었다. 광부들이 광산에서 배운 교훈은 간단하다. 규칙을 어기면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업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라. 항상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며 경계심을 늦추지 마라. 권위를 존중하라. 일리노이 주 중부 지방 사람들의 우상이기도 한 이 기본적인 가치관들, 즉 이상을 향한 헌신과 참여, 생활의 현실성에 대한 이해, 정직과 신뢰 등은 나의 가치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의 행동에는 이러한 원칙들이 철저히 배어 있었다. 아버지의 양육법은 링컨의 ‘정직한 마음’과 광산에서의 ‘권위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이라는 원칙을 합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세운 규칙들은 간단하고 직설적이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나이 든 사람을 공경하라.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집에서는 두 배로 혼난다. 경계선을 넘으면 호된 벌을 받는다.

한때 아버지는 달마시안 개 한 마리를 애지중지 키우셨다. 아버지는 그 개를 용맹하고 충직한, 자신만의 개로 훈련시키셨다. 집에서는 개를 줄에 묶어 밖에다 두셨다. 나의 가장 즐거운 오락거리 중 하나는 개가 묶여 있는 줄 길이보다 약간 먼 곳으로 도망 다니면서 개를 약올리는 놀이였다. 어느 날 친구와 나는 개 앞을 왔다 갔다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개가 달려들었고 개의 이빨이 내 친구의 엉덩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게 상처가 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둘은 두려움에 질렸다. 저녁에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그 일에 대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지는 내 방으로 들어오셔서 나의 셔츠 깃을 잡아 쥔 채로 나를 개집까지 끌고 가셨다. 그리고 손에는 권총을 쥐고 나와 개를 광산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개를 가만히 앉혀 놓고는 스무 걸음 정도 걸은 후 돌아서서 개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쏘셨다. “탕!”

나의 어리석은 행동이 끔찍한 죽음을 불러온 것이다. 나는 순간 충격에 휩싸였다. 여기서 내가 배운 교훈은 확실했다. 규칙을 어기면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바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그 일은 평생 동안 내 기억 속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지만, 학과 공부를 따라 잡을 정도는 되었다. 학교에서 나는 야구와 농구, 육상을 했고 꽤 실력이 좋아서 유명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대학 진학 대신 결혼을 선택했다. 그 당시, 우리 같은 광산 마을에서 조혼은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상당히 어린 커플에 속했다. 나는 열여섯 살이었고, 아내 글로리아는 열다섯 살이었다. 게다가 글로리아는 우리의 첫 아이를 임신한 몸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우리가 처음으로 장만한 집은 글로리아 부모님의 소유지에 있는 작고 허름한 주택이었다. 낮에는 학교를 다녔고, 저녁과 여름에는 일을 했으며, 함께 우리 아들 마이클을 돌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미국 주방위 공군에 지원했고, 제대 후에는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기로 했다.

동전 던지기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은 오만으로 가득찬 나라였다. 미국 제조공장의 공장장들은 대부분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리더로서 그들은 직원들로 하여금 임무 자체보다는 명령 불복종을 더 두려워하도록 만들기 위해 거친 성격, 용기, 거만함 등을 지녀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철 같이 차갑고 단호한 군대식 모델이 최고경영자, 사장, 공장장, 감독관, 현장주임에게 필요한 리더십의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대부분 군대에서 자신의 생사를 위해서라도 상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물론 노동자들이 관리자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존중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보복할 계획을 마음속으로 꾸미고 있었다.

나는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캐터필러 사에서 일할 수 있기를 원했다. 나는 이 회사에서 높은 연봉 이상의 그 무엇, 즉 나 자신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찾고자 했다. 당시 나는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고 그만큼 자신감도 위축되어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어만 갔다. 나의 이 부족함을 얼마나 극복하고 싶었던가. 나는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캐터필러 사의 면접을 보러 갔다. “일주일에 100달러만 벌 수 있다면 내가 필요한 건 다 살 수 있을 텐데. 이곳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내 인생도 좀 괜찮아질 텐데.” 면접관 앞에 앉자 점차 온 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면접관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긴장을 풀라고 말하며 격려를 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좋아. 월요일에 출근해 세 번째 조에 가서 일하게.” 이젠 됐다. 나는 고용된 것이다. 내게도 직업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미국 최고의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특별한 누군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회사의 규칙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항상 회사의 기대를 만족시킬 것이며 상관에 대해 항상 신경을 쓸 것이었다.

세 번째 작업조는 ‘야간작업조’로 저녁 11시 18분에 시작되어 새벽까지 지속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그저 바닥을 닦고 때때로 기계에서 빠져나와 날아다니는 회색 철 조각들을 치우는 일이었다. 사용하는 연장도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전체 바닥 청소를 위한 대걸레였고, 또 하나는 귀퉁이와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데 필요한 손 빗자루였다. 나는 항상 빗자루를 들고 다녔다. 얼마 후 감독관은 나의 부지런함과 상관을 존중하는 태도에 대한 보상으로 물탱크 담당자로 한 단계 승진시켜 주었다. 물론 그 일도 밑바닥일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바닥 청소하는 일보다는 나았고, 적어도 내가 회사에 접근하는 태도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감독관을 만족시켜라. 이게 바로 성공할 수 있는 요령이다.' 나는 맡은 일을 열심히 했고 그래서 또 한번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직접 기계를 다룰 수 있는 자리로 승진한 것이다.

기계기술자의 작업 능력은 총 100퍼센트에서 점심시간인 3.8퍼센트를 제외하고 96.2퍼센트의 작업을 해내야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 수치는 경쟁을 좋아하는 나의 정신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되었다. 몇 주 후 나는 96.2퍼센트란 쉽게 성취할 수 있는 수치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동료 직원들에게 왜 일을 더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을 때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제껏 잘 굴러간 시스템 가지고 말썽 일으키지 마. 생산량을 늘리면 회사에 복종하는 꼴이라구. 결국 다른 직원들의 일자리를 뺏는 셈이지. 초과근무수당도 없어질 거야.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어.”

나는 한동안 그들의 태도를 따르는 데 만족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 속에서 아버지의 설교가 들리는 듯했다. “일을 하려면 똑바로 해라.” 신이 부여하신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게을리 한다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최선을 다해 기계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결국 96.2퍼센트라는 기록을 깨고 100퍼센트를 초과했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목표를 이룬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고 회사도 속이지 않았다. 현장주임은 내가 해낸 일에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나를 계속 협박했으며 자신들을 따르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나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양을 알았고, 이보다 일을 적게 한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나는 결코 정직하지 못한 삶을 살 수 없었다. 동료들은 나의 행동을 못마땅해 했지만 대신 내가 초과로 생산해낸 양으로 다른 직원의 생산 미달량을 채워 주었기 때문에 그들과 나는 평화스러운 휴전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또 한번 승진했다. 이번에는 엔진 블럭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팀원들과 같이 일해야 했다. 우리는 함께 일하고 웃었으며 우리가 해낸 일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나만 빼고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것은 우리 팀이 정해진 분량 이상의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나는 갈등을 겪게 되었다. 나는 일의 속도를 증가시키고 싶었지만 여기서는 팀 중심으로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속한 팀은 그저 정해진 목표 근처까지만 따라 가려고 했다. 운동선수 출신인 나에게 이것은 매우 생소한 경험이었다. 나는 이기고 싶어하지 않는 팀을 위해 운동해본 적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분노도 곧 지루함으로 바뀌었다. 8시간의 작업시간 동안 6시간만 일한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대체 왜?

얼마 후 현장 감독과 관리주임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자네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가령 5년 후 자네의 커리어에 대해 말이야.” “글쎄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 어떤 일이 주어지건 잘 해내고 싶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두 남자는 껄껄대며 웃었다. “바로 그 정신이야, 짐. 우리는 자네가 맡은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 우리는 자네가 훌륭한 감독관이 될 거라고 믿네. 관리자 양성 수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게” 관리자! 그 한 마디에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내가 정말 그 자리를 원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과연 리더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지 자신도 없었다. 나는 관리자라는 단어를 계속 입에서 되뇌었다. 그리고 나는 하나의 완벽한 팀을 상상했다.

내 눈의 상처

나에게 있어 수습프로그램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였다. 커다란 체구와 오랜 스포츠 덕분에도 공장 일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육체적 힘에 의존하기보다는 생각을 하고 계획을 짜내며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어야 했다. 수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지식, 경험, 과학, 인류애, 지성, 그리고 감정이라는 세계에 속하는 한 부분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작업 중에 유리가 깨지면서 눈에 부상을 입었다. 그 때 나의 상관인 더건 씨는 나의 상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며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그의 따듯한 친절과 배려는 내가 그로부터 얻은 중요한 교훈 중 하나였다. 명령하고 복종만을 강요하는 리더가 아니라 부하 직원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아끼는 리더의 모습을 그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오로지 내가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해냄으로써 더건 씨의 칭찬을 받기 위해 하루 하루를 살았다.

그 날도 나는 멋진 하루를 상상하며 출근하여 작업장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지난 밤 내가 작업을 마친 제품 위에 직원들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상징이었던 ‘폐기대상 불량품’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순간, 나는 온 몸이 떨렸다. 곧 이어 최고 책임자인 공장장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자네가 어제 이 기계를 돌린 멍청한 수습생인가?”나는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이 멍청아! 자네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회사는 중요한 고객을 잃게 생겼단 말이야. 자네는 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게 될 거야. 오늘부터 몸조심하는 게 좋아. 한번만 더 실수하면 그땐….”

그 사건 이후, 나는 일에 거의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자신감이 사그라졌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리고 곧 이어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주문량이 떨어지고 있대, 아마 일부 직원들이 일시적으로 해고될 것 같아.”

어느 날, 더건 씨가 나를 불렀다.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우리 회사에 감원 조치가 내려졌네. 안타깝게도 자네가 그 중 한 사람이 돼 버렸어. 자네의 해고를 막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네만. 공장장이 자네가 몇 주전에 망쳐 놓은 일을 상기시키면서 막무가내야.”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성과도 좋았는데. 한 번 실수했다고 끝장난 건가?’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규칙을 어기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단다.”

벤치로 밀려남

임시 해고. 벤치로 밀려남! 바로 그거였다. 차라리 해고를 당했다면 이제 끝났다고 체념을 했을 것이다. 임시 해고라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나쁜 점이 많았다. 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종종 화를 냈고 까다롭게 굴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배운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기술들은 나의 잘못을 상기시켜 주는, 고통스러운 것들이었다.

벤치로 밀려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마침내 회사에서 나를 다시 불렀다. 결국 나는 수습 프로그램을 끝마칠 수 있었고 내 생활은 다시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다시 친숙한 작업 환경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볼 때마다 고통 받을 필요가 없었다.

억울한 보상

수습 프로그램을 마친 후 나는 자동변속기를 제작하는 기계 기술자로 임명되었다. 어느 날 노동조합 간부로 알려진 남자 한 명이 내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이 기계에 대해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네. 아무리 최대한 돌린다고 해도 이 기계는 한 작업조 당 44개밖에 생산해 내지 못해.” 나는 그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글쎄요. 그건 정확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이 기계는 시간당 열두 개 반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100퍼센트로 가동시키면 한 작업조 당 100개를 생산할 수 있어요.” “내 말을 들어, 이 친구야. 이 기계는 절대 44개 이상 만들 수 없어. 그 속도 이상으로 작동시켰다가 다칠 수도 있단 말이야. 더 이상 말 안 하겠어. 그렇지만 내 말을 안 듣는 놈들한테는 꼭 이상한 일들이 생기더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기계는 절대 44개 이상 만들 수 없어. 동료들을 화나게 하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거야.”

월요일 오후, 나는 마침내 기계를 풀 가동시킬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 일을 시작했다. 너무 집중을 한 나머지, 다른 동료들이 서로 속삭이고 욕을 하면서 나에게 주먹질을 해대는 것도 전혀 몰랐다. 오로지 기계만 돌렸다. 결국 나는 100개가 아닌 144개, 내가 그 기계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양의 거의 1.5배가 넘는 양을 생산해 냈다. 만족스럽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 상태에서 나는 생산 기록장부에 나의 성과를 기록해 넣었다.

다음날 공장에 나왔을 때, 조합 대표를 포함하여 험악하게 생긴 노동자 몇 명이 나를 둘러쌌다. 마침내 조합 대표가 입을 열었다. “짐, 자네가 어제 적어 낸 이 기록은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군. 저 기계가 한 작업조 당 44개 이상 만들어 낸다는 건 절대 불가능해.”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분명 144개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렇다면 일벌레 씨! 오늘 작업을 마친 후에 주차장에서 얘기 좀 해야겠네. 아마 그때가 되면 자네 잘못이 기억날 거야.”

밤 11시 30분,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주차장에 서 있었다. 5분, 10분이 지나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그리고 자정이 지나도록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날 밤 나는 무언가를 이겨냈다는 생각에 한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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