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죽어야 리더십이 산다
진재혁 지음 | 더난출판
리더가 죽어야 리더십이 산다
진재혁 지음
더난출판/2002년 10월/240쪽/10,000원
1장 카리스마 리더십이란
카리스마 - ‘권위’를 표현하는 또 다른 이름
그리스 로마신화와 성경에서 사용된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리더십의 영역에서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뜻으로 권위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왕권과 같이 세습되어 내려오는 전통적 권위(Traditional Authority)이다. 둘째, 법에 의해서 관리되고 관료들에 의하여 움직이는 권위인 합법적 또는 합리적 권위(Legitimate Authority)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tic Authority)이다. 베버는 카리스마를 “한 개인이 보통 사람들과 구별되는 어떤 자질 또는 초자연적이거나 초인간적인 힘, 어떤 예외적인 특별한 자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전통적 권위’와 서로 맞지 않는다. 왕권이 지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합법적? 합리적 권위’가 제대로 정착된 것도 아니다. 다만 ‘카리스마적인 권위의 힘’만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21세기를 이끌어갈 카리스마적 권위는 이전의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카리스마’와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누가 리더인가 - 탁월한 비전이 필요하다
카리스마 리더의 형태는 어떤 구체적인 특성(목소리, 눈빛, 에너지)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카리스마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첫째, 카리스마 리더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며,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추종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비전이 꼭 필요하다. 둘째, 비전을 제대로 전달하는 능력인데 카리스마 리더는 말이나 행동으로 비전에 대한 자신의 확신과 헌신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추종자들에게 신뢰와 동경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추종자들을 향한 관심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개인의 감정을 잘 다독이고 그들의 마음에 평안을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왜 리더가 되어야 하나 - 올바른 힘이 변화를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카리스마 리더십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추종자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리스마 리더가 끼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가? 첫째, 강한 신뢰를 들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추종자들이 리더를 깊이 신뢰하고 헌신하는 지에 달려 있다. 둘째, 강한 신뢰와 순종은 카리스마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의 자기발전과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을 뿐 아니라, 비전과 미래를 향한 도전의 자세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뜻은 온전히 제자들에게 전달되었고, 제자들은 각각 훌륭한 리더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했다. 셋째, 카리스마 리더에 대한 강한 신뢰와 확신 그리고 추종자들의 자신감은 비전의 열매를 성공적으로 맺게 한다는 것이다. 즉 카리스마 리더가 가진 가장 결정적인 능력은 각 개인의 역할과 의지를 활성화시켜 사명과 비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이다.
카리스마 리더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거짓된 이미지의 극복
카리스마 리더의 탄생 조건을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해본다. 첫째, 위기의식이다. 카리스마 이론의 아버지인 베버는 사회적 위기와 불안이 변화에 대한 강한 욕구를 표출시켜 카리스마 리더를 탄생시킨다고 한다. 위기의식이 생기거나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추종자들은 절대적인 순종과 열정을 리더에게 보여준다. 둘째, 추종자들의 성격이다. 카리스마 리더를 따르는 추종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적인 성격 유형은 ‘추종자들 모두가 나름대로 감정적 필요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필요를 자신들의 리더들이 만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관이 감정적 욕구와 낮은 자부심(Low self-esteem)으로 형성되어 있다면, 이러한 한계가 카리스마 리더를 간절히 원하는 염원으로 쉽게 발전되었을 것이다. 셋째, 권력의 거리이다. 신비로움이 절실할수록 카리스마 리더는 자신의 추종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결국 보통 리더들에 비해 큰 권력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기도 하다. 넷째, 매스컴의 영향이다. 요즘 같은 미디어 기술 아래서는 변변치 않은 사람이라도 위대한 영웅으로 바뀌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따라서 이미지 관리야말로 카리스마 리더의 조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점이다.
카리스마 리더십의 이중성 - 하나는 불완전하다
카리스마 리더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논란의 초점은 바로 ‘카리스마의 이중성’이다. 카리스마 리더십의 개념은 그 안에 전혀 도덕적 가치가 내포되어 있지 않으며 추종자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주었는가에 따라 형성되었다. 카리스마적 권위가 잘못 사용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독재권력이나 사이비 교주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맥클랜드는 사회를 위한 카리스마 리더십을 주장하면서 네 가지 기본 덕목을 갖출 것을 이야기했다. 첫째, 자신의 이득을 구하는 것보다 먼저 공동체의 이득을 구하는 것이고, 둘째, 권위적인 행동을 버리고 민주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고, 셋째, 사람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받드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사회를 위하는 카리스마는 교만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지 않으며 겸손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카리스마 그 이후 - 계승될 수 있을까?
카리스마의 일상화(Routinization of charisma)는 카리스마 리더가 이룩해 놓은 성과를 일정 기간 다져가는 현상을 말한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순간적인 성공을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꾸준히 유지시키는 지속력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이런 불안정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카리스마 리더와 추종자들이기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결국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의 원인이 되고 있는 학연, 지연, 세습 등의 문제가 여기서부터 파생되고 있다. 재벌은 물론 신성한 교회에서까지 벌어지고 있는 세습적 계승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분야가 앞으로 한국의 리더십 연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한국적 리더십 개발과 계승에 관한 탁월한 성과가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적 리더십과 서구의 리더십 - 권위 그리고 따뜻함
서양의 카리스마 리더는 개인적인 특성을 살린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중심의 리더십이 특징이다. 한국적 카리스마 리더십은 따르는 추종자들을 세워 주고 격려하며 확신과 만족감을 심어주기보다는 오히려 강력한 통제로 그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오직 리더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서의 성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카리스마 리더십은 결과 중심의 성장주의에서는 대단히 뛰어난 효력을 발생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성장을 이룬 후에는 반대로 더 이상의 성장을 방해하는 독버섯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2장 리더십이 바뀌고 있다
21세기라는 화두 -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통, 사회변천에 따른 한국적 21세기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바라보면서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우리 고유의 리더십 모델을 생각해야할 때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 리더십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믿는다. 당신이 과거에 얼마나 성공적인 리더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변화되는 패러다임에 민감해지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리더십은 정말 쓸모없는 리더십으로 왕따를 당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변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와 그 이해에 따른 우리의 변화에 달려 있다.
무엇이 바뀌고 있는가 - 포스트 모던 세대의 도전
근대화를 거치면서 도덕적인 가치보다는 경제적인 자립과 물질적인 성공을 바라는 욕구가 더 왕성해졌다. 이제는 먹고살기 위해 급급하던 시대도 지났다. 전체를 위한 희생보다는 개인의 행복과 삶의 즐거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전과 같은 권위적인 카리스마 리더십이 여전히 용납되고 지배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리더십이란 리더와 추종자들이 자기들의 처한 상황 속에서 상호관계를 주고받으며 영향을 공유하는 과정이 아닌가? 추종자들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면, 그에 따른 리더십 모델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걷잡을 수 없는 변화 - 이미 모든 것이 달라졌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라고 한다면, 서구의 개방적인 문화와 민주주의적인 영향을 통하여 우리 전통의 문화 의식과 이념들이 천천히 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 이혼율, 능력과 경제력을 가진 노처녀들, 직장을 다니는 엄마를 위한 보육시설, 인터넷, 핸드폰 등 이미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기적인 개인주의 -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라
오늘날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지독한 개인주의의 만연이다. 우리의 개인주의는 타인의 감정이나 편의를 존중할 줄 아는 서양의 개인주의와는 달리 물질만능주의와 결과 중심의 사고가 만연한 가운데서 서양의 개인주의 일부가 뿌리 없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과연 누가 리더로 떠오를 수 있을까?
3장 사랑과 증오의 딜레마, 한국적 카리스마
한국적 리더십의 뿌리 - 문화와 가치관을 읽어라
한국적 리더십의 뿌리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이 한국적 리더십의 모델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일까? 먼저 한국의 문화와 세계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종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유교와 불교, 기독교, 무속의 영향이다. 무속은 한국 사회에서 오래도록 민중의 정서를 지배한 문화 이데올로기이다. 불교는 고려시대에 화려한 꽃을 피웠으며, 유교는 조선시대를 지배한 통치 이데올로기다. 최근에는 기독교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적 리더십 모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역시 ‘유교와 무속’이다. 불교는 무속과 결합하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조선시대를 거치며 세력이 약해져 유교나 무속에 비하면 그 영향력이 오히려 적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기독교는 현재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지배적인 문화권력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의 세계관을 좀더 분명한 기준으로 설명한다면 개인의 심성은 상당히 무속적이며, 사회 조직과의 관계는 유교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면 유교와 무속이 가지고 있는 리더십의 모델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유교와 무속은 현재 한국인의 리더십 모델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유교 - 군사부일체를 유지하는 그릇
유교는 엄격한 가부장제도를 유지하는 기둥이다. 그것은 ‘효(孝)’라는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집요하게 강조되며 가정에는 오직 절대적인 가장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가부장 제도는 임금을 향한 ‘충(忠)’으로 발전되었다. 왕권신수설에 대한 믿음 때문에 임금의 실력보다는 정통성이 더 중요했다. 그러므로 임금은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으며 모든 백성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임금에게 절대적인 순종해야 했다. 이러한 유교적 리더십 모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철저한 1인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람의 리더에게 모든 힘과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무속 - 인간과 욕심 많은 신의 교통
무속은 영적인 귀신들에 의존하고 그들이 곧 인간의 생사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자신이나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주체적 의지도 없이 현재의 고통을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현세에서 어떻게 복된 삶을 살 수 있을까가 관심사의 전부였다. 그런 의미에서 굿판에서 한바탕 펼쳐지는 요란한 노래와 춤은 순간적인 표출과 쾌락을 통하여 괴로운 현재의 고통을 잊으려는 간절한 소망이 깃든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굿판을 벌이고 귀신과 직접 흥정을 벌이는 무당의 리더십이야말로 강력한 힘과 권한을 가지고 있다. 무당이 복의 통로가 되므로 무당에게 얼마나 잘하느냐가 곧 복을 얼마나 잘 받느냐의 기준이 된다. 마찬가지로 무당에게 섭섭하게 대했을 때는 악운과 저주를 각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울렸다가 달랬다가 하는 무당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는 기만적인 리더와 연약한 추종자들의 모습이 아닌가? 무당의 말 한마디에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는 지독한 1인 지배체제인 것이다. 이러한 무속의 리더십 모델은 신적인 영향이 농후한 강력한 귄위주의적 리더십의 모델의 전형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절대적인 권한, 그 어느 누구도 반문하거나 대항할 수 없는 힘. 바로 그것이 한국적 카리스마 리더십의 실체이다.
군사정권 - 1인 지배체제를 만든 전범
군사정권을 규정하는 속성 역시 1인 지배체제이다. 이러한 군사정권의 영향 때문에 우리는 어느덧 한 사람이 가지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대해 무감각하게 복종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허용하게 되었다. 강력한 1인체제 중심의 카리스마 리더십은 어려운 시대를 거쳐야 했던 한국인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면서 국가안보를 공고히 하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내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을 성공하게 한 힘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얻은 것만큼 많은 것을 잃기도 했다. 원칙을 무시한 채 달리는 데만 전념한 결과, 어느 새 비대한 군살들이 늘어났고 먹고 살 만한 지금에 와서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민주적인 리더십보다는 강력한 권위를 가진 독재적 리더십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발전된 모델을 수용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화려한 ‘고도 경제성장’이라는 신화는 이제 차츰 그 허와 실이 드러나고 있다. 급성장이 불러온 부작용은 IMF라는 큰 폭풍으로 휘몰아치며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다. 리더십의 올바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리더십 뿌리를 확인하고 분석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자신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단계를 넘어 미래 리더십의 패러다임을 명확하게 세울 수 있다.
4장 리더십이 앓고 있는 중병 10가지
제왕적 리더십 - 금잔에 담긴 독
인기리에 방영되는 사극들을 보면서 항상 느끼는 점이 있다. 분명 임금이 무능해서 발생한 일인데도 임금의 무능한 리더십은 책임을 지는 일이 없다. 오히려 임금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애꿎은 신하들만 천하의 죽일 놈이 되고 만다. 임금은 자신의 무능함을 덮어버리기 위해 신하들을 질책하거나 희생양을 만들어 낸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한국의 전통적 리더십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한국의 리더십은 오래도록 1인체제 중심의 절대적 리더십이었다. 정치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이나 ‘제왕적 후보’라는 단어가 난무하고 있고, 경제 분야에서도 ‘총수’로 지칭되는 1인 카리스마의 존재가 모든 결정을 좌우해 왔다. 어디 그뿐이랴, 종교계에서도 큰 교회 담임목사의 권력은 가히 절대적이어서 마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을 받는다. 학교에 가면 재단이사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자가 있다. 제3의 권력이라는 언론사 사주의 권위는 대통령이 두렵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권위에 대해 한편으론 거세게 욕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율배반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심한 거부감과 비판의 대상이 되면서도 한국 리더십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리더십의 원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카리스마가 약한 사람 - 조용하고, 편법이 없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 - 은 훌륭한 리더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대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고 추종자들을 벌벌 떨게 만들 수 있는 리더는 흠모의 대상이 되어 왔다.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도 간단하게 정당화될 수 있는 제왕적 리더의 특권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공고한 성역을 만들었고 여기에 비리와 부정이라는 주변 마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성역과 마을들이 얼마나 오래도록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든 독소들을 공급해 왔던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를 극복할 대안과 이상이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