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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피오리나

조지 앤더스 지음 | 해냄
피오리나는 여러 곳에서 승기를 잡고 있었지만, 위임장경쟁 마지막 열흘 동안 월터 휴렛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스프레드가 갑자기 벌어졌다. 그 이유는 HP 컴팩 합병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미국 전체를 들썩이게 만든 사업 스캔들 때문에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정부 조사관들과 내부 고발자들은 엔론, 글로벌 크로싱, 아서앤더슨 등의 기업에 대한 경악할 이야기를 토해냈다.

월터 휴렛과 합병반대 운동 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물론 HP를 엔론이나 앤더슨과 같은 부류로 언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대주주 몇몇은 필요할 경우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리고 대규모 주 연금기금들이 하나둘씩 휴렛 측에 붙기 시작했다. 주 연금기금이 한꺼번에 합병반대 의사를 밝히자, 휴렛 측은 여세 몰이에 필요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마침내 투표일 아침이 밝아오자, 아침 6시부터 사람들이 플린트 센터로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투표 시작은 8시로 정해져 있었지만, HP는 늦게 온 사람들이 주차한 뒤 자리에 앉을 때까지 회의를 잠시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그런 뒤, 8시 26분, 칼리 피오리나가 연단에 올라 개회를 선언했다. 그녀는 밝은 색 나무 연단에 혼자 서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지쳐 보였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눈꺼풀은 부어 있었다. 눈동자는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피오리나가 경쟁자를 소개하자, 강당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사람들은 월터 휴렛을 바라보았다. 기자들은 빌 휴렛의 장남에게 쏟아지는 강당이 떠나갈 듯한 환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강당 전체에 나지막이 울리는 불평 소리도 들렸다. 피오리나에게 쏟아지는 화난 군중들의 소리였다. 연설은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청중들은 그를 영웅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칼리 피오리나가 연단에 서서 분노한 군중들이 보내는 모든 모욕을 견뎌야 했다. 수십 명의 주주들이 복도에 놓인 커다란 마이크 옆에 줄지어 섰다. HP 최고경영자에게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거친 질문이 쏟아졌다. "합병이 성사되지 않을 때를 대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왜 HP는 컴팩에 과도한 금액을 지불하는가? 왜 그토록 많은 일자리를 없애려 하는가? 왜 HP 퇴직자 중 상당수가 합병반대 의사를 표하는가?"



질문을 받을 때마다 피오리나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전했다. 그녀는 되도록 정중히 답해 주었고, 그럴 수 없을 때는 싸늘히 응수했다. 회사의 전통과 유산이 중요하다는 견해에 대해선 진심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또한 강제해고는 최후의 보루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녀는 퇴직자들은 아니겠지만 HP 직원 대다수는 합병에 찬성한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투표가 마감되었다. 피오리나는 연단 뒤쪽에 마련된 플린트 센터 검표실로 향했다. 검표실로 들어가자 숫자를 집계하고 있는 앨런 밀러가 보였다. 마침내 앨런 밀러가 숫자 합산을 끝냈다. 크로지어도 끝냈다. 그들은 집계결과를 다시 검토해 보았다. 밀러는 침을 꿀꺽 삼키곤 피오리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승리했습니다!, 최소한 2천 5백만 주 이상 표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칼리 피오리나는 연단으로 돌아가, HP 컴팩 합병이 '근소하지만 충분한' 표차로 통과되었다고 세상에 알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온화했다. 눈은 더 이상 불안스레 움직이지 않았다. 기자들이 질문을 던질 때에도, 그녀는 약간의 농담까지 덧붙여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변화를 포용해 준 주주들과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칼리 피오리나의 사업 인생은 천천히 다가왔다. 그녀는 스탠퍼드에서 중세사를 전공한 후, 매릴랜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AT&T에 관리부 수습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번째 임무는 원주민 부족들에게 장거리전화 서비스 및 전화장비를 파는 일이었다. 이후에도 힘들고 재미없는 일들이 주어졌지만 그녀는 해내겠다는 일념으로 피나는 노력을 했고 1990년대 초반, 피오리나는 AT&T의 부사장이 되었다.

피오리나가 1995년 9월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그녀의 이름을 업계에 알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바로 루슨트테크놀러지를 상장회사로 만든 것이다. 루슨트는 AT&T로부터 분사 독립한 직원 12만 명의 전화장비 업체였다. 피오리나와 샤크트, 맥긴 세 사람은 1996년 3월, 27억 달러의 투자자금을 모으기 위해 순회 설명회를 시작했다.



피오리나는 무대 위에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투자가들은 그녀가 루슨트를 상장회사로 만든 날 입었던 빨간색 원피스, 미소와 몸짓 그리고 매혹적인 미래 속으로 타인을 끌어들이는 독특한 대화방식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루슨트의 투자설명회는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30억 달러라는 거금을 모았고 루슨트는 상장되자마자 주가가 치솟았다. 상장 첫 해에 92퍼센트의 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피오리나는 통신업계 외의 분야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1998년 한 잡지의 기사는 상황을 돌변시켰다. 「포춘」기자 패트리샤 셀러즈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인 50명을 선정하기로 했다. 그가 루슨트를 선정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주가가 연일 치솟고 있었고 '신경제'의 화신인 데다 수석부사장 중 한 명이 팻 루소라는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셀러즈는 루소와 인터뷰 전에 루슨트의 언론담당인 캐시 피츠제럴드의 추천에 의해 칼리 피오리나를 먼저 인터뷰하게 되었다. 셀러즈는 그녀의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셀러즈는 피오리나가 50명의 목록에 반드시 올라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걱정은 루슨트의 두 여성 중 누구를 더 부각시키느냐 하는 것이었다.



전문가의 의견이 필요했던 「포춘」은 벨애틀랜틱의 로렌스 바비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루슨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머지 49명이 누가 될지는 몰라도, 칼리 피오리나가 표지에 나오지 않으면 벨애틀랜틱은 「포춘」의 정기구독을 취소하겠습니다. 당신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니까 말입니다!" 그것이 결정타였다. 1998년 10월 12일, 「포춘」은 80만 정기구독자에게 배달되었고,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경영인'은 칼리 피오리나였다. 자신만만하고 희망에 찬 그녀의 얼굴이 표지에 실렸던 것이다.



이후 7개월 동안 피오리나는 수십 명의 헤드헌터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제안을 모두 무시했다. 1999년 3월 제프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왔을 때도 피오리나는 상대하지 않았다. 그는 세 번 더 전화했으나 비서는 바꿔주지도 않았다. 그는 마침내 직원들이 퇴근했을 무렵 다섯 번째 시도로 HP에서 피오리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을 알릴 수 있었다.

며칠 뒤, 피오리나와 크리스천은 힐튼 호텔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첫 만남에서 크리스천은 피오리나의 경력에서 어떤 도전과 승리가 있었는지 물었고, 그녀의 경영철학을 듣고 싶어했다. 후에 크리스천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놀란 것은 그녀의 경력이었습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힘든 부서에 발령을 받았더군요. 그리고 거의 모든 곳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크리스천은 100명의 후보자를 선정했다. 그런 다음 10여 명을 집중적으로 탐색하고 최종적으로 4명을 선발한다는 계획이었다. 늦은 봄, HP는 최종명단을 발표했다. 실리콘밸리의 메이저 기업에서 온 최고 후보자들이었다. 오라클시스템스의 최고운영책임자인 레어 레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사장 에드 잰더, 인텔의 수석부사장인 폴 오텔리나, 그리고 유일한 비 실리콘밸리 출신인 칼리 피오리나였다.

가장 흥미를 끄는 후보자는 잰더와 피오리나였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잰더는 수년 동안 휴렛팩커드의 시장을 잠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제 그 회사에 문을 두드리는 입장에 선 그는 HP의 결점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잰더 식의 처방은 너무 거칠어서 이사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를 선마이크로에서 데려오는 일은 무척 힘들 것이었다.



"네게 기회를 주십시오! 잘 해낼 수 있습니다!" 피오리나는 샘 진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그렇게 말했다. 샘 진은 그녀의 열정이 좋았다. 그녀는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고 해그버그 인성 테스트의 900개 문항에 답했다(반면 잰더는 거절했다). 테스트 결과는 놀라웠다. 피오리나는 전략적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활력을 창조하고 지도력이 있었다. 성격 면에서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마침내 피오리나는 HP의 차기 최고경영자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7월 19일 HP는 피오리나의 취임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기자회견이 시작되는 순간까지도 피오리나 시대가 영 시대나 플랫 시대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기자들의 질문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뽑힌 소감이 어떻습니까?" "오프라 쇼에 출연하실 겁니까?" "60분 쇼에 출연할 수 있습니까?" 휴렛팩커드는 난데없이 스타 CEO를 갖게 된 것이었다.처음에는 TV 화면에 작은 차고의 검은 윤곽만이 보인다. 다음 순간 맑은 음악이 들리고, 차고의 붉은 지붕이 환하게 밝아온다. 그때 한 여성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곳은 진보주의자들의 일터입니다. 바로 이 차고에서 두 젊은이가 500달러의 자본금으 로 한 산업을 창조했습니다."칼리 피오리나의 목소리였다.



화면은 곧이어 시청자들을 1930년대로 안내한다. 상태가 좋지 않은 흑백 필름에, HP가 탄 생한 차고에서 일을 하는 데이브 팩커드와 빌 휴렛의 모습이 보인다. 팩커드는 회사의 첫 제품인 오디오 발진기를 들고 있다.



차고의 문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비춰지다가 갑자기 피오리나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 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빌 휴렛과 데이브 팩커드의 회사가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첫걸음을 내딛는 우리를 지켜보십시오!" 검은색 정장을 입은 피오리나가 자신 감 넘치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장면으로 광고는 끝난다.2001년의 가을은 칼리 피오리나에게 멈추지 않는 모험의 시기였다. 그녀는 2년 여 동안 휴렛팩커드를 위한 참신한 전략을 정성 들여 만드는 데 매달렸고,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회사를 지탱해 줄 최선의 희망으로 컴팩과의 합병을 결정했다. 그러나 일단 합병계획을 공식화하자 모든 집단에서 비관론과 불신이 팽배해졌다. 피오리나는 합병을 발표하자마자 여러 곳을 방문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도록 설득해야만 했다.



월터 휴렛의 합병에 대한 반대 입장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자, 피오리나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이론적 무장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했다. 피오리나는 위임장 경쟁을 위해 몇 달 동안 연단에 서며 "이 모든 것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 현상을 유지하는 정도로는 회사를 지탱해 갈 수 없습니다. 용기와 결단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피오리나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그녀는 하나같이 힘겨운 일들을 앞에 두고 있었고, 그 중 어느 한 곳에서라도 삐끗한다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피오리나는 다수의 주주가 그녀를 지지하게 해야 했을 뿐 아니라, HP 경영진의 고위임원들이 자신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또한 그녀는 고객들을 이해시켜야 했고, 휴렛팩커드의 핵심사업을 지켜야 했으며, 직원들의 신뢰를 되찾아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피오리나는 휴렛팩커드의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사들은 이미 피오리나의 지지자들이 되었다. 여름 내내 계속된 비공개회의에서도 피오리나는 컴팩과의 합병을 승인하도록 이사들에게 압력을 넣지 않았다. 오히려 딕 핵본과 몇몇 다른 이사들이 앞장섰다. 월터 휴렛을 제외한 모든 비상임 이사들도 칼리 피오리나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들은 피오리나에게 회사의 운명을 맡겼다.

2001년 12월 팩커드 재단이 합병에 반대하자 피오리나는 지체 없이 이사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주말에 경영간부회의를 열었다. 의견은 일치했고 확고부동했다. 그들은 "밀어붙입시다!"라고 대답했다. 딕 핵본이 가장 단호했다. 그는 이렇게 강변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뭡니까? 이것이 컴퓨터 사업 부문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지요."



컴팩은 HP의 상황변화를 모르고 있었다. 팩커드 재단의 합병반대 발표 직후 카펠라스와 퍼킨스는 보이시에 있는 딕 핵본의 집을 찾았고, 피오리나와 양쪽 회사의 이사 한 명씩이 그곳에 합류했다. 카펠라스는 이렇게 회고했다. "매우 우호적이고 솔직한 모임이었지요, 우리는 '위임장 경쟁을 합시다. 어떻게 해야 이길까요?'라고 물었지요."



결국 그 거래의 운명은 휴렛팩커드 주주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실제 투표는 2002년 3월 19일에 있지만, 대략적인 추산을 통해 투자자들의 생각은 언제든지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 투자자들이 합병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면 HP와 컴팩의 주가는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양 사는 미리 정해진 비율에 따라 컴팩 주주들에게 HP 주식을 줄 것이라고 사전에 공약했기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스프레드(Spread)'라고 하는데, 이는 컴팩의 주가가 합병조건에서 정해진 가격에 비해 얼마까지 할인되고 있는지를 측정한 수치였다. 아주 안정적인 상황에서의 스프레드는 2-3% 정도 될 것이었고, 합병 가능성이 불확실하고 오랫동안 지연되면 스프레드는 10% 이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12월 14일 HP 컴팩 합병의 스프레드는 28.6%였다.



이와 같이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한 사람이 낙관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그는 앨러 밀러로 회사가 최근에 영입한 위임장경쟁 담당변호사였다. 밀러는 "이길 승산이 아주 높습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HP 주주들을 분석한 자료를 설명해 주었다. 뮤추얼펀드의 신탁회사, 여타 기관이 회사 주식의 1/2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 투자자들은 분석적이고 편견이 없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주식가격의 상승뿐이며, 합병을 반대하는 기관투자가들은 합병 발표 이후 모두 팔고 나갔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기관투자가들은 대부분 경영자 편을 지지해주는 주주들이다.



게다가 밀러는 자문회사를 적극 공략하도록 권유하였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주주투표시 대주주들은 이름이 알려진 자문회사에 조언을 구하게 된다. 인스티튜셔널쉐어홀더서비스(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 ISS)와 같은 자문회사의 추천을 얻게 되면 23%의 주식을 찬성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어느 쪽이 우세했을까? 사람들은 선거운동 막바지에 나오는 갤럽 조사처럼 들쭉날쭉하게 변하는 스프레드를 긴장하며 지켜보았다. 2월 초 피오리나는 스프레드를 9.5%까지 낮추었다. 한 달 후 월터 휴렛은 그것을 다시 20.3%까지 벌려놓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ISS 자문회사가 합병추진권고를 발표한 것이었다. ISS가 휴렛의 편에 서면, 반대투표가 압도적으로 나와 합병이 무산될 것이라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다. ISS가 합병을 지지하더라도 휴렛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피오리나에겐 ISS의 찬성으로 그만큼의 승산이 늘어난 것이었다. 주주투표는 이제 14일 밖에 남지 않았다.약 3년 동안의 치열한 전투 끝에, 피오리나는 마침내 HP를 가장 효율적인 회사로 탈바꿈시킬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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