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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기업의 리더들

동아일보 경제부 지음 | 김영사
최근 공학 지식과 경영 능력을 겸비한 엔지니어 출신의 '테크노 최고경영자'가 공채 출신 비서실 인맥이 주류인 삼성 경영진의 또 다른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 CEO는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등 10여 개의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을 확보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주력 업종인 전자 관련 계열사에 걸출한 스타 경영인이 많다.



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사장, 진대제 사장은 공대 출신의 삼성 CEO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영 전체를 총괄하는 윤 부회장은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TV, VCR 등 전자 사업의 현장을 지켰다. 그는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도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의 좌장을 맡는 기록을 세웠다.



이들 외에도 4명의 엔지니어 출신 실력파 사장이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이기태 사장은 삼성 휴대전화를 세계 3위로 끌어올린 '애니콜 신화'의 주역이다. 임형규, 이상완, 황창규 사장도 반도체총괄 대표인 이윤우 사장을 보좌하면서 각 부문을 챙기고 있다.



임형규 사장은 비메모리 분야의 저부가가치 제품을 퇴출시키고 핵심기술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이상완 사장은 액정표시장치(LCD) 부문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황창규 사장은 1994년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을 비롯해 10여 건의 해외특허를 갖고 있다.삼성의 금융·건설 등 전문가 그룹삼성의 '인재사관학교' 비서실 인맥'모든 것을 다 바꾼다' 40대 CEO들의 기염LG그룹 - '인화'에서 '1등 LG'로의 도약LG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인화(人和)'이다. 창업부터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이 함께 해온 이래 3대를 이어오면서 큰 불협화음 없이 지내오고 있다. '한국 사람끼리 동업은 참으로 어렵다'는 게 정설인데 LG 창업주 가문의 사례는 재계에서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그러던 LG에 최근 새로운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다름 아닌 '1등주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요즘 모임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1등 경영'이란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10분 남짓한 짤막한 올해 신년사에서는 '1등'이라는 단어를 무려 13번이나 사용했다.



이에 따라 계열사 최고경영진의 배치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나타나고 있다. 성과를 바탕으로 '1등 LG'를 달성할 수 있는 경영진을 중용하는 인사원칙이 뚜렷해진 것이다. 구 회장은 2002년 최고경영자 신년모임에서 "발상과 태도를 송두리째 바꿔 경쟁자보다 훨씬 도전적인 목표와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방식으로 승부하자"라고 주문했다.



이 기준에서 가장 성공한 경영자로는 이헌출 LG카드 사장, 최영재 LG홈쇼핑 사장, 노용악 LG전자 중국지주회사 부회장이 꼽힌다. 이헌출 사장의 취임 당시만 해도 LG카드는 관련업계 5위에 불과했다. 1998년 사장으로 승진한 이헌출 사장은 2년만인 2000년에 LG카드를 업계 1위에 올렸다. 최영재 사장은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인 LG홈쇼핑이 중소기업인 39쇼핑에 밀려 그룹 전체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던 1997년 말에 취임했다. 이후 LG홈쇼핑은 연평균 90% 이상 성장을 거듭, 확고한 1위로 자리잡았다. 그룹의 명예를 회복하라는 특명에 보답한 셈이다.



LG그룹에서 해당업계 1위 자리를 지켜온 분야는 가업이나 다름없는 치약, 바닥재 등 생활용품과 화학품목. 그리고 냉장고 등 '백색가전'이다. 이 부문에는 LG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에까지 오른 노련한 CEO들이 포진해 있다. 노기호 LG화학 사장은 1973년 입사 이후 사업 기획, 구매, 신사업 부문 등 주로 관리 분야에서 경영 경험을 쌓아왔다. 노 사장은 요즘 1등에 만족하지 않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김쌍수 LG전자 디지털어플라이언스 사장은 LG의 가전제품을 국내는 물론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가전업계의 '신지식인 1호'의 전문경영인이다. 조명재 LG생활건강 사장은 생활용품 영업통이다. 주력제품은 세제, 화장품, 비누 등이며 국내외 강력한 경쟁업체들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적자를 내던 사업부문을 모두 흑자로 전환시킨 기록을 가지고 있다.삼성그룹 - 세계 초일류 기업을 꿈꾼다삼성은 현재 한국의 최대, 최고의 그룹이다. 최대 기업이란 매출액이나 자산 규모, 종업원 수, 이익 등 규모 면에서 가장 큰 기업을 뜻한다. 삼성에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를 수 있는 것은 한국 기업들의 좌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경영 현안과 조직 변화, 미래의 전망 등은 삼성을 보면 어는 정도 가늠할 수 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신경영'을 통해 '수줍은 후계자'에서 기업의 전면으로 나선 이 회장은 최근 들어 다시 사장단 회의에서 "5∼10년 뒤 먹고 살 것을 준비해야 한다.", "핵심인력이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 등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재의 산실'이었다.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이건희 회장에 이어 앞으로 삼성의 3세 후계 체제를 이어갈 주역이라는 것은 재계의 상식. 이 상무가 언제 어떤 형식으로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고, 새 체제를 떠받칠 차세대 주자로 어떤 인물이 부각될지는 삼성의 미래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이다.



전문경영인을 중시하는 삼성의 기업문화를 감안할 때 전문성과 국제감각을 인정받고 있는 40대 임원들이 앞으로 다가올 '이재용 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나이 차이가 상대적으로 덜 나는 연배끼리 호흡을 맞추다 보면 차세대 주자들이 자연스럽게 부각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세대교체가 본격화될 경우, 2002년 기준으로 만 50세가 된 진대제, 황영기 사장과 40대 최고경영자인 삼성전자의 임형규, 황창규 사장이 주목받고 있다. 또 40대 부사장급도 삼성전자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리더로 꼽힌다. 삼성은 1993년 신경영의 화두로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가족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꾸자'는 주장을 실천하고 있다. 삼성의 미래를 짊어질 주역은 혁신적인 사고방식과 '필요하면 모든 것을 다 바꾼다'는 의지를 지닌 변화지향형 인물이어야 한다는 게 삼성그룹 수뇌부의 생각이다.2주에 한 번씩 삼성에서는 5인 구조조정위원회가 열린다. 윤종용 부회장,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배종렬 삼성물산 사장,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 허태학 신라호텔 사장이 위원회 멤버다. 이들은 신규사업 진출, 외국업체와의 합작, 대규모 투자 등 그룹의 굵직한 현안에 대해 긴밀하게 의견을 조율하며, 논의 결과를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해 재가를 받는다. 이 5인 구조조정위원회 멤버 중 비서실 출신은 배종렬 사장과 비서실의 후신인 구조조정본부의 이학수 본부장이 있다. 이밖에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유석렬 삼성생명 사장, 김순택 삼성SDI 사장 등이 '비서실 인맥'이며, 그 외에 삼성의 '인재사관학교' 비서실 인맥들은 각 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삼성의 40대와 50대 핵심 경영진 가운데는 직장생활을 제일모직에서 시작한 사람이 많다. 제일모직을 거쳐 비서실로 발탁되는 것은 삼성의 전형적인 승진 코스이다. 이학수 본부장을 비롯해 이상현 삼성전자 사장, 송용로 삼성코닝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배병관 삼성테크윈 사장, 유석렬 삼성생명 사장 등이 이런 코스를 밟았다. 이밖에 비서실 근무 경험을 살려 빼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하고 있는 CEO로는 이우희 에스원 사장, 배동만 제일기획 사장, 양인모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정준명 일본 본사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삼성의 엔지니어 인맥삼성 고위관계자는 "올해 사장단 인사에서 금융 계열사 사장이 전원 유임된 것은 실적에 대한 평가라는 측면과 함께 재무통의 입지 강화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재무통으로는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 삼성생명 유석렬 사장, 삼성카드 이경우 사장, 삼성투신운용 배호원 사장, 삼성캐피탈 제진훈 사장, 삼성벤처투자 이재환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룹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통도 비서실·재무 인맥 못지 않게 중용되고 있다. 삼성생명 배정충 사장과 삼성화재 이수창 사장은 금융 부문에서 '현장파 인맥'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영업에 강한 CEO는 비금융 분야에서도 우대받고 있다. 삼성석유화학 최성래 사장은 수출 현장을 누빈 무역 전문가이다. 물산건설 등의 해외 파트에서 일했던 삼성엔지니어링 양인모 사장은 상암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 수주 경쟁에서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누르고 공사를 따냈다.국내 최대의 통신업체인 KT는 32조 원의 자산 규모로만 보면 국내 6위의 대기업. 2002년 5월 말로 정부가 보유한 KT 지분 28.34% 전량이 국내 기업에 팔림에 따라 2002년 8월부터는 완전한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KT의 민영화 움직임에 가장 긴장하는 것은 경쟁사들이다. 전화와 초고속 인터넷 등 '통신공룡' KT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커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KT는 민영화를 위한 주주총회를 열고 CEO로 이용경 KTF사장을 임명했다. 경영능력, 글로벌 감각, 통신업계 경험 등을 감안한 선임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1991년 당시 한국통신 연구개발단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한 지 11년 2개월 여 만에 이 사장은 최고경영자 반열에 올랐다. 이용경 사장은 통신업계에서는 손꼽히는 통신 전문가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대를 거쳐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잠시 조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 엑슨, AT&T 벨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한 뒤 한국통신에 입사했다. 2000년 초에는 공석이던 KTF 사장에 공모과정에서 수많은 후보자를 제치고 KTF사장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KT에는 그 이외에도 전문경영인들이 두루 포진해 있다. 정태원 부사장은 일선전화국에서 출발해 총무실, 전북본부장, 조달본부장, 인력관리실장을 두루 거친 정통 KT맨. 임원들 가운데 최연장자로서 KT내부 사정에 누구보다 밝아 변혁기의 KT 부사장으로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영한 인력관리실장은 행정고시 출신의 정보통신부 관료 출신. 대정부 업무에 밝을 뿐 아니라 응용통계학을 전공해 마케팅이나 기획·홍보 등 실무에서도 두루 실력을 발휘해왔다. 마케팅본부장 시절에는 사양길에 접어든 ISDN 사업을 과감히 버리고, ADSL 사업으로의 전환을 주도해 초고속 네트워크 사업자로서의 KT의 변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남중수 재무실장은 서울대, 미국 듀크대 등을 거쳤으며 판세를 파악하는 능력과 조정 능력이 뛰어나 KT 내의 전략통으로 꼽힌다. 2001년에는 IMT-2000 사업추진본부장을 맡아 LG를 제치고 비동기식 사업권을 따내는 데 기여했다. 그 후 바로 재무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해외주식예탁증서(DR) 발행, 정부 보유주식 국내 매각 등 민영화 관련 업무를 성공적으로 추진해왔다.'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통신업계의 후발주자인 하나로통신, 두루넷, 온세통신 등은 스스로를 다윗에 비유한다. 물론 골리앗은 KT이다. KT가 전국에 2,300만 명의 전화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데다 '마지막 1마일'이라고 표현되는 전화국에서 소비자까지 연결되는 '가입자망'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후발 통신업체들의 이같은 불만은 사실 과장된 것은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들 업체들이 선전하는 것은 통신업계를 잘 이해하고 경영자적 자질을 닦아온 최고경영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빠른 의사결정', '감각적인 판단력' 등을 바탕으로 민영화되는 KT에 맞설 새로운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



<보스 기질 돋보이는 하나로통신 신윤식 사장>

하나로통신의 신윤식 사장은 사내에서 '보스 기질'의 대명사로 통한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놓아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거나 능력 있는 부하직원을 전적으로 믿는 데서 나온 평가다. 하나로통신은 1997년 오너 없이 국민 자본으로 세워진 제2의 민간 시내전화 사업자로 출발했다.



신 사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시내전화 사업으로는 도저히 통신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려 오늘의 하나로통신을 만들어냈다. 인터넷 시대에 각광받을 사업을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으로 보고 1999년 이를 처음 도입했으며, 한국을 세계 최강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보유국으로 이끌었다.



<'발 넓은 해외통' 두루넷 이홍선 부회장>

이홍선 부회장은 미국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워크스테이션업체인 RDI에서 잠시 근무하다가 1991년 삼보컴퓨터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두루넷에 합류한 것은 2001년 초이다. 그는 정보통신 분야 전문경영인으로 누구 못지 않는 실력을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특히 해외 정보통신업계의 동향에 민감하고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제리 양 야후 창업자, 손정의 일본 소프트방크 사장 등 해외 경영인과의 친분도 두텁다. 그는 이같은 인맥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인력 재배치 성공한 온세통신 황기연 사장>

온세통신은 1996년 7월 설립되어 국제전화, 시외전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통신회사이다. 처음에는 한전과 함께 롯데, 고합, 한라, 일진, 아세아시멘트, 대륭, 해태, 동아그룹 등이 만든 컨소시엄으로 출범했으나 이후 현대그룹이 최대 주주가 되었고 현재는 하이닉스가 28.3%, 일진이 11.9%, 롯데가 8.5% 등을 갖고 있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만년적자에 허덕였던 온세통신은 황 사장 취임 이후 1년이 채 못 된 2001년에 142억 원의 흑자를 달성했다. 그가 사장 취임 후 손을 댄 것은 조직의 슬림화. 인력을 줄이기보다는 이리저리 벌여 놓은 사업과 방대한 조직을 줄임으로써 인력 등 자원을 재배치했다. 또 직원 개개인이 달성해야 할 목표를 설정해주는 목표 관리제를 도입해 효율성을 이끌어냈다.



<'열린 경영' 추구하는 파워콤 서사현 사장>

서사현 파워콤 사장은 2001년 1월 설립된 신생회사를 무난히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파워콤은 한국전력의 전력통신망이 분리되면서 생긴 회사로, 한전에 속해 있을 당시에는 1469억 원의 매출만 올리던 사업부였으나 독립 후 1년 반만에 그 3배인 3864억 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당기순이익은 사업부 시절의 7배인 259억 원을 기록했다.



파워콤이 이처럼 단기간에 '괜찮은' 회사로 자리잡은 배경에는 통신망이라는 자산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무엇보다 서사현 사장의 공이 크다는 지배적이다. 그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상공부의 주요 보직을 거친 관료 출신 답지 않게 '열린 경영'을 펴고 있다. 매주 목요일 평사원 50여 명과 '도시락 미팅'을 하면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며 이때 나온 아이디어는 경영에 즉각 반영한다. 결재 라인을 팀원 - 팀장 - 사장으로 간소화하기도 했다.



파워콤은 곧 새 주인을 찾게 된다. 총 12만 9천km에 이르는 광케이블, 광동축케이블 등의 통신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데이콤, 하나로통신, 두루넷 등 많은 통신업체들이 공개입찰을 통해 경영권을 가지기 위한 입찰전에 나섰다.한진그룹은 50대가 사장의 주축을 이루는 국내의 다른 주요 기업과 달리 아직 60대 CEO가 대부분이다. 한국IBM에서 30년 간 근무하다 한진정보통신을 맡은 고원용 사장이 57세, 대우증권 현지법인에서 오래 근무한 김기범 사장이 46세로 소장층을 이루고 있다.



한진그룹 건문경영인들의 평균 연령이 높은 이유는 경험과 안정이 중요한 운수물류업의 특성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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