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기업의 리더들
동아일보 경제부 지음 | 김영사
삼성그룹 - 세계 초일류 기업을 꿈꾼다삼성은 현재 한국의 최대, 최고의 그룹이다. 최대 기업이란 매출액이나 자산 규모, 종업원 수, 이익 등 규모 면에서 가장 큰 기업을 뜻한다. 삼성에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를 수 있는 것은 한국 기업들의 좌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경영 현안과 조직 변화, 미래의 전망 등은 삼성을 보면 어는 정도 가늠할 수 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신경영'을 통해 '수줍은 후계자'에서 기업의 전면으로 나선 이 회장은 최근 들어 다시 사장단 회의에서 "5∼10년 뒤 먹고 살 것을 준비해야 한다.", "핵심인력이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 등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인재의 산실'이었다.
삼성의 '인재사관학교' 비서실 인맥2주에 한 번씩 삼성에서는 5인 구조조정위원회가 열린다. 윤종용 부회장,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배종렬 삼성물산 사장, 배정충 삼성생명 사장, 허태학 신라호텔 사장이 위원회 멤버다. 이들은 신규사업 진출, 외국업체와의 합작, 대규모 투자 등 그룹의 굵직한 현안에 대해 긴밀하게 의견을 조율하며, 논의 결과를 이건희 회장에게 보고해 재가를 받는다. 이 5인 구조조정위원회 멤버 중 비서실 출신은 배종렬 사장과 비서실의 후신인 구조조정본부의 이학수 본부장이 있다. 이밖에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유석렬 삼성생명 사장, 김순택 삼성SDI 사장 등이 '비서실 인맥'이며, 그 외에 삼성의 '인재사관학교' 비서실 인맥들은 각 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삼성의 40대와 50대 핵심 경영진 가운데는 직장생활을 제일모직에서 시작한 사람이 많다. 제일모직을 거쳐 비서실로 발탁되는 것은 삼성의 전형적인 승진 코스이다. 이학수 본부장을 비롯해 이상현 삼성전자 사장, 송용로 삼성코닝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배병관 삼성테크윈 사장, 유석렬 삼성생명 사장 등이 이런 코스를 밟았다. 이밖에 비서실 근무 경험을 살려 빼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하고 있는 CEO로는 이우희 에스원 사장, 배동만 제일기획 사장, 양인모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정준명 일본 본사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삼성의 엔지니어 인맥최근 공학 지식과 경영 능력을 겸비한 엔지니어 출신의 '테크노 최고경영자'가 공채 출신 비서실 인맥이 주류인 삼성 경영진의 또 다른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 CEO는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등 10여 개의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을 확보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주력 업종인 전자 관련 계열사에 걸출한 스타 경영인이 많다.
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사장, 진대제 사장은 공대 출신의 삼성 CEO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영 전체를 총괄하는 윤 부회장은 이병철 창업주 때부터 TV, VCR 등 전자 사업의 현장을 지켰다. 그는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도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의 좌장을 맡는 기록을 세웠다.
이들 외에도 4명의 엔지니어 출신 실력파 사장이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있다. 이기태 사장은 삼성 휴대전화를 세계 3위로 끌어올린 '애니콜 신화'의 주역이다. 임형규, 이상완, 황창규 사장도 반도체총괄 대표인 이윤우 사장을 보좌하면서 각 부문을 챙기고 있다.
임형규 사장은 비메모리 분야의 저부가가치 제품을 퇴출시키고 핵심기술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이상완 사장은 액정표시장치(LCD) 부문을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황창규 사장은 1994년 세계 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에 성공한 것을 비롯해 10여 건의 해외특허를 갖고 있다.
삼성의 금융·건설 등 전문가 그룹삼성 고위관계자는 "올해 사장단 인사에서 금융 계열사 사장이 전원 유임된 것은 실적에 대한 평가라는 측면과 함께 재무통의 입지 강화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재무통으로는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 삼성생명 유석렬 사장, 삼성카드 이경우 사장, 삼성투신운용 배호원 사장, 삼성캐피탈 제진훈 사장, 삼성벤처투자 이재환 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룹 비서실을 거치지 않고 야전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통도 비서실·재무 인맥 못지 않게 중용되고 있다. 삼성생명 배정충 사장과 삼성화재 이수창 사장은 금융 부문에서 '현장파 인맥'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영업에 강한 CEO는 비금융 분야에서도 우대받고 있다. 삼성석유화학 최성래 사장은 수출 현장을 누빈 무역 전문가이다. 물산건설 등의 해외 파트에서 일했던 삼성엔지니어링 양인모 사장은 상암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 수주 경쟁에서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누르고 공사를 따냈다.
학벌보다 실력으로 승부삼성계열사 사장단 45명 가운데 '가장 잘 나가는 최고경영자'는 누구일까 그룹 내부에서는 신라호텔 허태학 사장을 꼽는 사람이 많다. 삼성에버랜드 대표이사였던 허 사장은 2002년 2월 신라호텔 대표로도 선임되어 두 회사의 CEO를 겸했다.
한 기업을 챙기기도 힘든 터에 두 '알짜 계열사'의 경영을 선뜻 맡겼던 것은 그만큼 허 사장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는 뜻이다. 허 사장은 업무와 상관없어 보이는 실업고와 지방대를 졸업했지만 서비스, 레저라는 한 우물을 판 끝에 이 부문의 간판 기업인이 되었다.
삼성에는 이처럼 전공과 무관한 분야에서 오직 실력으로 승부해 진가를 인정받은 기업인이 많다. 삼성화재 이수창 사장의 대학 전공은 수의학. 제일기획 배동만 사장과 제일모직 원대연 사장은 각각 축산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정보기술통으로 꼽히는 삼성SDS 김홍기 사장은 상대 출신이며, 삼성중공업 김징완 사장은 사학과를 졸업했다.
삼성전기 태국법인장인 삼성전기 최종윤 상무의 최종 학력은 동아공고 졸업. 하지만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통솔력을 갖춰 외국 유명대학의 석·박사 학위를 보유한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생산직 사원으로 입사해 생산과장과 부장을 거친 그는 1992년부터 태국공장에서 근무하면서 공장설비의 효율성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임원으로 승진했다.
'모든 것을 다 바꾼다' 40대 CEO들의 기염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이건희 회장에 이어 앞으로 삼성의 3세 후계 체제를 이어갈 주역이라는 것은 재계의 상식. 이 상무가 언제 어떤 형식으로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고, 새 체제를 떠받칠 차세대 주자로 어떤 인물이 부각될지는 삼성의 미래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사안이다.
전문경영인을 중시하는 삼성의 기업문화를 감안할 때 전문성과 국제감각을 인정받고 있는 40대 임원들이 앞으로 다가올 '이재용 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나이 차이가 상대적으로 덜 나는 연배끼리 호흡을 맞추다 보면 차세대 주자들이 자연스럽게 부각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세대교체가 본격화될 경우, 2002년 기준으로 만 50세가 된 진대제, 황영기 사장과 40대 최고경영자인 삼성전자의 임형규, 황창규 사장이 주목받고 있다. 또 40대 부사장급도 삼성전자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리더로 꼽힌다. 삼성은 1993년 신경영의 화두로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가족만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꾸자'는 주장을 실천하고 있다. 삼성의 미래를 짊어질 주역은 혁신적인 사고방식과 '필요하면 모든 것을 다 바꾼다'는 의지를 지닌 변화지향형 인물이어야 한다는 게 삼성그룹 수뇌부의 생각이다.
LG그룹 - '인화'에서 '1등 LG'로의 도약LG그룹의 시작은 1947년 구인회 창업주가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우면서부터다. 외제 화장품이 판치던 시절 국산품으로 처음 선보인 '럭키크림'이 LG의 첫 제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국민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을 만든다'는 구인회 창업회장의 기업정신으로 LG는 국민생활과 밀접한 제품들을 만들어 한국인의 생활습관을 바꾸어 놓았다.
그룹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1958년 10월, 한국 최초의 전자공업회사인 금성사(현재 LG전자)를 설립한 것이다. 이듬해인 1959년에는 국산 라디오를 만들어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LG의 제품들은 이제 칫솔에서 휴대전화까지 이미 한국인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인화'의 LG에서 '1등 LG'로LG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인화(人和)'이다. 창업부터 구씨 가문과 허씨 가문이 함께 해온 이래 3대를 이어오면서 큰 불협화음 없이 지내오고 있다. '한국 사람끼리 동업은 참으로 어렵다'는 게 정설인데 LG 창업주 가문의 사례는 재계에서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그러던 LG에 최근 새로운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다름 아닌 '1등주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요즘 모임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1등 경영'이란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10분 남짓한 짤막한 올해 신년사에서는 '1등'이라는 단어를 무려 13번이나 사용했다.
이에 따라 계열사 최고경영진의 배치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나타나고 있다. 성과를 바탕으로 '1등 LG'를 달성할 수 있는 경영진을 중용하는 인사원칙이 뚜렷해진 것이다. 구 회장은 2002년 최고경영자 신년모임에서 "발상과 태도를 송두리째 바꿔 경쟁자보다 훨씬 도전적인 목표와 남들이 생각지 못하는 방식으로 승부하자"라고 주문했다.
이 기준에서 가장 성공한 경영자로는 이헌출 LG카드 사장, 최영재 LG홈쇼핑 사장, 노용악 LG전자 중국지주회사 부회장이 꼽힌다. 이헌출 사장의 취임 당시만 해도 LG카드는 관련업계 5위에 불과했다. 1998년 사장으로 승진한 이헌출 사장은 2년만인 2000년에 LG카드를 업계 1위에 올렸다. 최영재 사장은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인 LG홈쇼핑이 중소기업인 39쇼핑에 밀려 그룹 전체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던 1997년 말에 취임했다. 이후 LG홈쇼핑은 연평균 90% 이상 성장을 거듭, 확고한 1위로 자리잡았다. 그룹의 명예를 회복하라는 특명에 보답한 셈이다.
LG그룹에서 해당업계 1위 자리를 지켜온 분야는 가업이나 다름없는 치약, 바닥재 등 생활용품과 화학품목. 그리고 냉장고 등 '백색가전'이다. 이 부문에는 LG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에까지 오른 노련한 CEO들이 포진해 있다. 노기호 LG화학 사장은 1973년 입사 이후 사업 기획, 구매, 신사업 부문 등 주로 관리 분야에서 경영 경험을 쌓아왔다. 노 사장은 요즘 1등에 만족하지 않고 수익성 위주의 사업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김쌍수 LG전자 디지털어플라이언스 사장은 LG의 가전제품을 국내는 물론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가전업계의 '신지식인 1호'의 전문경영인이다. 조명재 LG생활건강 사장은 생활용품 영업통이다. 주력제품은 세제, 화장품, 비누 등이며 국내외 강력한 경쟁업체들이 존재하는 시장에서 적자를 내던 사업부문을 모두 흑자로 전환시킨 기록을 가지고 있다.
LG그룹 CEO 배출창구의 두 축 전자와 화학LG그룹의 두 축은 LG화학과 LG전자다. 화학을 모태로 출발해 전자로 그룹의 형태를 갖췄기 때문에 이 두 회사는 LG의 인재를 배출하는 '사관학교' 역할을 맡아왔다. 화학과 전자 출신의 여러 경영인들은 두 주력기업은 물론 그룹 내 다른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
구본무 회장을 보좌해 화학 분야의 큰 그림을 그리는 성재갑 LGCI 부회장과 '1948년생 서울대 상대 3총사'로 불리는 강유식 구조조정본부장, 이헌출 LG카드 사장, 남용 LG텔레콤 사장 등이 모두 화학이나 전자 출신이다. 또한 정병철 LG전자총괄 사장은 화학에서 출발한 '재무통'으로 지금은 LG전자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대표적 장치산업인 화학은 생산이 핵심부문인 만큼 CEO 재목들에게 현장에서 철저히 '기본기'를 가르친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공장장을 거치지 않으면 사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을 정도이다. 화학 부문의 '좌장'인 성재갑 부회장은 물론 노기호 LG화학 사장, 조명재 LG생활건강 사장, 정두호 LG실트론 사장, 김반석 LG석유화학사장 등 상당수 CEO가 생산현장에서 경영감각을 키웠다.
LG전자는 세계 각지에 75개의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기업답게 국제적 감각을 CEO가 갖춰야 할 최고 덕목으로 삼고 있다. 상당수의 전자 출신 CEO는 해외법인에서 국제감각을 얻은 뒤 본사에서 관리능력을 익혀 CEO 자리에 올랐다.
이덕주 미국법인장은 입사 후 18년간을 해외에서 보낸 국제통이다. 허영호 LG이토텍 사장은 "1981년부터 5년 동안 일본에서 일했던 시기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LG전자 디스플레이 미디어사업본부장인 우남균 부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이면서도 수출 부서를 자원, 17년간 미국·프랑스 등지에서 근무한 국제파 경영인이다.
주목받는 이공계 출신 경영인들LG그룹의 뿌리는 제조업이다. 락희화학은 화장품으로, 금성사는 라디오 생산으로 출발했다. 지금도 여전히 제조업이 그룹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제조업의 승부는 기술의 차이에서 결정된다. 그룹의 눈부신 성장 과정도 다른 기업들보다 한 발 앞선 기술 개발이 바탕이었다. 그래서 구본무 회장은 다른 행사에는 얼굴만 비치거나 한두 번 참석하고 말지만, 연구개발(R&D) 관련 행사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 LG를 진정으로 먹여 살리고 있는 사람들이 기술개발 일꾼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LG는 다른 그룹에 비해 최고경영자 가운데 이공계 출신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구 회장을 포함한 45명의 사장급 이상 CEO 가운데 이공계 출신이 20명으로 절반에 가까운 44%를 차지하고 있다. 금융·유통 등 서비스 사업부문을 제외하면 사실상 주력산업의 CEO는 이공계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LG전자가 세계 시장을 누빌 수 있는 것도 결국에는 뛰어난 기술자들과 이들을 지휘할 수 있는 테크노 경영자들의 결정적인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가전 왕국'을 꿈꾸는 LG전자에는 첨단기술로 무장한 테크노 경영인들이 최전선에 포진해 있다. 백우현 기술담당 최고경영자(CTO)와 이희국 전자기술원장 부사장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뒤늦게 LG에 합류한 대표적인 '해외파' CEO들이다. 반면, 김종은 정보통신사업총괄 사장과 정광수 생산기술원장 부사장은 국내에서 테크노 경영인의 입지를 굳혀온 '토종파' CEO들이다.
여종기 LG화학 기술연구원장, 양흥준 LG생명과학 사장, 임성담 LG화학 기능수지사업본부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기술 노하우와 경영 능력을 함께 갖추고 '야전사령관'으로 뛰고 있는 CEO 가운데는 한양대 공대 인맥이 두드러진다. 최영재 LG홈쇼핑 사장, 김쌍수 LG전자 사장, 노기호 LG화학 사장, 조영환 LG마이크론 사장 등이 현장을 지키고 있는 한양대 공대 출신 최고경영자들이다.
SK그룹 - 역동성이 꿈틀거리는 청년기업SK그룹은 '청년기업'이다. 삼성이나 LG 등 다른 주요 그룹에 비해 매우 젊다는 이미지를 준다. 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현 SK글로벌)이 창립된 게 1953년인 걸 생각하면 49년의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졌지만 그룹으로서의 본격적인 틀을 갖춘 건 20여 년 전부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의 조그만 기업으로 출발했던 SK가 1980년, 1990년대에 잇달아 인수했던 거대 공기업 유공(현 SK주식회사)과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은 지금 그룹의 양대 축이 되어 있다. 사실상 SK의 역사는 유공과 한국이동통신 인수를 기점으로 시작되었기에 이제 20년을 갓 넘긴 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SK는 성숙기의 안정감보다는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역동성이 꿈틀거린다. 2002년 입사한 신입사원들에게 SK를 지원한 이유를 물은 결과 '성장성'을 가장 많이 꼽았던 데서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SK는 2002년 들어 무섭게 그룹의 덩치를 키우고 있다. 민영화되는 KT 지분의 전격 인수에 이어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등 공기업 민영화와 현대석유화학 인수에도 적극 참여하는 등 맹렬한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