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든 카를로스 곤의 파워 리더십
이타가키 에켄 지음 | 더난출판
제1장 글로벌화의 거친 파도를 타고 나타난 파워 리더 카를로스 곤한때 곤은 학문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비즈니스 세계로 들어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마침 대형 타이어 업체인 미쉐린이 브라질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그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기 위해 프랑스 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흥미를 느낀 그는 1978년 미쉐린에 입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
헤드 커터(Head Cutter)라는 별명의 사나이와 루이 슈바이처 회장의 탄성그 후 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출세가도를 달렸다. 1985년 당시 31세의 곤은 브라질 미쉐린의 CEO에 취임하여 '1,000% 인플레이션 경제'라고 하는 브라질의 비상 사태를 극복하면서 그의 진가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년 후에는 실적을 인정받아 35세의 나이로 북미 미쉐린 사장에 발탁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출세의 계단을 한 번에 5∼6단계나 뛰어 넘는 초고속 승진이었다.
이렇게 경영자로서 점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곤은 미국의 제2위 대형 타이어업체인 유니로열 굿리치 사의 매수를 추진할 당시 회사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협상 끝에 합병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에 이른다. 이 사건으로 명성을 얻기는 했지만 미국 측 노조로부터 '헤드 커터'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 때 곤의 활약상을 프랑스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자동차회사인 르노의 루이 슈바이처 회장이었다. 슈바이처 회장의 큰 숙부는 아프리카에서 의료 사업과 전도를 한 것으로 잘 알려진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이고,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루이 슈바이처 회장은 사촌 형제지간이다. 그리고 슈바이처 회장의 부친은 IMF 총재를 역임한 명문 집안이다. 슈바이처 회장도 40대 중반에 파비우스 수상의 특별보좌관으로 활약한 후에 르노에 들어 왔다. 이토록 쟁쟁한 가문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탄성을 지른 것이다. "정말로 대단한 사나이야!" 이윽고 슈바이처 회장은 곤을 스카우트하기로 결심했다.
르노,‘400만대 클럽' 그리고 닛산과의 제휴1898년 천재적인 기술자이자 발명가였던 루이 르노가 '르노ㅡ프레르'라는 이름의 회사를 파리 교외에 설립하고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르노자동차의 시작이었으며, 이후 1922년에 회사명을 '르노(Renault)'로 변경했다. 그러나 르노가 이제까지 걸어 온 길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르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장의 80%가 파괴된 데다가 나치스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고 1945년 당시 드골 대통령이 르노의 모든 주식을 몰수하여 국유화함으로서 국영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르노는 창업 이래 처음으로 적자 기업으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이후 1990년대에 다시 민영화된 주식회사 르노에 루이 슈바이처가 임원으로 영입되어 재건에 몰두하면서 회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이 슈바이처는 1992년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글로벌한 자동차 대형 제조업체로서 21세기에 살아 남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연간 400만대'의 출고 가능성에 달려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것을 '400만대 클럽'이라고 한다. 1999년 세계 자동차 업계 가운데 연간 4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GM, 포드, 도요타, 폭스바겐, 다임러-클라이슬러의 5개 회사뿐이었다. 당시 르노는 10위, 닛산은 6위로 슈바이처 회장은 5대 자동차 업체에 뒤쳐지면 국제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 그러한 시기에 슈바이처 회장의 품안으로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왔다. 바로 닛산자동차로부터 제휴제의를 받은 것이다. 당시 닛산자동차의 경영은 참담한 상황이었다. 시장 점유율, 적자, 부채 세 가지 수치 모두 위기상황을 나타내고 있었다.
한편 닛산자동차는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다임러-클라이슬러와 자본 제휴교섭을 1년 가까이 진행했지만 결국은 기업 문화의 차이로 결렬되고 말았다. 닛산의 하나와 사장은 다임러-클라이슬러와의 교섭이 결렬되자 곧바로 프랑스로 건너가 르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교섭을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고 생각한 슈바이처 회장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단 6시간만에 양 사의 자본 제휴가 성사되었다.
이렇게 해서 르노와 닛산자동차는 1999년 3월 27일 자본 제휴에 조인하게 되는데 르노는 닛산자동차의 주식 36.8%를 취득하고 6,430억 엔의 자본을 제공하였다. 이 때 그 동안 르노의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해왔던 카를로스 곤이 닛산자동차의 경영진으로 파견되기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이제 기적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서게 된 것이다.
제2장 강력한 리더십으로 힘을 집중하라르노와 제휴한 닛산자동차의 개혁에 대하여 곤은 '닛산자동차의 본체와 그룹 기업 간의 관계만을 생각하는 정도의 조직 개혁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닛산자동차의 조직 개혁은 르노를 포함하여 대규모로 진행되어야 했다. 그에 따라 새롭게 창안된 것이 '글로벌 본사의 설립'이었다. 글로벌 본사는 '그룹 전체의 전략·기획·관리·글로벌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게 된다.
자금관리의 일원화와 사내 범직능팀의 구성곤은 도쿄 본사의 재무부가 관리하는 형태로 '세계 본사 재무부'를 설치하고 전체자금관리에 나섰다. 즉 일본의 국내외 자회사 172개 사의 자금을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글로벌 캐시 매니지먼트 시스템(GCMS, Global Cash Management System)'을 도입하고 지불 업무를 일원화했다. 닛산자동차의 지불 업무는 연간 140만 건에 이른다.
한편 곤은 사장으로 취임하고 나서 맨 처음으로 '닛산 리바이벌 플랜'을 구축하기 위해 사내 범직능팀(CFT, Cross Functional Team)을 결성하였다. 그리하여 1999년 7월 5일 여러 부서에서 선발된 젊은 사원을 주축으로 '구매', '재무비용' 등과 같은 테마를 중심으로 9개의 팀이 구성되었다. 이 사내 범직능팀은 닛산자동차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팀으로 일체의 '성역, 금기사항, 제약조건이 없도록 하는 것'을 보장받았다. 이 개혁팀은 대기업병, 관료적인 체질, 파벌주의와 같은 개혁을 저해하는 여러 가지 병폐의 원인과 해결책이 회사 내부에 있다고 보고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중도에 굴하지 않고, 선입관에 얽매이지 않고'의 정신으로 닛산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갔다.
디자인과 홍보 부문에 대한 핵심 인력의 외부 영입닛산자동차는 수석 디자이너로 나카무라 시로를 전격적으로 스카우트했다. 그는 이스즈자동차 시절에 그 유명한 '제미니' 등을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더구나 이스즈의 최대 주주인 미국의 GM에서도 경험을 쌓아 해외에서도 잘 알려진 존재였다. 그는 미국과 유럽에서 해외 근무를 반복하며 디자인 경력을 쌓는 동안 일본의 자동차 디자이너에 대한 대우와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회사의 의사결정시스템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 디자인에도 최고경영자의 매니지먼트 감각이 요구된다.'는 곤의 말을 듣고 닛산자동차로의 이적을 결심하게 되었다.
한편 곤은 미국계 금융회사인 JP모건에서 아시아 태평양 부문의 홍보부장을 지내던 후쿠나가 주리를 거의 반강제적으로 홍보부장으로 영입했다. 후쿠나가 홍보부장은 1990년 당시 닛산자동차가 유럽 진출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프리메라'의 프레젠테이션을 담당하는 등 이전부터 닛산자동차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곤은 그녀를 홍보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차원에서 스카우트했다. 이렇게 하여 닛산은 새로운 인물과 단일 체제로 개혁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제3장 솔선수범이 가장 좋은 모범이다곤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반드시 사람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몸을 낮추고 많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면서 진정한 사실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다. 곤은 소문과 같은 간접 정보는 절대로 믿지 않았다. 곤의 인재 발탁 방법은 지극히 실전적이다. 서류 심사와 다른 사람의 추천을 받는 방법이 아닌 자신의 눈과 귀로 확인하고 감정한다.
카를로스 곤의 좌우명 : 현장제일주의곤은 사장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돌연 "오늘 임원회의는 신차의 테스트 코스에서 합시다."라고 하여 임원들을 놀라게 했다. 한 직원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곤 사장은 취임하고 나서 곧 '도치노키에 있는 테스트 코스에서 임원 전원이 닛산의 모든 차를 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차를 만드는 회사의 임원이 차에 관해 모르고서야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지요. 그의 이러한 태도에 모두 놀랐습니다. 역대 사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니까요. 곤 사장은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이제까지의 사장들은 신차 발표회 때에만 시승했기 때문에 차에 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카를로스 곤의 좌우명 중의 하나는 '현장제일주의'이다. 그는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가장 중요한 현장인 '테스트 코스'에 자주 나가본다. 곤은 언제나 "스스로 타보고 확인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닛산자동차의 차를 이것저것 번갈아가며 타보곤 한다. 곤은 항상 그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하여 모범을 보였다.
이와 관련하여 유럽의 영국인, 독일인, 프랑스인의 국민성을 잘 표현하는 우화가 하나 있다. "프랑스인은 달린 후에 생각한다. 독일인은 생각한 후에 달린다. 영국인은 걸으면서 생각한다." 레바논계 브라질 태생의 프랑스인인 곤 역시 '달린 후에 생각하는' 타입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곤의 '현장제일주의'로부터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곤이 프랑스인 특유의 저돌적인 타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증주의적인 타입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실증주의는 '트라이 엔 에러(try and error)', 다시 말하면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쌓아 가는 '귀납법'을 중시하는 영국류의 '경험주의'가 아니라 역시 프랑스류의 '실증주의'라고 할 수 있다.
파워 리더에게 요구되는 10가지 자질과 10가지 지침상황이 심각하고 문제해결이 어려워 보일수록 최고경영자는 용감하고 과감하게 난제에 맞서 돌진해 나가야 한다. 위급할 때 부하직원은 최고경영자를 주목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최고경영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10가지 자질이 필요하다.
① 확고하고 강렬한 의지와 실행력② 지성적이고 고매한 성품③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용기④ 항상 심사숙고하는 대담성 ⑤ 선견성과 통찰력이 있는 날카로운 안목⑥ 사람을 보는 뛰어난 식견⑦ 타인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자신감⑧ 전략적이고 비범한 식견⑨ 탁월한 창조력⑩ 적절한 종합력
한편 최고경영자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개혁을 추진해 가면 어떠한 기업이든 간에 반드시 성공하고 어떤 회사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파워 리더에게 요구되는 변혁을 위한 10가지 지침을 '리더의 마음가짐'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악조건 가운데 건설적인 것을 도모한다 ② 구체적인 '전략'으로 확립한다③ 자신의 분신과 협력자를 한 사람씩 늘려 나간다④ 변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각오한다⑤ 한 걸음씩 나아가고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한다⑥ 타인과 일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한다⑦ 주어진 것을 기다리기만 하면 도태된다⑧ 우선 자신이 변해야 산다⑨ 때로는 조직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⑩ '비탄에 젖은 인생을 살 것인가, 즐거운 인생을 보낼 것인가' 양자택일한다
제4장 철저한 비용삭감과 자산매각이 성공의 열쇠다경영자 특히 최고경영자가 비즈니스 전쟁에서 지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최고경영자에게는 난국을 이겨내고 이기는 것만이 요구되고 있다. 기업 경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하게 진단할 줄 알아야 한다. 다만 기업을 진단하는 목적은 '현 상태에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규명하여 과감하게 행동하고 발전을 위한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닛산자동차의 업적 부진의 원인과 그 해결책곤은 닛산자동차가 실적 부진에 빠지게 된 원인이 사내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결국 그 정체를 밝혀냈는데 그것은 다음 5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인간에 비유하여 말한다면 병명은‘다장기부전(多臟器不全)'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적 부진의 5가지 원인① 명확한 수익 지향성 결여② 고객 지향성 부족과 지나치게 다른 회사의 동향에 관심을 쏟고 있는 점③ 범직능적 ·범지역적 기능의 부재와 조직의 계층간 경계를 극복하는 시스템의 부재 ④ 위기감의 결여⑤ 고통의 비전과 장기적 전략이 없다는 점
·실적 부진에 대한 5가지 해결책① 명확한 수익 지향의 목표 제시② 고객 지향과 지나치게 다른 회사의 동향에 구애받지 않는 것③ 범직능적 ·범지역적 기능을 강화하고 조직의 계층간 경계를 극복하는 시스템의 구축 ④ 위기의 해소⑤ 공통의 비전과 장기 전략 공유
닛산 리바이벌 플랜(NRP, Nissan Revival Plan)의 내용곤은 곧 사업의 발전과 비용 삭감을 위한 체계를 세웠다. 명확한 수익 지향에 기초하여 '수익 확대'와 '비용 삭감'의 두 가지 측면을 조합시키는 것이 닛산 리바이벌 플랜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수익 확대'를 적극적인 수익 지향이라고 하면 '비용 삭감'은 수익 확대를 저해하는 '낭비'의 배제이다. 따라서 '절약'은 또 다른 수익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철저한 비용 삭감과 자산 매각만이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아픔이 없이는 회생의 기쁨도 있을 수 없다.
구매 부문의 비용삭감·목표 : 3년 안에 구매비용의 20% 삭감 (2000년 : 8%, 2001년 : 7%, 2002년 : 6.5%) ① 부품 및 자재 구입의 집중화 ② 서비스의 구입도 구매 전략의 일환으로 인식 ③ 공급자 수의 축소 ④ 글로벌 공급자와의 파트너십 ⑤ 기준 및 사양의 개선 ⑥ 르노와의 제휴
자산 삭감의 내용·목표 : 재무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재무비용 삭감 ① 글로벌 수준에서 재무업무의 집중화(주식 보유는 전략에 도움이 안됨) - 현재 1,394개 사의 주식보유, 과반수의 회사에서 20%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음. - 이들 중 4개 사를 제외하고는 해당 회사의 주식 보유가 닛산의 장래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님. - 보유비용과 이익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이들 주식을 대부분 매각 ② 부동산·유가증권 및 자동차와 관련되지 않은 자산 매각 ③ 30%의 재고 삭감
제5장 개혁을 방해하는 저항 세력을 극복하라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한 직원이 곤에게 "닛산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집이 불타고 있는데 누구도 불을 끄려고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더군요."라고 통렬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닛산자동차가 '불타고 있는 집'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시장 점유율, 적자, 부채 등 모든 것이 최악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현실에 대하여 닛산자동차의 경영진인 임원들은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그에 걸맞는 일을 하지 않았고 더구나 개혁에 대해 너무 무기력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파벌주의의 극복닛산자동차 전체는 심각한 파벌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했던 곳은 연구개발 부문이었다. 가나가와현 아츠기 시에 있는 기술센터와 요코스카 시에 있는 종합연구소는 기술진만 총 7,000여 명에 이르는 거대한 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연구개발 부문이 '기술의 닛산'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권한을 보유한 이 두 기관은 불행하게도 외부의 의견을 진지하게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RV(Recreational Vehicle : 레저용 자동차) 전략'에 뒤쳐진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