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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만든 카를로스 곤의 파워 리더십

이타가키 에켄 지음 | 더난출판
헤드 커터(Head Cutter)라는 별명의 사나이와 루이 슈바이처 회장의 탄성르노와 제휴한 닛산자동차의 개혁에 대하여 곤은 '닛산자동차의 본체와 그룹 기업 간의 관계만을 생각하는 정도의 조직 개혁으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닛산자동차의 조직 개혁은 르노를 포함하여 대규모로 진행되어야 했다. 그에 따라 새롭게 창안된 것이 '글로벌 본사의 설립'이었다. 글로벌 본사는 '그룹 전체의 전략·기획·관리·글로벌 브랜드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게 된다.곤은 곧 사업의 발전과 비용 삭감을 위한 체계를 세웠다. 명확한 수익 지향에 기초하여 '수익 확대'와 '비용 삭감'의 두 가지 측면을 조합시키는 것이 닛산 리바이벌 플랜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수익 확대'를 적극적인 수익 지향이라고 하면 '비용 삭감'은 수익 확대를 저해하는 '낭비'의 배제이다. 따라서 '절약'은 또 다른 수익 확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철저한 비용 삭감과 자산 매각만이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아픔이 없이는 회생의 기쁨도 있을 수 없다.



구매 부문의 비용삭감

·목표 : 3년 안에 구매비용의 20% 삭감 (2000년 : 8%, 2001년 : 7%, 2002년 : 6.5%) ① 부품 및 자재 구입의 집중화

② 서비스의 구입도 구매 전략의 일환으로 인식

③ 공급자 수의 축소

④ 글로벌 공급자와의 파트너십

⑤ 기준 및 사양의 개선

⑥ 르노와의 제휴



자산 삭감의 내용

·목표 : 재무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재무비용 삭감

① 글로벌 수준에서 재무업무의 집중화(주식 보유는 전략에 도움이 안됨)

- 현재 1,394개 사의 주식보유, 과반수의 회사에서 20%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음. - 이들 중 4개 사를 제외하고는 해당 회사의 주식 보유가 닛산의 장래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아님. - 보유비용과 이익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이들 주식을 대부분 매각

② 부동산·유가증권 및 자동차와 관련되지 않은 자산 매각

③ 30%의 재고 삭감제5장 개혁을 방해하는 저항 세력을 극복하라파벌주의의 극복부서간 장벽의 파괴제6장 파워 리더는 카리스마로 승부한다카리스마에 의한 인심 장악력과 사무라이 정신철저한 능력주의와 성과주의제7장 기적은 또다른 시작일 뿐이다브랜드 아이덴티티의 확립그 후 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출세가도를 달렸다. 1985년 당시 31세의 곤은 브라질 미쉐린의 CEO에 취임하여 '1,000% 인플레이션 경제'라고 하는 브라질의 비상 사태를 극복하면서 그의 진가를 알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년 후에는 실적을 인정받아 35세의 나이로 북미 미쉐린 사장에 발탁되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출세의 계단을 한 번에 5∼6단계나 뛰어 넘는 초고속 승진이었다.



이렇게 경영자로서 점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곤은 미국의 제2위 대형 타이어업체인 유니로열 굿리치 사의 매수를 추진할 당시 회사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협상 끝에 합병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에 이른다. 이 사건으로 명성을 얻기는 했지만 미국 측 노조로부터 '헤드 커터'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이 때 곤의 활약상을 프랑스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자동차회사인 르노의 루이 슈바이처 회장이었다. 슈바이처 회장의 큰 숙부는 아프리카에서 의료 사업과 전도를 한 것으로 잘 알려진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이고,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루이 슈바이처 회장은 사촌 형제지간이다. 그리고 슈바이처 회장의 부친은 IMF 총재를 역임한 명문 집안이다. 슈바이처 회장도 40대 중반에 파비우스 수상의 특별보좌관으로 활약한 후에 르노에 들어 왔다. 이토록 쟁쟁한 가문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가 탄성을 지른 것이다. "정말로 대단한 사나이야!" 이윽고 슈바이처 회장은 곤을 스카우트하기로 결심했다.르노,‘400만대 클럽' 그리고 닛산과의 제휴제2장 강력한 리더십으로 힘을 집중하라닛산 리바이벌 플랜(NRP, Nissan Revival Plan)의 내용1898년 천재적인 기술자이자 발명가였던 루이 르노가 '르노ㅡ프레르'라는 이름의 회사를 파리 교외에 설립하고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르노자동차의 시작이었으며, 이후 1922년에 회사명을 '르노(Renault)'로 변경했다. 그러나 르노가 이제까지 걸어 온 길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르노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공장의 80%가 파괴된 데다가 나치스에 협력했다는 비난을 받고 1945년 당시 드골 대통령이 르노의 모든 주식을 몰수하여 국유화함으로서 국영기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르노는 창업 이래 처음으로 적자 기업으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이후 1990년대에 다시 민영화된 주식회사 르노에 루이 슈바이처가 임원으로 영입되어 재건에 몰두하면서 회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루이 슈바이처는 1992년에 회장으로 취임했다.



글로벌한 자동차 대형 제조업체로서 21세기에 살아 남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연간 400만대'의 출고 가능성에 달려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것을 '400만대 클럽'이라고 한다. 1999년 세계 자동차 업계 가운데 연간 40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GM, 포드, 도요타, 폭스바겐, 다임러-클라이슬러의 5개 회사뿐이었다. 당시 르노는 10위, 닛산은 6위로 슈바이처 회장은 5대 자동차 업체에 뒤쳐지면 국제시장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 그러한 시기에 슈바이처 회장의 품안으로 호박이 덩굴째 굴러 들어왔다. 바로 닛산자동차로부터 제휴제의를 받은 것이다. 당시 닛산자동차의 경영은 참담한 상황이었다. 시장 점유율, 적자, 부채 세 가지 수치 모두 위기상황을 나타내고 있었다.



한편 닛산자동차는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다임러-클라이슬러와 자본 제휴교섭을 1년 가까이 진행했지만 결국은 기업 문화의 차이로 결렬되고 말았다. 닛산의 하나와 사장은 다임러-클라이슬러와의 교섭이 결렬되자 곧바로 프랑스로 건너가 르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 교섭을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고 생각한 슈바이처 회장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단 6시간만에 양 사의 자본 제휴가 성사되었다.



이렇게 해서 르노와 닛산자동차는 1999년 3월 27일 자본 제휴에 조인하게 되는데 르노는 닛산자동차의 주식 36.8%를 취득하고 6,430억 엔의 자본을 제공하였다. 이 때 그 동안 르노의 위기를 훌륭하게 극복해왔던 카를로스 곤이 닛산자동차의 경영진으로 파견되기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이제 기적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서게 된 것이다.곤은 닛산자동차와 같은 대 조직에 속해 있는 사원의 마음을 움켜잡고 철저하게 다루는 기술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심 장악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구조조정으로 모든 사원들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사원의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많은 사원들에게 '카리스마적 존재'이면서도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다루기'의 고수였다.



예를 들면 어느 간부가 회의에서 자료를 제출하면 "그런 정도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되돌리면서 매우 엄격한 주문을 했다. 그래서 그 직원이 고생고생해서 다시 고쳐 가면 이번에는 "잘했다. 당신은 대단하다. 덕분에 계획이 상당히 진척되었다."고 칭찬한다. 이런 식으로 직원들을 다루다 보니 대부분의 직원은 맥없이 곤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처럼 파워 리더는 카리스마로 승부한다.



한편 2002년 5월 27일 후지TV의 프로그램인 <보도 2001>에서 평론가 다케무라 겐이치와 인터뷰를 하며 곤은 사무라이 정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사무라이 정신은 비즈니스에서 매우 바람직한 특질입니다. 사무라이 정신은 닛산 리바이벌 플랜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커미트먼트와 특히 강한 연관 관계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커미트먼트는 닛산에 대단히 잘 어울립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 그 자체가 바로 커미트먼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정신이 닛산 리바이벌 계획을 사내에 매우 빠르게 침투시킨 요인 중 하나입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이것을 보고 일본인의 마음에는 사무라이 정신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확실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곤은 '목표와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은 사무라이 정신과 같기 때문에 직원들이 위화감이 없이 자신이 추진하고 닛산 리바이벌 플랜의 목표에 대하여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제1장 글로벌화의 거친 파도를 타고 나타난 파워 리더 카를로스 곤한때 곤은 학문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비즈니스 세계로 들어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마침 대형 타이어 업체인 미쉐린이 브라질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그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기 위해 프랑스 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흥미를 느낀 그는 1978년 미쉐린에 입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곤이 항상 강조하고 있는 커미트(Commit)는 '목표달성을 책임지는 것' 또는 '약속하는 것'을 의미하고, 커미트먼트(Commitment)는 '꼭 달성해야 할 목표'를 나타낸다. 이것은 닛산 리바이벌 플랜에서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고 '꼭 해야만 하는 일'이 확실해지면서 현장 직원들이 활기차게 움직일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닛산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키워드 5가지

곤은 닛산자동차의 회생을 위한 키워드로 다음의 5가지를 항상 가슴에 새겼다. 이 5가지 키워드는 조직이 적극적이고 실천적이기 위해서 꼭 필요한 단어이기도 하다.



① Motivation : 일할 의욕, 일할 의지 또는 동기

② Passion : 열정

③ Focus : 초점

④ Determination : 결단

⑤ Execution : 실행어떤 조직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신상필벌'이 느슨해지면 조직은 필연적으로 '모럴해저드' 다시 말하면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나면서 부패하여 결국에는 붕괴해 버리고 만다. 곤은"조직이 거대해지면 거대해질수록 조직에 공헌하는 사람은 전체의 30% 정도이고 나머지 70%는 조직에 매달려 있는 기생충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곤은 이러한 폐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상필벌을 철저하게 적용하여 능력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이끌어서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하고 그와 동시에 성과가 오르면 그것에 걸맞는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곤은 직원들에게 목표를 제시하고 그것에 매진하게 하는 '능력주의'와 '성과주의'를 철저하게 적용하여 조직 속에 뿌리내리게 했다.닛산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10년 전의 닛산자동차는 전 세계 디자인의 표본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실제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닛산자동차는 '기술의 닛산'에 걸맞는 황금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1989년 5월에 출시된 '제8대 스카이라인'은 개발자의 정열과 기술이 융합된 자동차였으며, 1990년 2월에 출시된 '초대 프리메라'는 일본 승용차의 성능을 일시에 유럽자동차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명품이었다. 이렇게 당시의 닛산자동차는 성능은 물론 디자인까지 자동차 업계를 리드하는 걸작품을 생산해 내고 있었다.어느 기업이든 반드시 그 기업 고유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상품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상품에는 창업자의 정신과 함께 '혼'이 들어 있어서 그 상품의 이름만 들어도 어느 회사가 만들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기업과 상품이 일체가 되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아이덴티티의 본질'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Z'는 닛산자동차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상품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이시하라 사장이 사적인 감정으로 봉인해 버리고 닛산자동차의 '50년사'에서도 철저히 말살시켜 버렸다. 닛산자동차 그 자체를 상징하는 중요한 상품을 말살시켜 버렸기 때문에 '자신의 본질'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자신의 본질'이란 닛산자동차로 말하면 '닛산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자동차를 가리킨다.'닛산의 닛산다움'을 잃고 개성을 잃은 상품을 대량 생산해서 팔려고 내놓은들 고객에게 인정받을 리가 없다.



곤은 일본을 대표하는 스포츠카이면서도 지금까지 금기시되어 생산이 중지되었던 'Z'를 부활시키려는 의욕적인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닛산자동차는 드디어 닛산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원상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닛산의 디자이너팀은 새로운 'Z'의 이미지를 1907년에 등장한 초대 Z와 마지막 기종이 된 '300ZX'의 컨셉을 조화시켜 제조하였다. 옛날의 영광을 현대적으로 재생시키려는 도전이었다. 새로운 Z는 260마력 이상의 8.5리터 V형 6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60마일을 6초 이내에 도달한다. 가격도 구형의 가격이었던 4만 달러에서 3만 달러 이하로 낮추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명차의 부활을 기대한 것이다.리더는 책임지는 사람이다. 한 직원이 곤에게 "닛산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집이 불타고 있는데 누구도 불을 끄려고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더군요."라고 통렬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닛산자동차가 '불타고 있는 집'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시장 점유율, 적자, 부채 등 모든 것이 최악을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현실에 대하여 닛산자동차의 경영진인 임원들은 높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그에 걸맞는 일을 하지 않았고 더구나 개혁에 대해 너무 무기력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닛산자동차 전체는 심각한 파벌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심했던 곳은 연구개발 부문이었다. 가나가와현 아츠기 시에 있는 기술센터와 요코스카 시에 있는 종합연구소는 기술진만 총 7,000여 명에 이르는 거대한 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연구개발 부문이 '기술의 닛산'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권한을 보유한 이 두 기관은 불행하게도 외부의 의견을 진지하게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RV(Recreational Vehicle : 레저용 자동차) 전략'에 뒤쳐진 원인이 되었다.



자동차 회사는 예술품을 만드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아독존적으로 신차를 개발해 버리는 시스템이 당연시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팔리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가를 의심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자동차 회사의 사명은 고객에게 팔리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싸고 좋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닛산의 기술진들은 그 사명감을 잃고 있었다. 연구개발 부문은 거대한 조직 속에서 '독립왕국'과 같은 존재가 되어 연구진들은 자기만족만을 위해 신차를 개발하고 그것이 "팔리든 팔리지 않든 알 바 아니다.", "파는 것은 판매 부문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라는 식의 오만한 의식에 젖어 있었다. 곤은 이러한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을 극복하지 못하면 "닛산은 영원히 회생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미국 시장에 대한 '선택과 집중전략' 승부대기업병에 걸린 닛산자동차는 매너리즘에 빠져 꽉 막힌 분위기가 회사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대기업에 있기 쉬운 학력지상주의가 횡행하고 졸업 년도와 출신 학교 등에 따라서 차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이 때문에 열심히 노력하는 사원이나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원이나 차등 없이 연공 서열에 따라 보수를 받았다. 따라서 의욕적으로 독창적인 발상을 일에 반영시키려고 해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보상받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일할 의욕'을 잃어 갔다. 젊은 사원들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살려 확신을 가지고 일하려는 사원이 점차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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