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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

데이비드 거겐 지음 | 스테디북
제1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리처드 닉슨 얘기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고집스러운 집착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대통령 가운데 재임기간 중에 닉슨만큼 빈번하게 정적들의 도마 위에 올랐던 사람도 없었으며, 퇴임 후 역사가들로부터 혹평의 대상이 되었던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1996년 아서 슐레진저는 서른여섯 명의 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에 대한 총체적인 순위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는 치명적인 실정을 했던 율리시즈 그랜트 및 워렌 하딩과 함께 리처드 닉슨을 꼴찌로 낙점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1974년 8월 9일 스스로 퇴진했다. 그러나 그의 퇴진으로 막을 내렸던 장기간의 전국적 소요는 미국인들의 뇌리 속에서 결코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 되었다. 또한 닉슨은 불명예를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하는 유일한 대통령이 되었다.

사실 사람들은 닉슨이 심하게 꼬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 역시 심한 편견으로 인해 그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빌 클린턴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4 반세기 이상 이어졌던 정치 인생을 통해, 닉슨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강력한 리더로 존경받았다. 첫 번째 임기가 끝난 후 1972년 닉슨은 재선에서 60%의 지지율을 얻었다. 이것은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그 당시 재선에서 1,800만 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는 역사상 유래가 없었다. 20세기 정치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제외하면 대통령 선거전에서 다섯 번에 걸쳐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었던 사람은 오로지 닉슨뿐이었다. 선거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그처럼 후원자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뭔가가 있었으리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로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갔고, 반면에 그렇게 낮은 곳까지 추락했다는 것 또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닉슨은 모든 것을 얻었고, 그 모든 것들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았다. 훗날 그는 이렇게 불평했다.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실제로 파괴한 것은 정적들이라고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칼을 쥐어 주었고, 그들은 그 칼로 나를 찔렀다."

권력과 리더십의 혼동



과거 역사를 뒤돌아 볼 때 대부분의 사회는 하향식 전체주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인물들은 모두 원초적인 권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법을 천부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치열한 싸움에서 힘든 투쟁을 했고, 일단 권력을 지키기 위해 한없이 무자비했다. 닉슨은 그들을 철저하게 연구했으며, 그들의 업적을 숭배했고, 민주적인 사회에 맞는 지도자의 모습을 갖추기보다는 그들의 모습을 모방하려고 노력했다.

닉슨이 백악관을 떠난 후 집필했던 책 중에 하나인 『리더(Leader)』는 그가 평생 동안 공부해 왔던 리더십들로부터 얻은 교훈을 담은 진지한 에세이이다. 이 책은 드골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작된다. "위대한 사람이 없으면 위대한 업적도 없다." 에세이를 엮어 가는 동안 닉슨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또 다른 구절들이 있다. 지도자는 "냉정하고 개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계산에 입각하여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일단 권력을 장악했으면 지도자는 권력의 사용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역사는 권리와 그 자체를 위해 권력을 열망했던 독재자들의 몫이었다. 그렇지만 정상에 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력을 사용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을 추구했고, 자신은 남들보다 그 권력을 훨씬 좋은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도자의 성격을 평가할 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매력이 아니라 유용성이다. 교활함, 허영심, 은폐 따위는 일반적으로 볼 때는 매력적이지 못한 성격이지만 지도자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신판 마키아벨리 책의 서문에 있는 매스 러너의 글을 인용했다. "명확한 사실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정치에서 이상과 윤리는 매우 중요한 규범이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무의미하다."

이 문장들 가운데 완전히 잘못된 문장은 하나도 없다. 늘 그랬듯이 닉슨은 통찰력이 있었다. 그렇지만 위의 글귀들을 종합해 보면 그의 정권을 몰락하게 만들었던 일련의 사고구조를 읽을 수 있다. 닉슨은 궁극적으로 리더십이란 '한 개인에 의한 권력행사'라고 보았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역사를 움직이는 여러 힘과 맞서며, 오직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위해 행동하는 위대한 개인의 권력행사라 믿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지지자들과의 관계는 부차적인 관심사였다. 지도자는 지지자와 함께 하기 위해 그들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려줘야 하지만 또한 그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통은 이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미국은 항상 상향식 사회였으며, 지도자의 권력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나왔다. 미국의 헌법은 "우리들, 미국 국민은"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또한 링컨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했다. 하지만 닉슨은 국민들을 철저히 불신했다. 그는 핵심적인 현안에 대해서조차 국민들의 지지를 결집시키기 위해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만 알렸다. 국민들이 베트남전에 대한 안내를 촉구했을 때 소위 침묵하는 다수를 빌미로 그가 했던 일이 실은 이런 방식이었다. 그는 캄보디아 침공을 숨겼고, 미국이 패전했다는 사실조차 은폐하려고 했다.

닉슨이 진정으로 국민들의 판단을 신뢰했다면 1972년 6월에 그는 워터게이트 불법침입으로 이어졌던 그 사건의 잘못을 설명하기 위해 국민들 앞에 나섰을 것이다. 대신 그는 2년이 넘도록 워터게이트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이렇듯 닉슨은 미국적인 민주주의 전통과 거리가 멀었다. 대통령의 또 다른 주요한 의무, 즉 도덕적 리더십의 문제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2천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국민을 선한 삶으로, 즉 중용과 미덕, 명상으로 이끄는 것이 국가의 중심과제라고 설파했다. 과두제든, 민주제든, 그 둘의 혼합이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같다. 그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학』에서 논한 바 있듯이 정치 지도자는 "그들이 선택한 정체의 정신"을 국민들에게 교육해야 한다. "정치인은 시민들에게 도덕적 특징, 즉 도덕관과 도덕적 행위의 실천을 장려하는 문제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도자는 자신의 리더십을 통해 국민의 도덕정신을 결집해 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학 학자 어윈 하그로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대통령은 단순히 도덕적 법규를 국민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모범을 정립하고 국민들이 그런 최고의 가치를 잊지 않도록 장려한다는 의미에서 도덕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도덕적 절대치로 국민을 억압하거나 차별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가치와 신념을 환기시킴으로써 국민들이 암묵적으로 그 같은 가치를 간직하고, 그것을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 역사의 대부분을 돌이켜 보건대 최고의 대통령들은 그 같은 책무를 직관적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화제의 최고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법률과 관습을 정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닉슨은 도덕에 대한 이야기는 했지만 정치에 도덕적 틀을 도입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헌법의 정신"을 국민들에게 교육하고, "도덕관과 도덕적 행동의 실천"을 장려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원초적인 권력 행사에 너무 미혹되어 있었고, 민주적 전통의 보존은 다른 사람의 몫으로 떠넘겼다.

제2부 제럴드 포드



1974년 가을, 리처드 리브스는 의회선거가 종반에 이르렀을 무렵 며칠 동안 신임 대통령을 따라 다니며 「뉴욕」지에 대통령에 대한 가혹한 비평기사를 썼다. 심지어는 '신사 숙녀 여러분, 미국의 대통령이십니다.'라는 제목으로 왕관을 쓰고 대통령 집무실에 앉아 있는 시골뜨기 사진을 합성해서 싣기도 했다. 리브스는 또 이렇게 썼다. "왕이 벌거벗었다는 말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제는 왕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일년 후,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 한층 더 가혹한 비판을 퍼부었다. "포드는 굼뜨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또한 상상력도 없고, 의사도 분명치 못하다." 그리고 「뉴욕」지에 실린 가혹하기 그지없는 합성사진은 곧 국민들의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각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후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리브스는 포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철회했다. 1997년 그는 『미국의 유산』이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미안해요, 대통령'이라는 제목 하에 그 동안의 정치와 저널리즘의 황폐화에 관해, 특히 공인들이라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대중매체의 성향에 관해 유감을 표시했다. 또한 포드에 관해 썼던 자신의 기사들이 언론의 부정적인 경향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했음을 과감하게 인정했다. 때늦은 지혜의 힘을 빌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포드는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을 잘 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으며, 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다. 대통령께 나의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것은 겨우 895일로, 20세기의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임기가 짧았지만 리더십에 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그는 취임 후 처음 몇 주일 동안, 특히 첫 백일 동안 대통령의 능력을 입증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특히 거대한 조직일수록 앞장서서 조직을 이끌어 갈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문제였다. 지도자가 성격상 채찍을 휘두르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채찍을 맡겨 말을 앞으로 달리게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어야 했다는 뜻이다. 일단 지침이 결정된 후에 대통령이나 백악관 팀이 확고한 추진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 확산될 것이고, 그 같은 불신을 되돌려 놓는 데에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 포드는 이런 점에서도 역시 문제를 노출시켰고, 이런 약점은 그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대권을 넘겨받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점은 집권 초의 그 많은 악재 속에서도 살아 남아 미국인의 존경과 감사를 이끌어 냈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그의 리더십은 긍정적인 교훈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도자들에게 정직의 가치를 재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진실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접착제와 같다."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고, 매일같이 그 원칙을 증명했다. 또한 "너 자신이 아니라 너의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유서 깊은 경구를 좌우명으로 삼아 자신의 행정부에 최고의 각료들을 포진시켰다. 그가 각료들을 생각만큼 잘 다루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근래에 드물게 유능한 행정부를 출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일요일의 깜짝쇼



1974년 9월 8일 일요일 아침, 포드가 집권한 지 정확히 30일째 되던 날 백악관은 한 마디 사전 언질도 없이 대통령 특별 담화를 발표하겠다며 기자들을 불러들였다. 이 담화는 백악관 내부에서 가장 신임받는 여섯 명의 보좌관들을 중심으로 은밀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언론은 무슨 얘기가 나올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11시 정각, 포드는 정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성명을 국민들에게 발표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나 자신의 의사에 따라 나 자신의 양심에 따라 옳은 일이라는 확신이 서자마자 여러분과 모든 미국 시민들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고 느꼈던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 나 제럴드 포드는 헌법 제2조 제2항에 따라 사면의 권리가 허락되었고, 이 선물에 의하여 미국의 국익에 반해 리처드 닉슨이 저질렀거나 저 질렀을지 모를, 혹은 연루되었거나 연루되었을지 모를 모든 범죄행위에 관하여 그 사람, 리처드 닉슨에 대한 완전하고 자유로운 그리고 절대적인 사면을 선언하고자 합니다."

포드가 공식 사면문서에 서명을 한 직후, 리처드 닉슨은 샌 클레멘트에서 사면을 받아들인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사건을 잘못 처리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교활하게도 법을 위반했다거나 은폐조작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닉슨은 변호사와 의논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 냈다. 완전하고 충분한 사면과 범죄행위에 대한 부인, 녹음 테이프와 녹취록의 장기적인 비밀보장까지도 말이다.

닉슨의 공식 사면문서에 서명을 한 포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후에 있을 골프회동을 위해 집무실을 떠나 버닝트리 컨트리클럽으로 향했다. 그러나 첫 번째 공을 티에 올려놓기도 전에 온 나라를 휩쓰는 마른 날벼락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국민들은 사면 소식을 듣고 분노했던 것이다.

대부분 국민들의 뇌리에는 닉슨의 '토요일 밤의 대학살'(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가 백악관에 대해 닉슨 대통령의 녹음 테이프를 제출하라고 요구하자 백악관은 법무장관과 차관에게 콕스 검사의 해임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한 법무장관과 차관이 한꺼번에 해임되었던 사건. 의회는 이런 권력남용을 막기 위해 특별검사제를 입법화했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드의 "일요일 아침의 깜짝쇼'에서 닉슨식 비밀주의와 야합적인 밀실정치의 악취를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면을 발표한 그 짧은 순간으로 인해 포드는 스스로 국민과 대통령을 이어 주던 실낱 같은 믿음의 끈을 끊어버렸다. 이튿날 피츠버그에서는 첫 비난성명이 터져 나왔다. 일부 시위대는 "포드를 감옥으로, 포드를 감옥으로!"라는 구호를 외쳤고, 한 노동자는 공항 담벼락에 몸을 기댄 채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이렇게 대답했다. "오, 그건 너무 당연한 것 아니겠소. 포드는 닉슨에게 이렇게 말했을 거요. '당신이 내게 직업을 주면, 난 당신을 사면해 주겠소'라고 말이오."

「뉴욕타임스」는 여론조사반을 현장으로 내보냈고, 71%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보였던 포드의 지지율이 하룻밤 사이에 49%로 추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일로 인해 포드는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자신의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차고 미국을 이끌어 가야만 했다. 그가 리처드 닉슨에게 베풀었던 새 삶이 결국 자신의 정치 생명을 단축시켰던 것이다.

제3부 로널드 레이건



버나드 맬라머드는 언젠가 한 야구선수의 이야기를 다룬 『내추럴(The Natural)』이라는 소설을 썼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했던 영화는 수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물 흐르듯이 세상을 살아가며 팀 동료들처럼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지만 영화가 절정에 이른 순간 통쾌한 장외 홈런을 터뜨린다. 역대의 다른 대통령들과 확연하게 비교될 수 있는 그 같은 본능과 직관을 타고났던 테오도어 루즈벨트나 프랭클린 루즈벨트처럼 로널드 레이건은 정치에 있어서 바로 그런 내추럴(타고난 천재)이었다. 두 명의 루즈벨트처럼 레이건도 남들 눈에는 어려워 보이는 일들조차도 쉽게 처리하는 마술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레이건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다. 세부적인 아주 사소한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몽상적이거나 부주의한 경향이 있어서 드라마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는 또한 1920년대 이래 정책 자체에 대해 가장 무관심한 대통령이었다. 일상 업무에서는 참모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너무 컸고, 그 때문에 결국 큰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균형감각을 가진 연구자라면 그의 정책에 대해 찬성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그가 아주 유능한 대통령이었다는 점만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내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로 백악관의 가장 탁월한 리더를 꼽는다면 단연 레이건이다. 지도자의 척도는 얼마나 많은 흔적을 남겼는가 하는 것이다. 신경제를 도입한 대통령, 냉전 종식에 기여했던 대통령, 정부와 자기 자신에 대한 이 나라의 태도를 변화시킨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로 그처럼 긴 흔적을 남긴 대통령이 레이건 외에 누가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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