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숀 코비 지음 | 홍익
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숀 O'L. 히긴스 & 파멜라 길버드 지음
홍익출판사 / 2001년 7월 / 341쪽 / 9,500원
여성 CEO의 리더십
“여왕인 나에게는, 백성들이 나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 충성을 다하라는 확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1601년 11월 3일, 화이트 홀에 모인 하원 의원과 140명의 하원 의원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신의 치세를 옹호하는 것과 세금 정책, 그리고 궁중 대신들의 이득을 보장하는 독점 전매권을 승인한 것에 대한 여왕의 입장을 청문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여왕은 자신의 국민에 대한 사랑과 헌신, 영토 수호에의 확고한 의지를 여러 의원들 앞에서 피력했다. 여왕의 이 연설은 즉흥적인 것 같았지만, 그 연설을 들었던 의원들은 여왕의 말이 금으로 기록됐어야 할 정도로 훌륭했다고 칭찬했고, 실제로 그 연설은 ‘황금 연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황금 연설은 여왕의 리더십이 숨어 있는 비밀이 복합적으로 드러난 명 연설이다. 자신의 권위가 신과 자신을 위해 일하는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들어 가장 먼
저 자신의 권위를 수립했고, 그런 다음에는 자신이 취한 조치를 변호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감을 들어 신하들과 마찬가지로 여왕 자신 또한 법이 아닌 더 높은 권세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의 퇴임 연설이나 회고 연설문 대부분이 불성실과 거짓된 자기 겸손으로 치장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왕의 연설은 가장 필요한 시기에, 당장 큰 효과를 발휘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연설은 공허하게 들리지 않았으며, 45년 간의 재위 기간 동안 여왕이 펼친 행적들을 통해 연설에서의 모든 문구가 말없이 강조됨으로써 완벽한 리더십의 수사로 재확인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세계 어느 나라 도서관에 가 봐도 지도력의 이론과 실제에 대한 책들로 가득하지만,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오직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뿐이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것은 1513년이지만 이 책이 세상에 공개된 것은 그가 세상을 뜨고, 엘리자베스 마저 눈을 감은 1532년이었다. 그 이유는 여느 다른 책과는 달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권력의 근원과 같은 철학적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권력의 행사와 유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많은 정치가들로부터 견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이 책에 매료되었다. 한번은 그녀가 ‘군주론’에 나오는 문구를 인용하여 “머리(여왕 자신을 말함)는 발(의원들을 일컬음)에 지배받지 않는다.”라고 말했고, “군주들은 보통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군주다운 지혜를 발휘하는 특별한 방법으로 거래를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발언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어린 시절 마음 깊이 새겼던 가치나 여왕으로서 백성들의 복지를 위해 힘껏 애썼던 것과도 잘 맞기는 하지만 대단히 권위적인 언행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런 오만한 발언은 황금 연설의 특징인 겸손과 겸양의 행동으로 자주 완화되었다.여왕은 “하루에 한번 곤궁한 자들을 생각하며, 가난한 자들의 정당한 탄원을 해결하라!”라는 조언을 실현시키고자 항상 노력했다. 자신의 수하에 있는 관리가 백성을 탄압하고 핍박하고 있다는 탄원이 들어올 때면 그녀는 단호하고 신속하게 조치함으로써 실용적인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곤 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냉철한 이성으로 정략적인 단기 정책을 펴면서도 궁극적인 목표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리더십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균형 잡힌 실용주의적 리더로 일컬어진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중립적인 태도를 취한 리더로서, 가급적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개혁을 감행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여왕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맡길 때 그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력을 함께 넘겨주었다. 권력은 분배함으로써 강화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이익을 나누어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으며 대신 감독형 리더십을 발휘해 참모들을 관리하고 지도해 나갔다. 시대가 달랐다면 다른 리더의 길을 갔을지 모르지만, 엘리자베스는 내분과 전쟁의 공포, 군주의 미숙함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왕국에서 시대와 자신의 지위와 성격에 맞는 리더십 유형으로 ‘중도적 실용주의’를 선택했다. 그리고 오랜 치세와 성공을 통해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여성 CEO의 자금관리
“진실로 나는 탐욕스럽고 인정 없는 착취자가 아니며, 가혹하게 조여대는 군주나 방탕아는 더욱 아닙니다. 나는 세속적인 물질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조공으로 바치는 것을 나는 하나도 축적하지 않고 다시 여러분께 되돌려 드릴 것입니다.”
사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악명이 높을 정도로 돈에 인색했다. 영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외국 전쟁에 대한 지원이라든가 과도한 세금 부여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립시킬 수도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금융문제에 정통한 천재적 인물인 토마스 그레샴을 영입해 악화일로로 치닫던 영국의 경제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강한 경제를 원하던 엘리자베스는 그레샴의 조언을 바탕으로 화폐 가치를 회복시키고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세금을 탕감해 나감으로써 무역과 투자 성장을 가속화시키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는 왕위에 올랐을 때 메리의 내각으로부터 거의 35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빚을 물려받았는데, 이 액수는 당시 인구 4백만이 채 안 되던 시절의 영국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금액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최악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현대 비즈니스 사회에서 현명한 CEO가 취할 수 있는 다음의 5가지 방법을 강구했다.
우선 연속성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고,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은 새로운 사업은 가능한 피했으며 채무를 재조정하기 시작했다. 또한 생산성 없는 소유지를 처분하여 자본을 확보한 후, 수익 창출을 위해 성장 가능성이 있는 분야에 투자했다. 그녀는 돈에 인색한 만큼, 현명하게 돈을 소비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경제 마인드를 가진 지도자였다. 그녀는 재무 문제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십분 발휘했으며, 견실한 재정 정책을 확립하려는 후대 정부와 조직들의 귀감이 되었다.
자기 PR의 테크닉
영국의 한 방송사는 엘리자베스를 가리켜 자기 PR에 관한 한 천재적인 테크닉을 가진 군주였다고 평가했는데, 그녀의 테크닉을 ‘자기 이미지의 개발과 보호’, ‘정확히 말하고, 인내심 있게 듣는다.’, ‘피해 조절‘과 같은 세 가지 영역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백성과 결혼한 처녀 여왕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어 그것을 집권기간 내내 활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인상을 대중에게 강하게 심어주었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인내심 있게 듣는 태도를 웅변술만큼이나 중요시하여 여론 수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자신의 정책과 명예에 대한 공격, 자신을 나약한 군주라고 비난하는 일들이 생기면 이를 신속하게 처리하여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줄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 같은 엘리자베스의 자기 PR 능력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위협 앞에 놓인 작은 섬나라를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바꾸어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유명한 강사이며 『당신을 리더로 만드는 12가지 자질』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한 셀라 베델은 그의 책에서 리더의 조건으로 첫 번째는 훌륭한 대화자가 되는 길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베델에 의하면 진짜 리더란, 대화 기술을 발휘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고 방식을 깨닫도록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인데, 그런 점에서 엘리자베스는 훌륭한 대화 기술을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비록 절대 권력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권력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나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경청할 수 있도록 공통분모를 찾는 대화 테크닉이 뛰어났던 엘리자베스는 400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의 리더 중 한 사람으로 추앙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조직하고 유지할 것인가
엘리자베스가 대관식 후, 그녀에게 던져진 첫 번째 과제는 자신의 처세를 도와줄 주요 참모들로 구성된 추밀원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직접 통치를 지원할 위원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임명한 사람은 에드워드 6세와 메리 1세를 모두 섬겼던 38살의 윌리엄 세실이었다.
“내가 판단컨대, 당신은 어떤 뇌물에도 타락하지 않을 것이며 국가에 충성하고 내 개인적 의견에 관계없이 언제든 당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조언해 주리라 믿소.”
이는 모든 의원에게 여왕이 바라는 바이기도 했지만, 특히 세실은 이에 대한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켜 준 사람이었다. 여왕과 마찬가지로 세실 역시 급진적이기보다는 온건한 변화를 바라는 균형 잡힌 실용주의자였다. 연이은 임명을 통해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연설을 통해 맹세했던 것처럼 종교에 상관하지 않고, 국가를 잘 섬겼던 참모들은 그대로 관직을 유지하도록 했다. 세실의 임명 후 다른 인물들의 임명은 비교적 빠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엘리자베스는 분열된 주요 종파를 모두 포용해서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체계가 가져올 급격한 변화에 대한 불안을 진정시켜야 했다.
영국을 통치해야 하는 자리에 오른 이상, 여왕은 각자의 능력과 다양한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 여러 참모들을 조직하고 관리해야 했다. 또한 그녀는 참모들 안에 내재된 편견, 즉 여자이기 때문에 정치 문제에 있어 그들보다 열등하다는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했다. 이런 필요에서 그녀는 자신의 권위를 신속하게 수립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면서, 스스로에게 극복의 지혜를 물어 높은 가치의 결과를 얻어내기 위한 첫걸음은 리더의 권위와 권력을 지지해주는 조직을 창조하고 잘 유지하는 것이다. 의견이 맞지 않아도 화합하라는 이념을 전제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참모들과 영국을 이끌어나갔던 것이다.여성 CEO의 비전과 사명
“나는 지금까지의 어느 왕 못지 않게 훌륭한 여왕이 될 것이다. 내 안에 그럴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또 그만한 힘이 부족하지도 않음을 믿는다. 여러분께 확신하건대, 여러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필요하다면 내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조국, 영국의 비전에 대해 항상 언급했다. 사실 그녀는 군주로서의 사명을 분명히 밝혔고, 비전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 지칠 줄 모르는 헌신을 다했다. 현대 기업 사회에서도 모든 회사의 주체들은 나름대로의 기업의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인터넷 등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기업이나 사회 단체들의 ‘사명 선언문’은 대부분 ‘이윤 추구를 위해’, ‘고객에게 봉사하기 위해’ 같이 뻔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며, 횡설수설하거나 전문용어 일색의 선언문이 많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기업인 ‘노드스트롬’이나 ‘월마트’ 같은 기업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사명 선언문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노드스트롬’에서 발행하는 직원 안내책자 속에는 사명 선언문이 갖추고 있어야 할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다른 기업들처럼 회사 벽이나 인터넷 홈페이지 한쪽 구석에 틀어박혀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채, 공허한 이상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직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양질의 고객 서비스라는 하나의 목표를 기준으로 모든 행동이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역사상 가장 크고 성공적인 유통업체인 ‘월마트’의 사명은 ‘문화이야기’를 통해 나타나 있다. 이 회사의 웹사이트에는 ‘일몰규칙’, ‘날마다 저렴한 가격’,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기’, 그리고 ‘10피트 자세’라는 제목의 4가지 원칙이 있는데, 이와 같은 ‘월마트’만의 문화이야기는 다른 회사들에 제공하는 전문용어 일색의 어떤 사명 원칙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이런 원칙을 통해 직원, 고객, 투자자들은 월마트의 사명을 이해할 수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직원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이로 인해 고객과 투자자가 받는 혜택은 무엇인지를 개개인 모두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조직과 리더들은 결합된 비전과 이에 대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사명을 가져야 한다. 엘리자베스는 분명히 ’비전이 없는 사람들은 실패한다.‘는 격언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엘리자베스 시대에는 사명 선언문이라는 말조차 없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자기 자신이 백성들의 사명이 되어주었다. 그녀의 확고하고 믿음직스러운 비전과 사명 덕분에 화폐는 안정되고 예산은 균형을 이루었으며 영국의 세력은 확장되어 그야말로 새로운 국가로 변모하였다. 세상을 지배하고 싶은 여성이라면 스스로 기업의 상징이 되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결정권자로서의 여성 CEO
“군주에게 ’당연히 해야 한다!‘라는 당위성은 없다.”
엘리자베스의 생애를 다룬 많은 작가들은 그녀를 우유부단했던 통치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여왕의 미적지근한 태도 때문에 손해를 봤던 고문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고문관들은 자신들의 권고에 즉각 대처하지 않고, 중요한 문서에 동의하는 것도 미루는 데다가 가끔 변덕을 부리는 여왕의 태도를 못마땅해했다. 이처럼 고문관들 눈에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쳐진 모습이 실은 자신과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여왕의 계획된 전술이 아니었을까?
엘리자베스 여왕은 결코 결단력이 없었던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과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무엇이 영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지를 직시하고 있었다. 만약 어떤 문제에 있어 결단력이 없는 태도로 비치는 모습이 있었다면, 이는 그 문제들이 정치적으로 지지를 얻지 못하는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 확실한 자기 신념을 갖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잠시 결정을 미뤘다가 상황이 바뀌길 원했던 것이다.
기업의 리더라면 언제나 ‘의사 결정’의 어렵고 중요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의사 결정의 모델은 수백 가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수십 가지는 되는 상황이지만, 대부분 다음의 다섯 단계에 따라 이루어진다.
1. 정보를 수집한다.
2. 정보를 분석한다.
3. 다른 사람의 조언을 구한다.
4. 각 대안의 장점과 결과를 비교 검토한다.
5.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결정을 내린다.
성급한 결정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우유부단하다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최대한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며 때를 기다렸다. 기업의 리더로서 여러분은 주변에 있는 모든 정보를 끌어 모아 분석한 뒤 완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경우라도 서두르지 말고 일을 진척시키지 말라.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최고 경영자로서 이러한 의사결정을 했기에 유혈 충돌을 줄이고, 예산 균형을 맞추었으며, 자신의 신화적인 이미지를 보호하려는 목표에 부합되는 최고의 결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여성 CEO의 지혜와 지식
엘리자베스 여왕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었을까?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가정 교사나 역사학자들이 제공하는 일화나 그녀의 글, 그리고 연설을 통해서 그녀의 지력(智力)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이미 14세의 나이에 영어와 프랑스어, 라틴어, 그리스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의 방언인 플라망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함은 물론 약간의 웨일즈어까지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언어뿐만이 아니라 종교와 음악, 건축과 천문학의 원리에 대해서도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여가 시간에는 체스와 카드놀이를 즐겼고 그 외에도 승마나 산책, 연극 관람 등을 좋아했다. 여왕의 폭넓은 관심과 부지런한 학습 덕택에 그녀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예리했으며, 심지어 70세 나이로 죽을 때까지도 정신적으로 민첩한 능력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