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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경영하라

도몬 후유지 지음 | 경영정신
"리더의 결단은 여러 가지 방법을 설정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선택을 결정하는 것으로 끝

난다."구로다 조스이는 여론을 수집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회의'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모임인 이견회(異見會)를 만들도록 나가마사에게 제의했다. 회의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의 신분은 동등하며,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모든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이견회'는 하급무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민주적인 의사 결정 도구로서 출발한 '이견회'는 회가 거듭할수록 운영상의 문제 때문에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책임감 없는 발언만 계속했고, 다양한 제안 가운데에서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나가마사의 소심한 추진력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안 조스이는 중신들을 적으로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스스로 악역을 맡기로 한 조스이는 병상에서 지금까지 충성을 다해 구로다 가문을 일으켜 준 중신들을 욕하기 시작했고, 중신들은 자연스럽게 나가마사에게 충성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악역을 담당하면 그만큼 나가마사의 명예가 높아질 것이라는 조스이의 생각은 적중했으며 구로다 가문은 물론 나가마사 역시 명석한 결단을 내리는 다이묘가 될 수 있었다.오다 노부나가의 말고삐를 잡는 미천한 일부터 시작해 일본 전역을 통일한 인물. 뛰어난 경제 수완으로 자유 경제의 기본틀을 구축하여 일본 최대의 경기 호황을 이루지만, 만년 에 일으킨 임진왜란으로 경제가 어려워져 결국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정권이 넘어간다.전국 시대는 하극상의 시대였다. 하극상이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꺾어 누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단순히 입신출세를 위해서 상하 관계가 흐트러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극상 시대에 주군의 임무는 부하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러한 원리를 염두에 두고 일본을 통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사나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등장하기 전에 기노시타 도키치(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젊은 시절 이름)는 출세를 위해 교토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풍류를 사랑하는 다이묘로 소문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이마가와 가문의 부장인 마쓰시타 가헤를 만난 도키치는 일단 그의 밑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이마가와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키치의 탁월한 경제감각을 인정한 마쓰시타는 그를 단숨에 마쓰시타 가문의 재정담당자로 임명했는데, 그러자 오래 전부터 마쓰시타 가문의 가신으로 있던 인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그 거센 반발을 이겨내지 못한 마쓰시타는 충분한 퇴직금을 담보로 도키치에게 퇴직해 줄 것을 요구했는데, 그 이유가 가문의 '융화'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마쓰시타의 설명을 들은 도키치는 퇴직금은 물론 이마가와에게 제출할 소개장까지 뿌리치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간부인 마쓰시타가 무능력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간부로 고용한 주군 요시모토도 대단한 다이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기 시작했고,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 싸움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멸망시킨다. 나중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이름을 바꾼 그는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집약했다.전국 시대의 주종관계는 단순히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주군이 섬길 가치가 있는 인물인가 아닌가 하는 주군의 인격적인 면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본체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회사 제품이나 서비스의 차이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의 분중화(分衆化 - 대중이 부분화된 존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히데요시와 같은 고향 출신의 무장. 히데요시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도량이 크고 인정 이 많아 이에야스가 패권을 잡은 후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도 그를 섬기려는 부하가 끊이 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나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고 새 주군을 모시라."는 유언을 남기 고 64세에 자살했다.이에야스는 당나라 태종의 정치관과 사적을 기록한 책인 『정관정요』를 애독했는데, 태종은 여기에서 충언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태종은 충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입장에서 귀에 거슬리는 의견이라고 해도 일단 순순히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과연 내가 부하들의 충언을 순순히 수용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에야스는 주군에게 충언하는 것은 전쟁에서 선봉에 서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표현했다.



또한 그는 '충언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주군과 부하 사이에 양호한 인간관계가 성립되어 있어야 하며, 양호한 인간관계란 무슨 말을 해도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는 탄탄한 신뢰관계를 가리킨다. 이런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충언 자체의 의미가 왜곡될 우려가 있는데, 이는 충언을 하는 자가 설사 좋은 말을 한다고 해도 주군이 들을 자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거나 충언을 하는 사람에 대해 선입관이나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을 경우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마사노리는 거의 대부분 히데요시와 함께 행동했는데 시코쿠 정벌이 끝난 다음에는 이요(에히메 현)에서 11만 3200석의 봉록을 받는 다이묘가 되었고, 이어서 오와리 기요스 성의 성주로 임명되어 24만 석의 봉록을 받기도 했다. 히데요시는 마사노리를 누구보다 신뢰했으며, 마사노리 역시 히데요시에게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충성했다.



세키가하라 싸움이 발생했을 때, 마사노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을 들었다. 그때 이에야스는 어떤 성을 먼저 공격할 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는데 마사노리는 자신의 소신대로 오사카 성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오사카 성에 마사노리가 충성하던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마사노리를 제외한 히데요시의 은혜를 입은 다른 다이묘들은 함부로 말도 못하고 이에야스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만일 히데요시가 이 일 때문에 다른 계열, 즉 미쓰나리의 편에 들어서게 된다면, 현재는 이에야스를 따르지만 원래 히데요시 계열인 다이묘들이 히데요시에게 화살을 겨누게 될 운명에 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주변의 다이묘들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어찌할 생각이냐고 묻자 마사노리는 "이에야스 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저는 오사카 성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히데요리 님에게서 등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덟 살밖에 안된 아직 어린 그가 미쓰나리 편에 들 이유가 없으며, 히데요시 또한 작은 일로 대의(大義)를 그르칠 소인배가 아니므로 마음놓고 오사카 성을 공격해 미쓰나리를 쓰러뜨려도 좋습니다."라고 진언(眞言)을 올렸다. 그의 충성심과 강직함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일화이다.

그의 인자한 성품은 적장 미쓰나리를 생포한 후 그에게 베푼 온정에서도 쉽게 나타난다. 세키가하라 싸움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하며 미쓰나리의 군사를 혹독하게 공격했던 마사노리는 막상 미쓰나리를 생포하자 온갖 험한 말과 행동으로 미쓰나리를 괄시하던 자신의 부하와 동료들을 오히려 호되게 야단쳤다. 비참한 모습의 미쓰나리에게 다가간 마사노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운이 없어 이런 비참한 처지가 되었다는 당신의 말이 모두 맞소. 그런 오기로 어떻게든 끝가지 살아남도록 하시오." 미쓰나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마사노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사노리는 따뜻한 성품으로 모든 싸움에 있어 미쓰나리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그의 후덕하고 따뜻한 인품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충성을 맹세하고 그를 떠나지 않는 부하들이 많았다. 젊고 능력 있는 부하들은 우산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고, 화장터에서 일을 하면서도 갑옷과 투구, 창이나 칼을 소중히 보관하며 마사노리가 자신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후일 마사노리는 자신을 시기하는 무리들 때문에 성을 떠나, 유랑자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마사노리는 부하들의 이런 생활을 소문을 통해 듣고 있었다. 마사노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계속 살아 있으면 부하들은 기대를 가지고 살다가 결국 실망만 하게 될 거야. 내 손으로 목숨을 끊어 가신들을 해방시켜주어야 해." 그리고 1624년 마사노리는 자살했는데 그때 그는 이런 유언을 남겼다.사실 리더는 힘을 갖출수록 듣기 좋은 말만 듣게 된다. 즉 칭찬이나 격려 같은 달콤한 말 만 받아들이고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귀에 거슬리는 의견은 듣지 않으려 한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에 대한 비판이나 귀에 거슬리는 의견을 말하는 자가 있으면 화를 낸다. 그리고 그런 리더일수록 부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라고 말한다.이에야스는 막부의 조직 운영에 대해 이런 명령을 내렸다. "도쿠가와 막부는 쇼야로 운영하겠다." 여기서 쇼야는 마을 공동체의 촌장이나 장로에 해당하는 직위로 한 마을에 여러 명 존재한다. 따라서 이에야스의 말은 막부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합의제, 집단 지도제로 결정하라는 뜻이다. 즉 독단적인 결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정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충언을 일차적으로 차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수의 경쟁자끼리 서로 토론하고 비판하여 각자의 책임을 최대한 완수하라!'는 무서운 인간학을 바탕으로 일본을 통일한 이에야스는 분명 평범한 관리자는 아닐 것이다. 혼란했던 전국 시대에 수많은 리더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슨 말이든 하라는 식의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면서도 실제로 충언을 하면 즉시 화를 내며 그 사람을 위기로 몰아가는 위기를 워낙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에야스는 조직경영에 대한 독특한 가치관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도쿠가와 막부의 3대 쇼군인 이에미쓰가 쇼군직에 올랐을 때 도자마 다이묘들을 모아놓고, 자신은 타고난 쇼군이기 때문에 참근교대(에도 막부가 다이묘들을 일정한 기간 동안 에도에 머무르게 한 제도)로 다이묘들이 에도를 방문할 경우에도 자신이 그 숙소까지 찾아가는 의례를 중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신의 절대 권력을 굳건히 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출이었다. 그러나 이에미쓰에 대한 섭섭함과 건방진 태도에 대한 불만으로 다이묘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조금씩 험악해졌다. 이때 누군가가 갑자기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멋진 말씀입니다. 실로 멋진 말씀입니다." 이에미쓰를 비롯한 다른 모든 다이묘들이 그 남자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다테 마사무네였다. '독안룡' 또는 '무쓰의 맹호'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실로 믿음직한 쇼군이십니다. 이제 이에미쓰 쇼군께서 쇼군 가를 이어받게 된 이상 도쿠 가와 가문은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안심하고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에 미쓰 님 같은 쇼군을 상대로 모반을 일으킬 용기가 있는 다이묘는 이 안에는 한 명도 없 습니다. 만약 지금 이에미쓰 님께서 말씀하신 모반자가 나온다면 저 다테 마사무네가 토 벌군의 선두에 서겠습니다."이에미쓰는 스스로도 자신이 한 발언에 대해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사무네의 확신에 찬 열변을 듣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늙은 영웅 마사무네의 지지발언은 이에미쓰의 입장을 확실하게 확립시켜 주었다.



마사무네는 말년에 이르러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중요한 문제는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말고 혼자 결정해야 한다." 마사무네의 이런 말은 현대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요즘에는 기업이 여러 가지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데 그때마다 요구되는 것이 리더십이며 결단력이다. 만일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누군가에게 부여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리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 수집, 정보에 대한 판단과 분석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 역할은 보좌관이 할 일이다. 굳이 리더 자신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 판단하는 과정을 밟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마사무네의 말은 그런 여러 가지 방법도 리더 자신이 설정해야 한다는 뜻이다.이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모두 결정을 내린 리더가 져야 한다는 마사무네의 확고한 사고 방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사회에서는 리더는 결과가 나쁠 경우, 누가 그런 방법을 생각해냈느냐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여 조직이 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책임 소재가 애매해지는 것이다. 마사무네의 말처럼 리더가 여러 가지 방법을 설정한 뒤에 직접 결단을 내린다면 이런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책임의 소재도 분명해질 것이다. 그는 인생에서 세 번의 중요한 위기를 겪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세 번의 위기 때 모두 자신의 마음대로 결정한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끝까지 혼자 결단을 내리고 모든 책임을 지는 유형의 뛰어난 리더였다.인덕경영 - 후쿠시마 마사노리 (1561-1624)선택경영 - 도요토미 히데요시 (1537-1598)"주군이 부하를 둘 때, 1년을 부려보고 도움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해고해야 한다. 가신이 주군을 섬길 때, 3년을 일해보아 가능성이 없는 주군이라면 버려야 한다. 이것이 법이다."리더경영 - 다테 마사무네 (1567-1636)히데요시, 이에야스를 거쳐 히데타다를 모신 백전노장. 독안룡 혹은 무쓰의 맹호로 불렸 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혼자 결정해야 하고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한 뛰어난 결단력의 소유자다."옛 후쿠시마 가문의 가신들은 부디 나에 대한 충성심을 잊고 다른 가문으로 들어가 자신 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바란다."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제야 옛 후쿠시마 가문의 무사들은 다른 다이묘 가문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사노리는 끝까지 자신의 부하들을 생각한 훌륭한 리더였다.조직경영 - 도쿠가와 이에야스 (1542-1616)노부나가,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천하통일을 완성함으로써 일본의 근세 봉건제 사회를 확 립한 인물. 신뢰와 팀워크를 강조하고 여론을 중시하는 자로서 도쿠가와 막부가 266년 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사람 각자가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가치관에 자신감을 가지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인 정을 받음으로써 사회전체가 향상되어 간다. 그 속에서 사람들 각자가 자신의 가치관을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간다."전국시대에 다이묘(넓은 영지를 소유한 무사)가 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슈고(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의 직명으로 각 지방의 경비, 치안유지를 담당했으나 뒤에 강대해져 영주화됨), 슈고다이(슈고가 임지에 부임하기 전에 대신 사무를 본 사람, 슈고의 대리), 또는 가로(다이묘, 쇼묘, 슈고 등의 중신으로 집안 일을 총괄한 직책, 가신 중의 우두머리), 지토(중세의 장원에서 조세 징수, 군역, 수호신등을 맡았던 관리자) 등 무로마치 막부의 상, 하급 지방 관료들이 득세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런 신분적 배경도 없이 거의 빈손으로 전국 시대 다이묘가 된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사이토 도산과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호조 소운이 그들이다. 아무런 지지 기반이 없는 인물이 갑자기 다이묘가 되었을 이유는 없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이 능력은 자신들이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세 가지 조건, 즉 '천시(天時 - 하늘이 내려준 시기)', '지리(地利 - 지리적 요건)', '인화(人和 - 인간적 배경)'를 확보하게 도와주었을 것이다.



호조 소운은 '국도', 즉 나라를 훔친 도둑으로 묘사되곤 한다. 나라를 훔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어느 지역의 주민과 토지, 그리고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을 송두리째 훔친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호조 소운의 정치적 이념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그는 "농민을 위한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편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직접 농지를 경작하는 농민이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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