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자로 살아라
요제프 키르쉬너 지음 | 뜨인돌
"매일 한 사람씩 사귀어, 그를 네 친구로 만들어라!"라는 격언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격언을 따를 것이다. 그대로 일이 잘 풀리면 그 사람은 일년 후에 365명의 친구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매일 각각의 친구에게서 또 다른 친구 한 명씩이 추가로 생길 것이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잊혀지지 않도록 그중 한 명과 매일 식사하러 가야 한다. 저녁에는 거꾸로 잊혀지고 싶지 않은 좋은 옛 친구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비워 둔다.
그러나 이렇게 한 해를 보내면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릴 것이다. '새 친구를 얻기 전에 불필요한 열 친구를 떨쳐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고상한 우정이라는 전혀 비현실적인 관념은 수많은 사람들을 순진함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환상이다. 위대하고 순수한 사랑에 대한 동경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개념들과 관련해서 "그게 나에게 무슨 소용이 되는가?"라고 냉철하게 질문하는 것을 매우 부도덕하게 여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해 두겠다. 즐거움을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몇몇 좋은 친구들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정에 바탕을 둔 이런 관계들의 가치를 살펴보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너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아."라거나 "네가 진정한 친구라면, 나에게 그런 해를 입히지는 않겠지."라는 경고로 나를 계속 성가시게 한다면, 그는 나를 협박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는 내가, 자신을 위해 무조건 사랑을 주거나 친구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그 관계의 이익에 대해 따져 보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내가 만약 따지고 든다면 이 관계에서 내가 받는 것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을 그는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는 나의 그런 생각을 막으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내가 그 의미를 캐묻지 않고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 성실, 정직, 찬사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우정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조작기구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이든 가설이든, 사실 감정만으로는 만족스러운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 그러니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실망을 거듭하여 괴로워하는 것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랑하거나 친한 누군가가 나에게 의지할 수는 있지만, 나는 상대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내게 짐이 될 것이다.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피해가 생기기 전에 끝내는 게 좋다. 이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상대가 언젠가는 달라지겠지 하는 희망에 의지하는 그런 일방적인 감정적 결속의 종말은 훨씬 더 냉정하다. 급부와 반대급부의 조화 없이는 사랑도 우정도 지속될 수 없다.우리가 어릴 때부터 받아 온 교육에 의하면 가급적 모든 것에 대해 존경을 표해야 한다. 권위에 대한 존경, 어떤 분야에서 우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 직책, 상사, 권력, 돈에 대한 존경. 그래서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같은 굴복의 의식에 지배당하고 이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이득을 취한다는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현실은 끊임없이 누군가가 누군가를 굴복시키려 하는 체제이다. 이것을 바꾸는 것은 실로 불가능한 일이다. 경험에 의하면 어떤 새로운 체제가 나타나도 또 다시 같은 법칙이 생겨났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체제는 존속한다. 여기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단지 남들이 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나의 이득을 넘겨주느냐, 아니면 적어도 그들과 대결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확보하느냐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요컨대 문제는 자기 영역을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각오가 단단히 되어 있고 보다 더 신중하게 처신할수록, 겉으로는 막강해 보이는 상대에서 대항할 수 있는 기회를 그만큼 더 확보하고 이용할 수 있다. 자기 영역의 경계를 긋지 않은 사람은 불안한 심정으로 항상 상대에게 굴복함으로써 적어도 최소한의 이익을 확보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상대가 어떤 정류의 권위를 요구하느냐에 상관없이 나는 누구에게든 동등한 파트너이며 어떠한 굴복의 의식에 의해서도 위협 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막아 줄 수 있는 원칙이다.
또 하나의 원칙은 '어떤 영역에서 유일한 권위자라고 하면서 내게 제공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해 나는 다른 대안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존경해 오던 것을 더 이상 존경하지 않고, '내가 그 대신 동등한 가치를 가진 대안이나 보다 나은 대안을 찾는다면 아무에게도 종속될 필요가 없다. 나는 그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마지막 원칙은 '나는 포괄적인 정보를 통해 권위를 갖고 나를 굴복시키려는 사람들의 시도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주위를 존경으로 둘러싸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들의 권위가 침해당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들이 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상대를 무식하다고 몰아붙이는 것이다. 이때 있는 그대로에 만족하고, 단지 어떤 분야에서 자기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는 제스처를 보내는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무식한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어떤 교육을 받았든 상관없이, 치과의사에게 내 치아를 치료하기 전에 X-레이 사진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많이, 자기 자신은 지나치게 적게 존경한다. 이로 인해 불행과 불만족이 발생한다. 이것에 대한 해결책은 개개인의 단호한 자기 주장의 혁명이다. 이보다 나 자신에게 유리한 호전적인 혁명은 없기 때문이다. 남의 계발을 위한 최적의 전제조건들을 조성해 주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의 계발은 스스로 해야 한다. 그리고 이 혁명은 오늘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절대로 그것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대리만족에 머무른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항상 제일 먼
저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남들을 생각하라항상 남들만 배려하는 대신, 남들을 나에게 익숙하게 만들어라단지 싫다는 말을 하지 못해, 연민이 증오로 변해 버린 어느 여자의 이야기자기 영역을 성공적으로 지키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 전제조건한 명의 새 친구를 만들기 전에 열 명의 불필요한 친구를 떨쳐 버려라자기 자신보다 다른 누구를 더 존경해야 할 이유가 없다바지를 사려고 옷가게에 간 적이 있었다. 내가 물건을 고르지 못하고 뒤적이고 있자 점원 이 와서 바지를 하나 골라 주며 말했다. "이것이 손님이 찾으시는 그 바지 같습니다." 입 어보니 정말 잘 맞았다. 그러나 통이 좀 넓었다. 점원에게 얘기했더니 점원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것은 지금 한창 유행하고 있는 옷입니다. 자기 이미 지에 조금이라도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요즘 그런 바지는 입는답니다."라고 대답 했다.이런 비슷한 일을 겪어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누군가가 유혹하기 방법으로 내 영역을 침입해 들어오려고 한다. 물론 전혀 악의가 없는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기꺼이 순응하는 다수의 대중에 속하느냐, 아니면 자기 자신의 생각을 지키는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상황이다. 점원의 말에 넘어갔다면 그는 빨리 바지를 팔고 나를 떨쳐버릴 수 있다. 물론 그는 내가 그 바지를 정말 마음에 들어할지 아닐지는 관심도 없다.
이외에도 순전히 상대방의 호의 때문에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게 무엇이든 언젠가는 부메랑처럼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나를 어려움에 빠뜨릴 것이다. 더 나아가 양보를 할 때마다 상대방은 다음 번에는 내게서 더 많은 것을 양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면 일단 거절했을 때 발생하는 긴장상태는 피할 수 있고, 양보하면 언쟁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튼 희망을 품지 마라. 일단 내가 그 제의를 받아들이게 되면 상대는 그것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우리는 지켜지지도 않는 거창한 약속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과 제도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나서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아무도, 그 어떠한 제도도 우리를 곤궁에서 구해주지 않는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지 못하다. 왜일까? 모든 인간은 이기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서다. 또한 삶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모르기 때문이다. 설혹 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에 제대로 적용하는 법은 배운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사랑, 우정, 공정함, 정직, 이해심, 상호존중의 미덕이라는 고정관념에 얽매여 자기 자신을 생각하라는 요구만으로도 죄책감을 갖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모두가 이기주의자라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냐고.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신경을 쓰면 불행한 사람이 훨씬 줄어든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아울러 자신의 불행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다. 남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다. 또한 자신의 소망과 목표, 진정한 욕구와 기쁨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 것은 개개인의 소중한 권리이자 반드시 실천해야 하는 의무이다.
의식적이고 철저하게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요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오래 전부터 남들이 옳지 않다고 주장해 왔던 것이 갑자기 옳은 것이라니? 이 같은 의혹의 뿌리에는 한 가지 미심쩍은 사실이 자리해 있다. 즉 이기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주입시켜 준 사람들이 바로 '타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부추겨 우리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하게끔 만들려고 했다. 이제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을 세워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이기주의자로 사는 법을 이해해야 한다. 이기주의자가 되면 지금까지의 직업, 백해무익한 몇몇 친구들, 혹은 배우자와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깨닫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인생에서 바꾸고 싶은 게 있고, 또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실행하되, 남들이 좋아할지 말 지에 대해 수천 번씩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 세계에 순응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에 얽매여 살아간다. 공동체 안에서만 자신의 삶이 실현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체의 구성원들 각각은 단 한 가지 목표만을 갖고 있다. 그 목표란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기를 위해 가능한 더 많은 행복과 만족과 자아계발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남들과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모두들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능한 많은 것을 얻으려는 이런 공동생활의 자연스런 생존게임 하에서는 자기 뜻을 관철시킬 줄 모르는 사람들은 낙오되고 만다.
"우리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으니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남들을 배려하라', '남을 도와야 너도 도움을 받는다', '우리는 하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미루어라' 등의 격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들을 복종시키려는 사람들이 지어낸 허구일 뿐이다. 그들이 약속한 평화, 화합, 안정, 행복 등 우리가 동경하는 것들 중에 지켜진 게 과연 있기는 한가? 우리는 냉철하게 다음 사실들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남들만 배려하는 사람이 이용당한다는 것을, 양보심은 약점으로 둔갑해 남들이 자신을 이용해 먹도록 만든다는 것을,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이 없는데도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뿐더러 설혹 그런 사람조차도 양심의 가책을 무마시키려는 계산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결론은 명백하다. 공동체가 개인을 희생시켜 얻어내는 이득이란 바로 몇몇 사람만을 위한 이득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물론 공동체는 피하기 어려운 울타리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만 존재한다. 공동체의 이익을 내 이익보다 우선하여 남들에게 유익한 희생을 치르겠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 내 이익을 우선하겠는가?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을 믿는 것을 뜻한다. 나의 진정한 소망과 욕구를 나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고 그런 소망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문제에 나 자신보다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것은 남들이 원하는 것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에 더 많이 전념한다는 것을 뜻한다.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남들의 이익을 위해 힘을 쏟지 말고 나 자신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시켜야만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와 그 규범에 순응하고 요구받는 대로 행동함으로써 안정감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주어진 역할에서 빠져 나오면 즉시 박탈당할 수 있는 한시적인 안정일 뿐이다.
남들이 나를 위해 남겨둔 것보다 내 재량에 맡겨진 삶에서 더 많은 것을 이루려고 애쓰는 소수의 사람들과 달리 나머지 다수의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알아보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물에는 애초부터 주변 세계가 세워 놓은 장애물과,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 속에 세워진 장애물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순순히 따르는 순종하며 복종하라는 가르침, 틀에 박힌 행동규범, 도덕적 상투 문구들, 여태까지 쌓아 온 위신과 안정, 그리고 자칫 남들로부터 인정받던 삶이 흔들리게 될 지도 모른다는 끝없는 두려움이 바로 자신 속의 장애물이다.내가 아는 어떤 부인은 약 10년 전에 남편의 어머니를 받아들였다. 노후를 양로원에서 보 내게 할 수 없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동의했다. 자기도 실제로 그렇게 확신해서가 아니 라, 자기만 생각하고 시어머니를 공경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 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이런 마음은 증오로 변했다. 이 세 사람이 서로에게 애써 가 식적으로 대하면서 살아온 세월 동안, 이 증오심은 꺼질 줄 몰랐고, 세 사람을 고통 속으 로 몰아넣었다.
시어머니는 자신을 받아준 게 고맙고 또 자신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사사건건 모든 일에 끼여들었고, 밤에 부부의 침실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즉시 그들의 방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 있니? 도와줄까? 혹시 싸웠니?"
며느리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지만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친절한 사람으로 인정받 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양보하는 데 익숙해 있었고 그것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다. 욕구불만이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때로 전시용의 위장된 호의를 내보이곤 한다. 그리 곤 친구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끔찍한 이야기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시어머니가 돌 아가실 날만을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만 되면 나는 내 집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거 아냐.우리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모순된 교육을 받아 왔다. 충분히 여유를 두고 참된 자신의 모습을 알면서 자신의 인생관을 세워 나가며 남들에 대해 진실한 배려를 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그렇게 모순된 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정체되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영역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기서 놓쳐버린 것을 만회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두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을 갖춰야 한다.
① 방어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