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CEO의 조건
그레고리 K, 에릭슨 지음 | 청양
제이 S. 워커 - priceline.com (직접 가격을 정하라)제이 S. 워커는 "직접 가격을 정하십시오."라는 소비자 중심의 슬로건을 내세운 온라인 회사, 프라이스라인 닷컴을 창업하여 일약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제이 워커는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와 소매 가격 이하에서 서비스가 만나는 새로운 유형의 전자상거래 시장을 개척했던 것이다. 프라이스라인이라는 이름은 이런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1999년 6월 30일 「배런스」 지가 기업공개를 통해 억만장자가 된 기업인들의 명단을 발표했을 당시 제이 S. 워커는 명단의 맨 앞자리를 장식했다. 이들 억만장자 중 2/3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해서 부자가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제이 워커는 프라이스라인 닷컴의 공개를 통해 67억 달러의 수익을 올림으로써 당당히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프라이스라인 닷컴에서 제이 워커가 내놓은 해결책은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던 수요자 중심의 입찰에서 판매자 중심으로 시각을 전환하여, 제품을 판매하려는 판매자로부터 더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도록 기존의 경매 형식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이를 역경매라고 부른다.
워커가 특허를 낸 이 독특한 사업모형은 '수요 모음(demand collection)' 시스템으로서 고객이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의 양자 택일'에 의해 값을 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사업모형은 물물교환, 옥외시장, 소매, 경매 등의 전통적인 판매·구매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인터넷 세계에서만 가능한 또 하나의 사업모델(특허번호 5,794,207번)로 '구매자 측의 조건부 구매제안을 용이하게 하도록 암호로 지원하는 상업 네트워크 시스템체계와 장치'를 고안하기도 하였다. 이 시스템의 역할은 "구매자의 돈을 판매자가 볼 수 있도록 빨랫줄 위에 널어놓는 행위와 같고, 그 돈에는 빨랫줄에서 떨어진 돈을 줍겠다는 판매자의 동의사항이 기록되어 있다."고 워커는 설명하고 있다.
제이 워커는 이러한 역동적 가격체계인 조건부 구매제안이 향후 상업의 미래를 담당하게 되리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는 역동적인 가격체계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패하기 쉬운 식품이나 재고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상품을 처분하기 위해 수요자만 있다면 그때그때 가격을 바꿀 용의가 있었던 것이다.
이 서비스는 제품을 제공하는 회사와 고객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판매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 과정은 문제의 악순환을 해결해 주는 바람직한 서비스였다. 예컨대 항공권·호텔예약·주택담보 대출자금·최신형 자동차 모델 등과 같이 이 방법이 아니면 팔리지 않거나 사용되지 않을 상품을 프라이스라인 닷컴을 통해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라이스라인은 고객 측에서 제시한 가격을 판매자에게 알려주고, 판매자는 상품의 판매여부를 결정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프라이스라인 닷컴은 사업시작초반 12개월 동안 30만장의 항공권을 판매하여 대다수 항공회사의 항공권 재고 문제의 빠른 해결을 가능하게 했다.(항공사들은 하루 평균 50만석의 좌석을 비워둔 채 이륙함으로써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었다.)
또한 호텔 예약을 시작한 후 3개월 동안 10만 개의 방이 예약되었다. 주택담보 대출을 처음 선보였을 때도 주택 소유자들은 공인된 투자기관에 1억 2,500만 달러를 투자하여 3개월 동안 10억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뉴욕에서 새차를 시험 판매할 때에는 9개월 동안 1,100만 달러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프라이스라인의 발빠른 출발에 힘입어 신규 고객은 하루 평균 5,900명씩 몰려들었으며, 곧이어 이들은 더 많은 상품을 요구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고객들은 컴퓨터·텔레비전·캠코더·스테레오·자동차보험·케이블TV 서비스·신용카드 이자율·선박여행·차량대여·장거리전화 서비스 등을 추가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제이 워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터넷에서는 동일한 시간대에 5만 개의 다양한 가격이 매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객 각자가 가격을 매길 수 있고 동시에 판매자는 이 가격을 받아들일지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굴뚝기업의 환경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프라이스라인은 '인터넷에 적합한 사업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만들어진 기업입니다."
윌리엄 포터 & 크리스토스 컷사코스 - E*TRADE이트레이드(E*TRADE)는 1992년 슈왑(Schwab)과 피델리티(fidelity)사의 주식거래를 취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당시 크리스토스의 절친한 친구들은 그가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 발전 가능성조차 불투명한 신생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덥석 물고는 자신의 직관에 따라 행동하는 '미치광이'라고 빈정거렸다.
크리스토스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지금까지 쌓아온 내 경력과 명성을 전부 걸었습니다. 내가 끝내 실패해버리면 많은 사람들과 멀어지고 경력까지 잃는 데다, 그 후에는 갈 수 있는 자리마저 잃을 거라는 충고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대형 기관투자가들과 동일한 투자 기회를 개인투자가들에게 제공하면서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트레이드는 아메리카온라인(AOL)과 컴퓨서브(CompuServe)를 통해 주식거래를 제시하면서 시작된 소규모 할인 증권회사였다. 그러나 크리스토스가 이 회사의 경영을 담당한 후 4년이 채 되지 않아서, 이트레이드는 세계적인 온라인 개인투자 서비스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고객들은 주식과 채권 그리고 옵션을 투자할 수 있었고, 금융·퇴직 계획·부동산·보험·세금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접속률이 높은 온라인 투자 사이트인 이트레이드는 2000년 봄, 권위 있는 신용평가 기관인 '고메즈 어드바이저(Gomez Advisors)'로부터 최고의 온라인 증권회사로 평가받았다. 크리스토스의 관리하에 있는 이트레이드는 인터넷을 통해 종합적인 무료 투자정보에서 개인재정을 관리하는 강력한 투자 허브화를 추구하는 한편, 모든 종류의 개인투자와 관련을 맺으면서 '디지털 투자의 수단이 되는 회사'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다.
이트레이드의 창업자 윌리엄 포터는 기업가적인 비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82년 내가 트레이드플러스(TRADE*PLUS: 이트레이드의 전신)을 창업했을 때, 사람들은 '증권회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할인된 투자거래를 한다.'는 점을 못 미더워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인터넷을 매우 신중하게 받아들여 인터넷을 기반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사업을 시작할 당시,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상업적인 요소도 충분했습니다. 1992년, 결국 모든 장벽이 무너지면서 이트레이드는 인터넷을 이용한 최초의 투자서비스 회사가 되었습니다."
크리스토스는 신속한 인터넷 거래를 통해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최대 인터넷 은행인 텔레뱅크(Telebanc)의 최고경영자인 미첼 케플란(Mitchell Caplan)과의 만남을 통해, 또 하나의 투자제안을 이트레이드의 메뉴에 추가한 것이었다. 1999년 7월, 불과 6일 만에 18억 달러의 텔레뱅크사의 주식 모두를 사들였는데, 이것은 당시 인터넷 역사에 기록될 만한 최대 규모의 전자상거래였다.
크리스토스는 인터넷 업계의 최고가 되기 위해 신문·잡지·정기간행물·책 등을 일주일에 예닐곱 권씩 읽거나 훑어본다. 아이디어를 고안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다양한 세대, 다양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삶의 속도를 바꾸고 싶을 땐 시집이나 군인들의 전기, 그리고 전쟁이야기를 즐겨 읽는다. 휴식을 취할 때는 흘러간 이류 영화를 보고, 일본식 다도(茶道)를 즐기기도 한다.
인터넷 회사의 리더로서 크리스토스가 정한 관리 지침은 '크게 생각하고, 작게 행동하며, 아주 신속하게 움직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이 말의 의미를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한다.
"우선 여러분은 생활보다 훨씬 큰 비전, 실제로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비전을 가져야 합 니다. 그러나 비전을 실행으로 옮김 땐 그것을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야 하고, 그 다음으 로 필요한 사항은 신속하게, 아주 신속하게 움직이는 속도입니다." "여러분은 수없이 규칙을 어기고 실수를 하면서 다시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실수 를 지적해 준 사람들에게 반드시 보답해야 합니다. 나는 직원들이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생활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생각할 자유, 행동할 자유, 재정적으로 독립할 자유를 줍니 다. 나는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팀의 노력을 통해 성공할 경우 충분한 보상을 해줌으 로써 심리적인 소득뿐 아니라 금전적인 소득도 얻을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레고리 K. 존스 - uBid.Inc그레고리 K. 존스(Gregory K. Jones)는 서른 다섯에 일리노이주 디어필드에 있는 콜센터 아웃소싱 회사, APAC에서 사업개발 부서장이 되었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2년도 안 되는 근무기간 동안 연간 수익을 백만 달러에서 2억 7,600만 달러로 끌어올리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로 인해 1996년, APAC는 메릴린치사에서 주관한 IPO(기업공개) 중 최상위를 차지했고, 「포브스」지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미국기업 중 4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회사를 경영해 줄 최고경영자를 찾고 있는 한 온라인 벤처기업으로부터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컴퓨터 소매 및 다이렉트 판매회사인 크리에이티브 컴퓨터(Creative Computers)사였다. 회사를 신설할 경우에는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만일 사업이 성공한다면 5년 후에 효력이 발생하는 스톡옵션 덕분에 존스는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이다. 설사 '대모험'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었던 기업 운영을 경험한 셈이 된다. 마침내 그는 크리에이티브 컴퓨터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 같은 생각은 나를 몹시 흥분시켰습니다. 만일 고객이 가격을 제안할 수 있는 인터넷 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경매회사와 고객 모 두에게 이익이 되었습니다. 경매회사를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고객 스스로 가격 을 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혁신적이었습니다. 전세계인들이 쌍방향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나는 인터넷을 이용한 경매가 그런 대단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 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그레그, 이 일이야 말로 바로 네가 찾 던 일이야!'"
그레그 존스는 유비드사의 본점을 실리콘밸리가 아닌 일리노이주 엘크 그로브 빌리지로 정했다. 인재를 구하기가 어려운 캘리포니아에 비해 오히려 고급 인재를 채용하기가 수월하다는 점에서 이곳이 사업상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레그와 마찬가지로 회사의 핵심인물들은 단지 급료만이 아니라 도전과 스톡옵션을 위해 한배에 올라탔다.
다른 온라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고객에게는 가치를, 기업에게는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생각과 인터넷과의 관계를 발견했다. 그는 온라인이 시작될 무렵부터, 「이코노미스트」 지가 3년 후에야 '인터넷으로 가능한 가장 혁신적인 일 중 하나'가 되리라고 예측한 온라인 경매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이 사업은 2003년에 19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비드사는 개인간 온라인 거래로 온라인 경매사업을 시작했던 이베이(eBay)와는 달리, 좀더 특별한 방법으로 고객들에게 접근했다. 유비드와 이베이의 경매 형식은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운영방식에 있어서는 다른 기업 대 고객의 온라인 경매장이 되었다.
유비드사는 자산의 최적화를 위협하고 기업의 순이익을 감소시키는, 사용하지 않는 재고품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수많은 회사들의 재고 부담을 덜어주고, 제품들을 더욱 새롭고 개선된 방법으로 선보이는 기회로 작용한다. 유비드사를 통해 기업들은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으며, 재고품에 대해서도 재산세를 납부해야 했던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도 있었다.
그레그 존스는 사업가능성을 평가하면서 유비드사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초과 공급품, 초과 재고품, 리퍼 제품(제품에 하자가 있거나, 하자는 없지만 소 비자가 마음에 안 들어서 교환한 제품을 제조업체에서 적합한 테스트를 거친 후 리퍼 제 품임을 표시해 판매하는 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합니다." "대부분의 제조회사들은 이런 제품들을 주요 유통경로가 아닌 대체 유통경로를 통해 처리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매형태는 매우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 니다. 우리는 모회사의 고객 파일을 기반으로 소비자들에게 우리 회사를 홍보하는 광고 인쇄물과 이메일을 수없이 발송했습니다. 그 후 여러 회사들이 찾아와서 우리 회사와의 거래를 검토했습니다."
그레그 존스는 직원을 채용할 때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직원들을 위한 요구사항이다. "온라인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은 자신이 어떤 환경 속에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소기업이기 때문에 직원들 각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성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해야 합니다. 대기업과는 달리 직원이 겨우 130명인 우리 회사 같은 소규모 회사들은 쓰레기를 치워야 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그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유비드사는 경매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객들로 하여금 인터넷 사이트 한가운데에 전시된 상품 목록을 보여주는 한편, 창고에 쌓아놓은 재고품들을 24시간 내에 실어 나를 수 있도록 대기해서 입찰에 응하도록 한다.
유비드사는 1997년 12월에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하면서 각 회사들이 초과 생산한 컴퓨터 제품(데스크탑 컴퓨터·랩탑컴퓨터·레이저 프린터·디지털 카메라 등)과 고객들이 내놓은 전자제품(CD레코드 체인저·홈 시어터 시스템·스피커 시스템·캠코더·전화기·VCR·TV/VCR 세트), 가정용품, 레저용품(주방용품·가구·계절용품·개인용품·야외용 기구 등)을 판매하는 자리가 되었다.
온라인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6개월 동안 533,000명의 회원들이 매달 200만 번 이상 유비드 사이트를 방문했고, 'uBid'라는 상표로 등록한 나스닥 주식거래에서 1998년 12월 유비드의 매수가격이 주당 15달러에서 출발해 불과 한달 만에 주당 200달러로 급상승하여 당시 주식공모에서 세 번째로 성공한 회사가 되었다.
인터넷이 새로운 발명이라면, 유비드의 토대가 되는 것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과 가격을 제공한다는 전향적인 자세이다. 그레그는 경매물로 나올 물건이 무엇인지 미리 예측해서 실수를 피해 나갔다. 여기에는 그의 오랜 마케팅 경력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와 같이 경매를 통한 신속한 제품 이동은 제조 회사의 재고품을 빠르게 감소시켜 주고 가격할인을 최소화시켜 주는 한편, 그들의 주요 유통 경로에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한 가지 물건으로 경매를 시작했던 유비드는 지금은 수 백 가지에 이르는 재고품을 판매하는 단계까지 왔다.
유비드사는 입찰 과정에서 직관에 반하는 전략을 이용한다. 즉 입찰 가격을 낮게 시작하여 더 많은 수의 입찰자를 끌어들이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입찰자에게는 참여 회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사이트를 운영함으로써 고객들이 경매에 더 열의를 보이도록 유도하였다.
그밖에 제품에 대한 품질보증도 한층 더 강화시켰다. 유비드사에서 취급하는 모든 제품은 일단 유비드의 창고에 들어오면 검사부터 받는다. 이와 관련하여 그레그 존스는 '경험에서 얻은 법칙'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내 집에 들여놓고 싶지 않은 제품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제품을 구입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객이 흔쾌히 구입하고 싶어하지 않는 제품이라면 나 또한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제품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