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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종말 세계의 탄생

에르베 켐프 지음 | 아포리아
서구의 종말 세계의 탄생

에르베 켐프 지음

아포리아 / 2013년 4월 / 184쪽 / 15,000원





무한한 대지 위에 맨발로 서서

인간의 사고는 자신의 역사를 숫자로 표현한다. 150억~200억 년 전, 빅뱅, 우주의 탄생. 45억 년 전, 지구의 탄생. 10억 년 전, 생명의 출현. 65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하고 포유류가 지구를 지배한다. 포유류 가운데 유인원이 구분되기 시작한다. 4000만 년 전 최초의 인류가 남긴 흔적은 훗날 미얀마에서 발견된다. 유인원 중 일부는 아프리카로 이주한다. 이제 다시 시간이 흐른다. 700만 년 전 인류는 영장류 사촌에게서 떨어져 나온다. 이제부터 역사는 아프리카에서 이루어진다.

인류의 진화는 기후의 변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기후는 식생과 환경을 결정한다. 과학자들은 그것을 ‘생태적 지위’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한 생물종의 서식지, 먹이, 다른 생물종과 맺는 관계이다. 수천 년 동안 지구는 차가워졌다가 따뜻해졌다가 다시 차가워진다. 지구의 불규칙한 행로에 따라 기후는 급격히 요동치면서 생태적 조건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것이 진화 압력이다.

인류는 도구를 사용해서 환경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때가 200만 년 전이다. 170만 년 전 지구가 다시 차가워진다. 아프리카의 숲 면적이 줄어들고, 드디어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한다. 직립 인간은 낮은 생태적 지위에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 사냥을 하고 채집을 하며, 사바나와 숲, 미지의 땅이 어디까지인지 탐험한다. 인간의 조상은 아프리카 대륙 밖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그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으로 통하는 관문인 팔레스타인을 거친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에서 그들을 다시 발견한다.

그들은 이제 유럽으로 향한다. 약 100만 년 전의 일이다. 모두가 아프리카를 떠난 것은 아니다. 나머지는 아프리카에 남아 그곳에서 불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불은 중요한 발견이다.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이렇게 세 대륙에서 인류의 진화와 분화가 동시에 진행된다. 아시아에서는 호모 에렉투스가, 유럽에서는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한다. 그러는 사이 인류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화석과 유전학은 현생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대다수의 고생물학자들은 약 7만 년 전 몇천 명의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지구 전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설을 지지한다.

그들은 왜 아프리카를 떠났을까? 아마도 7만 4000년 전 수마트라에서 거대 화산 토바가 폭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토바 화산의 대분화에 맞서는 방법은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찾아 그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를 떠난 이들이 생존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비슷했다. 그들 중 일부는 아시아로 향한다. 5만 년 전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를 정복한다. 그리고 몇천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곳에 먼저 살고 있던 거대 포유류를 멸종시킨다. 호모 사피엔스는 수만 년 전부터 아시아에서 진화해오던 사촌뻘 아종(亞種)을 밀어내기도 했을 것이다.

반대 방향으로 떠났던 사람들은 1만 3000년 전에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기 시작한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사람들도 있다. 유럽 반도를 고립시켰던 빙하가 기온 상승으로 녹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들은 유럽의 네안데르탈인과 멀찍이서 동거를 시작했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중요한 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줄 알았기 때문에 진화라는 거대한 로또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연의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과 관습을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때부터 아나톨리아, 멕시코, 안데스 산맥, 중국 북부와 남부, 아프리카 등 지구 곳곳에서 농업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인류는 생존을 위해 식물을 길들여 번식시켰다. 그것을 ‘신석기 혁명’이라 부른다.

문화는 더욱 정교해졌는데, 그것은 잉여 생산물이 발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류층(‘불평등’도 신석기 시대의 발명이다)은 잉여 생산물을 종교 의식이나 과시용으로 사용했다. 신석기 농경 사회에서 불평등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구성원들의 평균적인 삶은 다른 사회의 구성원들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에너지 소비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에 가용 에너지원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나무가 전부였다.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사냥 능력과 사냥감의 수에 따라 결정되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거기에 농작물을 키울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역사학자들은 신석기 시대에 1인당 가용 에너지량이 연간 1만~1만 5,000킬로칼로리였을 것으로 추산한다.



엄청난 격차, 대분기

여러 세계 중 하나였던 유럽: 아주 오랫동안 유럽은 세계의 한 지역에 불과했다.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될 무렵 지구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중국 북부에서 석탄 채굴이 시작되면서 화석연료를 최초로 사용한 나라가 바로 송나라(960년~1279년)이다. 1405년 명나라 영락제는 정화 장군에게 대원정을 명한다. 정화는 인도차이나 반도와 인도를 탐험하고 몰디브 제도와 페르시아 만을 거쳐 동아프리카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1433년 정화가 세상을 떠나면서 중국의 대원정도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은 왜 바다로 나아간 것일까? 모순적인 설명이겠지만 그들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십자군 운동으로 향료의 맛을 알게 되었다. 당시 향료 무역은 터키와 아랍 상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값비싼 향료는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기 때문에 다른 항로를 찾는 것은 대상과 선원에게 큰 자극이었다. 대상은 큰돈을 약속하며 모험심에 불타는 선원들을 고용하곤 했다. 아프리카 대륙을 빙 돌아가는 것은 길고도 힘든 여행이 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대서양을 건너는 것이다. 15세기 말과 16세기 초, 수백 척의 배(정화의 배보다 훨씬 작은 배)가 아프리카 해안을 누비고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며 세계 일주를 했다. 그 모든 일이 겨우 한 세대 만에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세계는 한계가 분명한, 그러나 서로 연결된 땅이 되었다. 유럽 사람들은 향료 대신 금을 발견했다. 또 아시아와 이슬람 제국이 아직 모르는 광활한 땅을 발견했다.

유럽인들은 왜 세계를 뒤흔들었을까?: 유럽인들은 배를 타고 나아가 세계를 탐험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면서 처음으로 세계무대에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유럽이 다시 탄력을 받은 것은 18세기 말에 시작된 산업혁명 덕분이다. 그때부터 유럽은 막강한 헤게모니를 손에 쥐게 된다. 참고로 대분기의 주변에 머물렀던 유럽인들은 그들이 중국을 비롯한 다른 열강에 비해 힘이 약하고 더 나아가 열등하다는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인도는 중국 못지않게 산업이 발달하고 부유한 나라였다. 1700년 인도는 세계 최대의 섬유 생산국이었고 그것의 많은 양이 영국으로 수출되었다.

그렇다면 동시대 중국이나 인도보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던 유럽이 19세기에 들어서 뛰어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문명으로 거듭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유럽 문화다. 거기에는 개인주의, 기독교 사상에서 유래된 시간의 개념(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단선적이고 점진적인 시간), 고대 그리스에서 출발하여 데카르트의 철학으로 재탄생한 이성의 우위, 창의력, 탐욕, 집착에 가까운 이익 추구 등이 포함된다. 한편 경제학자들은 농업기술의 혁신을 꼽는다.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자 인구가 증가했고, 남아도는 자본과 노동력이 산업화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중국과 인도의 국내 혼란이 원인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두 국가는 에너지와 복지 정책을 국내 안정을 도모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수립했고, 유럽과는 달리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예의 주시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영국이 그 길로 주저 없이 들어선 이유를 알아볼 차례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생산 능력은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였다. 가용 자원, 특히 에너지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은 두 가지 요소 덕분에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것은 석탄의 발견과 200년 전 해상 탐험이 문을 열어주었던 신대륙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광활한 천연자원의 보고였다. 그렇게 본다면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동양과 서양이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생태학적 기회가 달랐기 때문인 것으로 설명된다. 석탄과 아메리카 대륙이 없었다면, 유럽 경제는 천천히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유럽은 큰 도약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세상은 빠른 속도로 많은 부를 축적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나머지로 양분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벌어지는 격차: 대분기는 인류 역사에서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을 낳았다. 평균적인 삶의 조건이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이게 된 것이다. 불균형을 보여주는 지수는 많다. 현재 미국인 한 명이 소비하는 에너지양은 인도인 한 명이 소비하는 양보다 열 배나 많다. 독일의 1인당 생산성은 니제르보다 무려 마흔일곱 배나 높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1인당 GNP는 일곱 배까지 차이가 난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균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기라도 한 것마냥 나라와 나라를 비교하면 또 다른 현상을 놓칠 위험이 있다. 한 국가 내에 존재하는 불평등이 그것이다.



위험한 추종, 대수렴

도약과 추격: 19세기와 20세기 후반까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일본, 러시아는 힘찬 경제성장을 거두었고, 그 덕분에 세계 리더의 자리에 올랐다. 1950년부터 20년 이상 선진국 경제는 매년 5퍼센트씩 성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나라들도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라틴아메리카와 막 독립을 쟁취한 아프리카 신생국들이 선진국과 동일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대에는 큰 변화가 일어난다. 아프리카 경제는 늪에 빠지고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서양과 일본처럼 침체되었다. 반면 중국과 인도는 성장 경쟁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양국의 경제성장률은 크게 신장되었고 때로는 10퍼센트를 훌쩍 뛰어넘기도 했다. 그러자 주변 국가와 원자재를 공급하는 나라도 덩달아 빠른 경제성장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1992년부터 2010년까지 세계 GDP는 75퍼센트나 성장했다. 거기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국가는 우리가 ‘신흥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이다. 반면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은 크게 위축되었다. 그렇게 하여 세계 경제는 다시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서양과 일본이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에 50퍼센트 밑으로 떨어졌다. 아시아(일본 제외)가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에 15퍼센트를 넘지 못했지만 2010년에는 30퍼센트에 근접했다. 신석기 시대가 끝나면서 시작되었던 대분기는 이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대분기와는 반대 방향의 현상이 일어난다. 벌어진 격차를 좁히는 ‘대수렴’이 시작된 것이다. 200년~300년 동안 지속된 유럽의 독주가 끝난 뒤 역사의 물결은 정상적인 흐름을 되찾았고 서양의 패권은 해체되었다. 불평등이라는 독: 세계 불평등, 즉 국적에 상관없이 가장 부유한 사람들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간의 격차는 50년이나 100년 전에 비해 지금이 훨씬 크다. 또 어떤 국가의 국내 불평등보다도 여전히 훨씬 크다. 그것은 두 번째 현상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선진국(특히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과 신흥국에서 국내 불평등이 1980년대부터 다시 심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은 1978년부터 높은 경제성장률만큼이나 불평등이 가속화되었고, 결국 불평등의 세계 챔피언이라고 할 미국보다 심각한 빈부 격차를 겪고 있다. 이렇게 서로 모순적인 두 흐름이 지난 20년간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후진국, 특히 중국과 인도의 실질소득이 증가해서 국가 간 평균 불평등은 줄어들었지만, 각국의 국내 불평등이 증가함으로써 그 효과가 상쇄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불평등은 지극히 심각하다. 상위 1퍼센트가 세계 소득의 14퍼센트를 차지하는 반면, 하위 20퍼센트는 1퍼센트밖에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약해보자. 서양은 산업혁명을 일으켜 세계를 신석기 시대에서 벗어나게 했고 변화시켰다. 그리고 몇십 년 전부터 다른 지역의 추격을 받기 시작했다. 서양의 헤게모니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지역 간 평균 소득의 큰 격차라는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상황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평균적인 불평등은 줄어들어도 국가 내 불평등은 오히려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세계 불평등은 여전히 매우 심각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국가를 기준으로 놓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무역의 증가와 더불어 20세기 중반부터 나타난 문화 세계화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세계 사회’는 이미 형성되었다.



탈성장 시대

로스토의 마법의 세계: 1970년에서 2011년까지 세계 경제는 연평균 3.4퍼센트의 속도로 네 배 성장했다. 공식 기구에 속한 경제학자들이 굳건히 믿고 있는 것처럼 그 속도가 계속 유지된다면 2050년까지 경제는 다시 네 배 성장할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적용한 원리는 단순하다. 이미 벌어진 일은 또 벌어지리라는 것이다. 그런 시각의 선구자가 로스토이다. 로스토는 ‘복리계산식의 큰 미덕’을 주장했다. ‘복리계산식’이란 일정 기간의 이자가 원금에 더해져서 원금이 불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생산을 두 배로 늘린다는 것은 이전까지 소비된 천연자원과 같은 양의 천연자원을 소비하고 그만큼의 오염과 쓰레기를 발생시킨다는 뜻이다. 세계 경제가 네 배 성장한다는 말은 곧 환경 파괴와 각종 오염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말이다. 지구의 생태계 균형이 과연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을까? 과거의 성장 곡선을 미래에 적용하고 있는 예측 전문가들은 그런 질문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비싼 에너지: 로스토가 생각한 발전과 예측 전문가들의 잠재의식에 깃들어 있는 발전 중 이상하게도 빠진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에너지다. 어떤 나라가 시동을 걸고 이륙해서 ‘복리계산식의 미덕’을 알게 되는 것은 농업 생산성, 국가의 추진력, 대규모 인프라 건설 등 수많은 도구들 때문이고, 말하자면 거기에 에너지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자원이 출현함으로써 앞으로 얼마간은 석유의 생산 감소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날이 증가하는 세계 에너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는 이론의 여지가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으로서는 에너지자원이 부족할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생산량은 많이 증가할 수 없으며 에너지 가격도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점이다.

자원 소모를 바탕으로 한 성장: 에너지 가격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변화의 일각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공산품의 부품에 사용되는 수많은 금속과 광물도 100년 전부터 소비량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피크오일이 현실이 된 것처럼 구리, 안티몬, 디스프로슘 등과 같은 금속도 10년에서 20년 안에 생산 한계점에 다다를 것이다. 생산 한계점을 맞는 또 다른 광물은 인이다. 농산물 생산에 꼭 필요한 비료의 원료인 인은 2030년이면 생산의 정점을 맞는다. 조금씩 숨통을 조여 오는 이 상황은 세 번째 문제를 낳는다. 광물자원의 가격이 상승하고 광물자원 채굴에 필요한 에너지양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광물 생산으로 초래되는 환경 악화도 더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 EROEI(Energy return on energy invested) 감소, 환경 위기 심화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결국 성장의 조건을 유지하려는 것은 환경 비용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경의 벽: 여러 자원이 생산 한계점을 맞이하리라는 전망은 인류가 자원 고갈의 경계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큼직큼직한 생물권들에서 점점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불균형(그중 기후변화가 첫 번째 증거다)은 지구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능력의 한계선에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구의 모든 지역이 생태계 악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흥국의 높은 경제성장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6년 중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미국을 넘어선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도 성장이 둔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와 물질 소비수준을 낮추지 않는다. 결국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은 2000년부터 셰일가스 개발에 나섰는데, 셰일가스 개발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것은 미국 영토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 해당되는 말이다. 셰일가스 개발로 매출되는 메탄의 양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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