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부메랑

마이클 루이스 지음 | 비즈니스북스
부메랑

마이클 루이스 지음

비즈니스북스 / 2012년 2월 / 287쪽 / 15,000원



제1장 툰드라의 월스트리트_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한 금융왕국, 아이슬란드의 붕괴



2008년 10월 아이슬란드가 사실상 파산한 직후, 나는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IMF의 한 인사를 만났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더 이상 나라가 아닙니다. 이제 하나의 헤지펀드일 뿐입니다." 2003년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의 자산은 100억 달러 정도로 이는 아이슬란드의 GDP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3년 6개월 뒤 이들 은행의 자산은 1,400억 달러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급속한 금융 시스템 확장'이었다. 여기에는 은행이 아이슬란드 국민에게 주식과 부동산 구입 자금을 무분별하게 대출해 주면서 주식과 부동산 가치가 급등한 것이 일부 원인으로 작용했다.



2003~2007년 아이슬란드 주식 시장의 가치는 9배가 되었고, 레이캬비크의 부동산 가격은 3배 뛰었다. 2006년 아이슬란드 일반 가정은 3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부유해졌는데, 이는 투자금융 산업과 관련이 있다. 2006년 3월 블룸버그는 이런 헤드라인 기사를 내보냈다. "아이슬란드의 억만장자 토르(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천둥의 신)가 헤지펀드로 미국에 맞서다." 무분별하게 해외 자본을 차입했던 아이슬란드는 국제 규모의 은행 세 곳이 파산하자 그제야 금융계의 국제적인 야심에 부정적 측면이 있음을 깨달았다. 남의 돈으로 흥청거렸던 이 나라의 30만 시민은 은행 손실 1천억 달러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했다. 손실액은 1인당 약 33만 달러에 달했다. 또한 기묘한 외환투기로 인해 아이슬란드 국민 개개인이 입은 손실은 수백억 달러에 달했고, 여기에 주가마저 85% 폭락하는 바람에 더 큰 손실이 발생했다. 결국 아이슬란드의 부채는 GDP의 8.5배에 이르렀다. 부채에 치어 죽을 지경인 미국도 3.5배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슬란드 은행이 입은 손실은 어찌나 엄청났던지 파산한 지 몇 주 안되어 인구의 1/3이 이민을 고려할 정도였다.



2008년 10월 이전까지만 해도 아이슬란드의 저명한 은행가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 그들은 해외로 도피했거나 은신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아이슬란드인들이 앞을 다투어 위험한 투기에 뛰어들었다. 금리가 15.5%에 이르고 자국 통화인 크로나화의 가치가 상승하자, 무언가 사고 싶었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이들은 엔화나 스위스 프랑화를 빌려서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크로나화가 계속 상승했기 때문에 이들은 엔화에 3% 이자를 지불하고도 외환 트레이드로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은행에서 외환 트레이딩을 했다는 마그누스 울라프손이라는 젊은이의 말을 들어보자. "어부들은 대부분 외환 트레이딩으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런데 외환 트레이드로 너무 많은 돈을 버는 바람에 모두들 어업을 제쳐두고 금융 거래에 매달렸죠." 원래 아이슬란드의 주 산업은 수산업이다. 그런데 몇몇 어부들이 돈을 벌자 외환 트레이드는 점점 더 많은 어부들에게로 확산되었다. 그때만 해도 외환 트레이드는 누워서 떡 먹기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사실상 빌린 돈으로 주택과 자동차를 구입했다. 하지만 2008년 10월 이후 크로나화가 폭락하면서 그들이 갚아야 하는 엔화와 스위스 프랑의 가치는 몇 배로 상승했다.



아이슬란드의 흥망성쇠 주역은 중앙은행 총재인 다비드 오드손이다. 1980년대에 그는 저명한 통화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에 심취했다. 그는 아이슬란드 국민들에게 자유를 주는 길을 모색했고, 그것은 모든 종류의 정부 통제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총리가 된 이후 그는 세금을 줄이고, 산업을 민영화하고, 거래를 자유화했다. 마지막으로 2002년에는 은행마저 민영화했다. 마침내 총리 노릇에 싫증이 난 그는 스스로 중앙은행 총재에 취임했지만 본래 시인이던 그는 금융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아이슬란드 파산 이후 그는 모든 인터뷰 요청을 물리치고 은행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다. 정부 고위 관리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가 시를 쓰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슬란드인들은 월가의 첨단 금융기법 따위에 손대지 않고 1,100년 동안 외딴 섬에서 살아왔다. 2003년 그들이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와 동일한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아이슬란드인들은 투자금융 전문가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어설픈 지식밖에 없었다. 그들은 돈을 대출해 기업을 활성화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투자금융 전문가처럼 친구와 가족이 원하는 물건을 구입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주었다. 자금을 대출받은 사람들은 베벌리 힐즈의 콘도, 영국의 축구팀, 덴마크의 항공사, 노르웨이의 은행, 그리고 인도의 발전소 따위를 매입했다. 아이슬란드인들이 미국 금융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즉, 자산 가격이 오를 때 차입한 돈으로 최대한 많은 자산을 매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슬란드가 미국을 모방한 것은 또 있다. 그들은 외부의 의견에 귀를 틀어막았다. 사실은 아이슬란드인들만 빼고 모두가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 애를 썼다. 2006년 초 덴마크 최대 은행 단스케 방크의 애널리스트 라르스 크리스텐센은 아이슬란드 금융 시스템이 광적인 속도로 급성장해 파산이 불가피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슬란드인들의 분노만 사고 말았다.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내 말을 이유 없는 모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덴마크 사람이고 당신이 아이슬란드를 향해 그런 말을 하는 건 우리가 아주 잘하고 있기 때문이지'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1944년 덴마크에서 독립을 선언했는데, 아이슬란드인들은 역사적 감정을 빌미로 덴마크 사람들이 질투를 한다고 여긴 것이다. 단스케 방크는 런던의 헤지펀드 회사들에게 아이슬란드의 매도 포지션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아이슬란드의 은행 임원들은 부풀린 가격으로 서로 자산을 매입했고, 수백억 달러를 빌려와 그것을 다시 임원과 그 가족에게 대출해 주었다. 그들은 그 자금으로 엄청난 양의 해외자산을 무턱대고 사들였다. 런던의 트라팔가 에셋 매니저스의 테오 파노스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슬란드의 신출내기를 표적으로 저급한 자산, 가령 이류 항공사와 하급 소매업체들을 팔아먹었죠. 그 자산들은 전부 최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의 지도자들은 진실을 알려주는 목소리를 왜곡해서 받아들였다. 나는 아이슬란드 총리였던 게이르 호르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호르데는 외국인들이 아이슬란드에 자본을 맡겼고 아이슬란드는 그것을 좋은 용도에 투자했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그런데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면서 외국인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자본 회수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요점은 아이슬란드는 스스로의 무모함 때문이 아니라 세계적인 쓰나미로 붕괴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쓰나미가 왜 퉁가(남태평양 섬나라)가 아니라 아이슬란드를 덮쳤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제2장 그들은 새로운 수학을 창조했다_

싸구려가 되어버린 국가신용, 그리스의 위기



내가 아테네에 도착한 것은 폭동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당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가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낮추는 바람에 그리스 국채는 모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IMF와 유럽 중앙은행은 인구 약 1,700만 명의 나라 그리스에 1,450억 달러를 대출해주기로 합의하였다. 그것은 좋은 소식이었지만 장기 전망은 암담했다. 그리스 통계 전문가들은 약 4천억 달러에 이르는 미상환 국채 외에 정부가 8천억 달러 이상의 연금부채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부채를 모두 합하면 그리스 근로자 1인당 25만 달러에 달하는 수준이다. 더구나 그것은 공식적인 수치일 뿐 실제 상황은 더 심각했다. IMF의 한 고위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지출하기로 합의한 액수는 알았지만 아무도 실제로 지출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것처럼 그리스인은 어둠 속에서 정부를 어마어마한 돈 보따리로 만들어 가급적 많은 시민에게 한몫씩 안겨주고 싶어 했다. 물론 정부를 돈 보따리로 만든 것은 막대한 대출자금이었다. 그리고 지난 12년 동안 그리스의 공공부문 실질 임금은 2배 올랐다. 이는 공무원들이 챙기는 뇌물은 계산에 넣지 않은 수치이다. 그리스 공무원의 평균 임금은 민간 부문의 거의 3배나 된다. 가령 국영철도는 연간 임금이 4억 유로에 기타 지출이 3억 유로인 데 비해, 연간 수익은 1억 유로에 불과하다. 그리스인이 중노동으로 분류한 직종의 정년은 남성이 55세, 여성이 50세이다. 이때부터 국가에서는 연금을 넉넉하게 퍼주기 시작하는데 600개 이상의 직업이 중노동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중에는 미용사, 라디오 아나운서, 웨이터, 음악인 등이 있다.



그리스의 공공의료제도는 물품 공급을 위한 지출이 유럽 평균보다 훨씬 많다. 간호사나 의사들은 퇴근할 때마다 종이수건, 기저귀 등 물품 보관실에서 꺼내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한 아름씩 안고 간다. 어디까지 낭비이고 절도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행히 그리스 은행가들은 나무랄 데가 없다. 유럽 은행가들 중에서 사실상 그들만이 비우량 주택 담보부 대출을 매입하거나, 한도액까지 대출을 받거나, 막대한 보수를 챙기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커다란 문제는 그리스 정부에 약 300억 유로의 대출을 해주었다는 점이다. 정부에 빌려준 돈은 도난을 당하거나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스에서는 은행이 나라를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나라가 은행을 망하게 했다.



1980년대 내내 그리스의 금리는 독일보다 10% 높았다. 그리스가 부채를 상환할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말 그리스에게 기회가 생겼다. 자국 통화를 없애고 유로화를 채택할 기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가 유로존의 다른 국가가 갚아줘야 할 만큼 빚을 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특히 예산적자가 GDP의 3% 미만이고 인플레이션이 독일 수준임을 보여주어야 했다. 결국 그리스는 2000년 한바탕 통계를 조작한 끝에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스 정부는 예산적자를 낮추기 위해 온갖 종류의 지출(연금, 방위비 등)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았다. 또한 인플레이션을 낮추고자 공공재의 가격을 동결하고, 가스, 주류, 담배에 대한 세금을 낮추는 등 다양한 조치를 취했다.



투자은행 살로먼 브러더스의 분석가 미란다 크사파는 이렇게 말했다. "살로먼에서는 당시 그리스 통계청장을 마술사라고 불렀습니다. 인플레이션과 적자, 부채를 마술처럼 사라지게 한 능력 때문이었죠." 2001년 마침내 그리스는 유럽 통화연합에 가입했고, 부채에 대한 유럽의 암묵적인 보증을 얻어냈다. 이제 그리스는 대략 독일과 동일한 금리, 즉 18%가 아닌 5%로 장기기금을 빌릴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그들이 한 일은 장부조작이었다. 채권자들은 그리스에 대한 대출을 유럽연합이 보증한다고 생각했고, 그리스 외부에서 누구도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그리스는 실제 재정 상태를 숨길 수 있었다. 그리스 내부에는 경고를 발할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말 그리스 북동 지역 아토스 산에 위치한 바토페디 수도원이 별로 가치가 없는 호수를 사들여서 그것을 훨씬 가치가 높은 국유지와 교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수도사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일부 사람들은 정부 관리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뇌물에 대한 증거는 없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바토페디 스캔들은 그리스의 집권당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스캔들로 인해 옛 정당(신민주주의당) 대신 집권한 새로운 정당(사회주의 운동당)은 정부 금고의 돈이 예상보다 훨씬 적은 것을 발견했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예산 적자가 대단히 과소평가되었으며, 수치를 바로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리스 채권을 매입하려 했던 연기금과 국제 채권 기금은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리스는 새로 지불해야 하는 금리가 오르는 바람에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이제 문제는 '그리스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것인가?'이다. 그리스인이 허리띠를 졸라맨다면 부채를 상환하고 유럽연합에서 좋은 지위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 내부에 그렇게 할 만한 자원이 과연 존재할까? 아니면 그냥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게 나을까? 표면적으로는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것이 미친 짓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곧 그리스의 모든 은행이 파산하고 정부는 수입품 대금을 지불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이를 지불하기 위해 또 다시 돈을 빌릴 경우 훨씬 높아진 금리 탓에 여러 해 동안 고통에 시달릴 게 뻔하다. 안타깝게도 그리스는 하나의 집단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리스는 원자화한 입자들의 집단처럼 행동하며 그 입자들은 저마다 공익을 희생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 익숙하다. 적어도 정부가 그리스 시민의 생활을 되살리기로 결심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단 하나다. 그것은 한 번 상실해버린 시민의식을 실제로 되살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제3장 구제금융의 덫에 갇힌 켈틱 호랑이_

부동산 시장 붕괴로 드러난 금융 시장의 거품, 아일랜드



2010년 11월 아일랜드 정부는 국민들에게 손실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느라 바빴다. 부채 관련 수치들은 기가 막힐 정도였다. 2년 전 정부가 유동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주장한 앵글로아이리시 뱅크는 340억 유로의 손실을 입었다고 털어놓았다. 340억 유로! 단지 한 은행의 수치가 말이다. 이 은행의 대출액은 720억 유로에 불과했고 이는 대부분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대출해 준 것이었지만, 그 은행이 투자한 달러는 절반을 잃었다. 또 다른 두 대형 은행 뱅크오브아일랜드와 아이리시 뱅크스는 여전히 추악한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부동산 개발업자는 물론 주택 매입자들에게 막대한 액수를 대출해 준 이들 은행이 입은 손실액은 앵글로아이리시의 손실액과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런던의 헤지펀드 관리자 테오 파노스는 지적한다. "앵글로아이리시 뱅크는 세계 최악의 은행입니다. 아이슬란드 은행보다 더 나빴죠." 아일랜드의 경제학자 모건 켈리는 모든 아일랜드 은행의 부동산 관련 손실액이 1.060억 유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아일랜드의 4년 조세 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어마어마한 손실을 감안하면 아일랜드 경제 전체가 붕괴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제가 붕괴된 이후 많은 아일랜드인이 고국을 떠나고 있으며 실업률은 14%에 이르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일랜드는 독일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지금은 빌리는 것 자체가 어렵고 설령 빌리더라도 훨씬 높은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아일랜드의 예산적자는 현재 GDP의 32%로 유로존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신용분석전문회사들은 아일랜드가 전 세계에서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가능성이 세 번째로 큰 나라로 본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만 해도 320만 명의 인구 가운데 100만 명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는 나라였다. 하지만 새천년이 시작될 무렵 아일랜드의 빈곤율은 6% 이하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여기에는 무역 장벽 제거, 무료 공공 고등교육 실시, 낮은 법인세율 등 여러 가지 이론이 분분하다. 1980년대 도입한 낮은 법인세율로 아일랜드는 외국 기업을 위한 세금 천국이 되었다. '켈틱 호랑이'는 세금을 낮춘 후에 아일랜드가 얻은 경제적인 힘을 묘사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되었다. 아일랜드인은 자신들이 느닷없이 크게 성공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정상적인 경로가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비정상적인 가난뱅이에서 비정상적인 부자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금융 시장이 모든 신청자에게 사실상 무제한 신용을 제공했을 때, 아일랜드인은 심리적으로 극히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10년 동안 마법의 주문 같은 것에 사로잡혀 돈더미를 앞에 놓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