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
제임스 하킨 지음 | 더숲
니치
제임스 하킨 지음
더숲/ 2012년 1월 / 327쪽 / 16,000원
1장 고래 뱃속을 빠져나온 대중_ 주류 문화의 흥망성쇠
2009년은 멸종의 해였고, 영국의 번화가에도 불황의 바람은 어김없이 불어왔다. 오랫동안 시장을 장악했던 주요 유통업체들이 잇달아 파산 신청을 했고, 한때 번성했던 매장들이 문을 닫았다. 소매업체 울워스(Woolworths)는 한때 영국 번화가에서 접할 수 있는 가장 친숙한 업체였다. 하지만 매출 급락과 3억 8,500만 달러의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1월 5일 마지막 807번째 매장의 불을 끄면서 한 세기에 걸친 영업 활동을 마감했다. 울워스는 한때 중심가 상점의 전형이었고, 많은 영국인들이 처음으로 쇼핑이라는 경험을 한 곳이다. 울워스는 모두를 위한 공간이었다. 다른 곳에는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하더라도 울워스에만 가면 무엇이든 다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여름 이스트런던의 한 울워스 매장에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그 매장에서 일했거나 쇼핑했던 개인적인 추억거리를 가지고 조의를 표했다. "픽앤믹스(pick'n Mix)가 정말 그리울 거야. 삼가 울워스의 명복을 빕니다." 행사명인 픽앤믹스는 추모식 명칭으로 참 적절해 보였다. 픽앤믹스는 울워스의 가장 유명한 제품 라인이 된, 초콜릿이며 사탕 따위를 모아놓은 코너 이름이었다. 고객들이 각종 사탕이 담겨 있는 둥그런 통에서 원하는 것을 골라 종이봉투에 담는 코너였다. 콜라맛 사탕, 눈깔사탕, 젤리사탕, 젤리빈, 낱개로 포장된 사탕 등이 수북했다. 울워스는 그런 곳이었다. 그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자유 입장권 같은 존재였다.
원래 울워스는 1879년 미국에서 싸구려 잡화점으로 시작했다. 울워스는 제조업자로부터 막대한 양을 구매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중간 상인들을 배제함으로써 가격경쟁력을 갖추었다. 영업 전략으로는 먼저 사람들을 가게 안으로 끌어들인 후,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확장함으로써 고객을 사로잡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울워스는 한 세기에 걸쳐 미국과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79년 세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미국에선 월마트와 코스트코, 영국에서는 테스코와 아스다와 같은 대형 슈퍼들이 식료품 판매라는 본업을 넘어서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갖추게 되자 울워스의 운명은 비극적 결말로 확정되었다. 월마트에 방문한 쇼핑객들은 필요한 식품을 모두 사고 난 후, 무엇이든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으리라 확신하면서 거대한 공간을 느긋하게 돌아다녔다. 번화가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은 파운드랜드나 달러제너럴 같은 이른바 천원숍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할인점을 선호했다. 울워스의 충성고객들이 이런 새로운 유형의 소매점으로 이탈을 한 것이다.
울워스 파산의 원인은 사후분석을 통해 어렵지 않게 규명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울워스 같은 번화가 잡화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슈퍼마켓과 쇼핑몰, 온라인 소매상들은 모든 종류의 브랜드와 제품을 충분히 모아 놓을 만큼 성장하면서 각자 자족적인 세계를 구성했다. 울워스는 이들과 경쟁하기에 충분한 규모를 갖추지도 못했고, 명확하게 고유의 제품군을 갖춰서 더욱 저렴하게 제공하는 데 집중하지도 못했다. 울워스는 샌드위치처럼 중간에 껴서 이리저리 치인 것이다. 2009년 몰락 위기에 처한 기업은 울워스만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소매업체인 자비가 매장을 닫았고, 미국은 가장 거대한 공룡기업인 GM이 그해 6월 파산했다.
울워스는 100년 동안 영국 번화가에서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했고, 평범한 것들을 제멋대로 섞어서 제공하는 것에 전문화된 업체였다. 우리도 이런 픽앤믹스 방식이 좋다고 여겼다. 울워스를 비롯한 거대 기업들은 대중을 뱃속에 가두어놓고 능수능란하게 많은 것을 공급하여 주었다. 오랫동안 대중은 거대 기업이 제공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결국에는 출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모든 대중을 얻으려고 사력을 다하는 과정에서, 많은 거대 기업들은 한꺼번에 너무나도 많은 일을 벌이는 바람에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2장 틈새의 진화_ 고객층을 겨냥한 세분화 전략
의류업계의 거인 갭(GAP)은 주류 문화의 파멸에 직면했던 소매업체이다. 젊은이들이 갭의 매장을 떠나가던 2000년 무렵 갭은 평균적인 고객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년의 위기 속에서 갭은 동분서주했다. 처음에는 최신 유행을 따라 변덕스런 십대를 먼저 뒤쫓았고, 다음에는 충실한 중년 추종자들에게 잃었던 점수를 만회하려는 노력을 했다. 모든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속에서, 갭은 아무도 열광하지 않는 브랜드 인지도만 쓸데없이 강화했을 뿐이었다.
그다음에 한 일이 갭이라는 회사를 규정짓게 했다. 갭은 카리스마 넘치는 마케팅 전문가 폴 프레슬러를 CEO로 영입했다. 데이터 숫자 분석의 전문가인 프레슬러는 취임하자마자 전 세계 갭 고객을 대상으로 시장조사를 실시했다. 데이터를 사용해 연령과 성별에 따라 고객층을 여러 그룹으로 분류했고, 그에 맞추어 광고를 조정했다. 목적은 풍부한 시장조사 내용을 사용해 브랜드의 초점을 날카롭게 맞추는 것이었다. "고객 조사를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갭의 세 가지 브랜드(갭, 올드 네이비, 바나나 리퍼블릭)는 얼기설기 한데 뭉쳐 있었습니다. 세 브랜드 매장에서 모두 카키색 바지를 찾을 수 있고, 소비자들은 가격이 유일한 차별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올드 네이비 매장은 돈이 별로 없는 젊은 쇼핑객을 공략하라는 명확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바나나 리퍼블릭은 가격을 올리고 좀 더 나이 많은 고객을 뒤쫓기로 하였다. 시장 한가운데 남은 갭은 18~30세의 고객층에 더 집중했다. 프레슬러는 갭의 브랜드 각각에 대해 생태적 지위, 즉 니치를 개척하려 했던 것이다.
고객층을 다른 연령대 그룹으로 분류한다는 갭의 전략은 처음에는 잘 먹혀 들어갔다. 하지만 2년 후 세 브랜드 모두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프레슬러는 각각의 브랜드를 재보정해서 훨씬 더 면밀하게 고객을 구분하는 데 집중했다. 결과는 35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브랜드인 <포스 & 타운>의 출시였다. 이 브랜드는 35세 이상 여성 고객을 4개의 유형(알레고리, 보캐뷸러리, 갭 클래식, 프라이즈)으로 나누어 공략하려 했다. 프레슬러는 이렇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프라이즈는 옷장 안에 깔끔하고 간소하며 편안한 옷가지를 보관하는 여성 유형입니다. 갭의 저지(셔츠) 의류는 이 여성이 찾고 있는 편안함과 단순함을 제공합니다." 이처럼 갭은 몇몇 고객들을 나머지 고객들보다 더 귀중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은연 중에 인정하였다. 하지만 이런 갭의 행태는 한가운데 남겨진 고객들을 의기소침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모든 연령 그룹들을 분할해서 브랜드별로 고객층을 할당함으로써 갭은 오히려 핵심 브랜드의 매출 감소를 초래한 것이다.
이러한 함정에 빠진 것은 갭 같은 소매업의 공룡들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방송사는 디지털 채널의 틈새시장을 위해 시청자 집단을 세밀하게 분할할 때, 주력 채널의 방송 프로 편성은 모호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보이도록 놔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정치인들은 투표 인구의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인 군집에 전념하느라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을 때, 나머지 유권자들을 더 멀어지게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돌이켜 보면 프레슬러가 데이터 수집분석가들과 함께 플립차트로 종합해서 표현한 대중 대신에 뉴욕의 쇼핑몰에 앉은 청중의 말을 들었다면 상황이 더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2004~2009년 갭의 총 매출은 163억 달러에서 145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업체라는 타이틀을 스페인의 <자라>에게 양도했다. 낯선 소매 환경에 대응해서 갭은 나이를 근거로 식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타깃 고객층에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주류에 나타난 허점을 채우는 대신, 대다수 갭 상품은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3장 두더지가 된 기업_ 주류 아래로 숨어들다
주류 문화의 역사는 길지 않다. 주류 문화의 거물들이 대중의 구미에 맞게 미리 가공한 문화의 파편들을 일반 대중에게 제공하기 시작한 20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주류 문화의 성장을 추적할 수 있다. 1970년대 대다수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지하로 숨어 들어가 있었으므로 대중들이 주류 문화를 섭렵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완벽하게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가장자리와 주류 사이의 교류가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오락실의 두더지 게임에 비유하면, 두더지들의 속도가 점차 빨라짐에 따라 거대 기업들은 쉴 틈 없이 뿅망치를 휘두르느라 바빠진다는 얘기였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1978년 발족을 선언한 <선댄스 영화제>는 독립영화를 위한 색다른 구경거리이다. 이 영화제는 적당한 타이밍에 등장했다. 1980~1990년대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은 이벤트성 영화를 가지고 모든 관심을 10대 관객에 집중시킨 반면 보다 고급스러운 영화를 찾는 영화팬은 등한시했다. 영화제가 출범하고 처음 10년 동안 할리우드의 거물들은 선댄스에 출품되는 영화들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1992년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괴짜 감독이 <저수지의 개>라는 섬뜩하고도 아이러니한 영화를 들고 나오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타란티노는 <미라맥스>라는 독립영화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웨인스타인의 눈에 띄었고, 미라맥스가 제작한 타란티노의 차기작 <펄프 픽션>은 겨우 800만 달러의 비용으로 1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 영화의 성공을 본 영화사 임원들은 앞다투어 영화제가 열리는 유타로 쇄도했다. 선댄스가 재능 있는 사람과 영화들을 인디 세계에서 바깥세상으로 날라 오면, 미라맥스는 그들을 덥석 잡아챘다. 이후 웨인스타인은 미라맥스를 디즈니에 매각하였다. <펄프 픽션>과 같은 영화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데 드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1980년대 말 이래 미라맥스는 판단력 있는 마케팅을 펼쳐 인디 영화들을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실험영화의 간판을 단 미라맥스의 영화들은 할리우드 주류 상영물들과 매우 비슷하게 보이는 결과가 나왔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같은 호화로운 역사 로맨스, <셰익스피어 인 러브> 같은 조잡한 로맨틱 코미디들이 그것들이다.
웨인스타인의 미라맥스가 예술 영화보다 기업 제국을 건설하는 데 한눈을 파는 사이에 폭스나 파라마운트 같은 거대 기업들은 그 반대로 했다. 지난 10년 동안 그들은 영리하게도 인디를 마케팅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그들은 소유한 독립영화 레이블을 통해 인디 영화들을 용의주도하게 제작한 뒤, 직접 그 영화들을 출시해서 고급 관객들의 환심을 샀다. 이런 영화들은 독립영화의 수사법과 양식을 신중하게 흉내 냈다. 거대 기업에게 있어 독립영화가 지닌 최고의 장점 중 하나는 독립영화 팬들이 적극적으로 같은 관객 집단으로 결속되기를 원했다는 사실이다. 각기 다른 인구통계학적 그룹으로 사람들을 분할하는 작업의 문제점은 대중이 그룹화된 칸막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고약한 습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갭의 프레슬러가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인디 관객들은 달랐다. 그들은 주류 대중에게 반하는 동시에 서로 소속감을 갖고 자신이 속한 문화를 숭배하는 무리였다. 대중에 대한 통제가 완화됨에 따라 거대 기업들은 단단히 결속되고 믿음직스럽고 충성스러운 소규모 그룹들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4장 정보 소비자의 변신_ 매가 되어 수풀을 헤쳐나가다
오늘날 우리는 단순한 정보 소비자에서 가차 없는 정보 포식자로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접근 방식은 주류 문화의 잔재를 빠르게 없애고 있다. 전통적으로 주류를 통제했던 거대 기업들은 대중의 관심에 대한 독점을 누렸다. 우리는 영화관에 앉아 있거나 번화가에서 쇼핑하면서 모든 시선을 그들에게 빼앗겼다. 그들은 주류를 사용해서 픽앤믹스 방식으로 고른 재료들을 모아 우리에게 공급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그 손아귀에서 빠져나감에 따라 거대 기업들은 가판에 이것저것 미끼를 늘어놓아 우리를 다시 낚아 올리려고 했다. 그들은 가장 군침 도는 부위를 명중시키려고 대중에 대한 통찰력을 키웠지만, 그들의 조준사격은 번번이 빗나갔다.
그리고 인터넷이 등장했다. 구글, 아이튠스, 페이스북, 이베이, 아마존과 같은 거대한 가상 슈퍼마켓들은 거의 모든 것을 자신의 기반으로 끌어와서 작동하는 전체 생태계를 구축했다. 번화가로부터 고객을 꾀어냈던 쇼핑몰과 교외의 슈퍼마켓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세상이 되었다. 온라인 생태계에서 우리는 여가를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이버 공간의 덤불을 헤쳐나가는 정보 포식자가 되어 원하는 것을 색출해낸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선택 사항이 풍성한 상황에서,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는 존재는 여차하면 멀찍이 떨어져나가 죽도록 방치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거대 기업들 앞에서 속수무책이던 먹잇감이었지만, 이제는 그들의 포식자가 되었다.
신문 산업의 예를 들어보자. 오늘날 정보포식자가 된 우리는 세상 어느 곳에 있든 온라인 상에서 엄청난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신문을 읽을 때도 독자들은 뉴스를 보기 위해 더 이상 종이 신문을 읽거나 해당 신문사의 웹페이지에서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콕 집어내기 위해서 온라인 신문들을 휩쓸고 다닌다. 기존 신문사에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셈이다. 전통적으로 뉴스 산업은 판매할 뭔가를 가진 사람들과 뭔가를 찾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 영리한 전략을 구사했다. 예전에는 직업이나 룸메이트를 찾으려면 지역 신문을 사서 항목별 광고란을 꼼꼼히 읽어보아야 했다. 하지만 <크레이그리스트> 같은 벼룩 시장 사이트가 나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크레이그리스트는 모든 사람을 사이트로 끌어들여 무료로 서로를 찾도록 해줌으로써 운영된다. 그런 정보 생태계에서 구매자와 판매자는 상대방을 소개해 줄 신문 같은 뚜쟁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크레이그리스트는 다양한 범주의 광고들이 뒤죽박죽 널브러져 있는 공간이지만, 모든 광고들이 온라인 키워드로 꼬리표가 붙어 있으므로 충분히 검색이 가능하다. 이는 사용자들이 신문 광고를 넘겨볼 때보다 훨씬 더 빨리 원하는 것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공식을 가진 벼룩시장 사이트 때문에 2000~2009년 신문의 광고 매출은 196억 달러에서 60억 달러로 70%나 급감했다. 크레이그리스트는 설립자 크레이그 뉴마크를 비롯한 30명의 직원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작은 집에서 사이트를 운영하며 완전 검색이 가능한 항목별 광고의 광대한 온라인 생태계를 구축하면서, 미국 신문업계의 자연도태를 야기했다. 그 결과 2009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신문사 142개가 폐간되었으며, 최근 2년 사이에 신문업계에서 2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5장 새로운 둥지_ 블록버스터에서 '니치' 버스터로
HBO는 1972년 개국한 케이블 방송이다. 당시에는 미국의 3대 공중파 방송인 CBS, NBC, ABC 등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독점하고 있었다. HBO는 공중파 방송과 경쟁하기 위해서 시청자들이 정말로 시청하길 원하는 그 무언가를 돈을 받고 제공하기로 하였다. 그 무언가란 할리우드 영화, 스포츠 경기, 음악 콘서트 등이었다. 또한 HBO는 자체 프로그램 제작에 나서 다큐멘터리와 특이한 시트콤들을 내보내기도 하였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HBO는 가입자가 계속 급증했고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들어 서비스 가입자의 숫자가 교착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다른 케이블 회사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가입자 수가 1,900만 명을 웃돌면서 주춤하자 1995년 HBO 경영진은 지금이 변화할 시점이라는 결정을 내렸다.